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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가 이렇게 사고(?)를 친 건 2009년도 여기에 땅을 매입할 때부터다. 이 일은 순전히 아내가 꿈을 꾸고 남편이 맞장구를 친 결과다. 남편이라도 "안 된다"고 브레이크를 걸었으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다.

위의 이야기는 지난 17일, 안성 금광면 오산리에 위치한 '정신보건사회복귀시설 달팽이의 꿈(동그라미)'에서 만난 류상현·최학윤 부부의 '노후설계' 이야기다.

달팽이부부와의 인터뷰가 워낙 신나서 기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웃고 있다.
▲ 인터뷰 달팽이부부와의 인터뷰가 워낙 신나서 기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웃고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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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남편!"에 응답한 남편

사람들은 '노후설계' 하면, 먼저 '돈'부터 계획한다. 그렇게 좀 더 나아가다 보면, '전원주택과 전원생활'로 귀착되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나이 들수록 돈보다 집보다 사람이 더 그립다는 것을. 귀촌한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면 단번에 알 일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만난 이 부부는 '센스가 굿'이다. "노후에 부부 두 사람만 살면 심심하지 않겠느냐, 누군가와 어울려 살면 재밌지 않겠느냐." 이런 부부합의로 이끌어낸 열매가 '달팽이의 꿈(동그라미)'이다. '사회 환원'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된다. 

아내 학윤씨는 20년 세월을 병원근무를 하면서, 아픈 분들과 함께 해왔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자연스레 그녀에겐 꿈이 생겼다. "노후가 되면 이런 분들과 어울려 살아보리라." 사회복지 공부도 끝냈다.

"응답하라 남편!"이란 주문에 아내의 평소 성품과 꿈을 알던 남편 상현씨가 응답했다. 그것도 '올인'이라는 방식으로. 땅을 매입하고, 시설을 짓고, 설계를 하고, 사람을 들이고, 현재에도 산적한 일들을 해결하고…. 이 모든 일들을 남편이 함께하고 있다.

아내와 같이 걷기 위해, 예순이 다된 나이(2013년)에 사회복지공부까지 졸업한 남편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다. 평소 이 부부가 서로에게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야 시작 못할 일들이다.

소형액자에 새겨진 늘처음처럼이란 문구가 달팽이부부의 평소 마음가짐을 잘 말해주고 있다
▲ 늘 처음처럼 소형액자에 새겨진 늘처음처럼이란 문구가 달팽이부부의 평소 마음가짐을 잘 말해주고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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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하느냐"는 오해, 마음 아파

이런 부부에게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 있다. "부부가 노후에 돈벌이 하려고 시작하지 않았느냐"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다. 그렇다. 말 그대로 그건 '색안경'이다. 

남편은 공도에서 번듯한 'H안전물산'을 운영하며, 한때는 연매출 10억 원을 자랑하던, 세상말로 잘나가던(?) 사장이란 걸, 웬만한 안성사람들은 다 안다. 아내는 20년을 병원에서 근무했다. 이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주변사람들이 말릴 만도 했다.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지금도 안성 공도에서 'H안전물산'을 운영하는 남편. 물산에서 벌은 돈을 시설에 밀어넣고 있지 않고서야 굴러갈 리가 없다는 걸, 안성시 공무원들이 더 잘 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이 시설에 정부보조금이 나가지 않고 자부담으로 운영되고 있으니까.

"사회복지시설, 아니죠... 사회복귀시설, 맞습니다"

여기서 잠깐만! 여기가 '사회복지시설'이 아니라, '사회복귀시설'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지'와 '귀'라는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목적은 사뭇 다르다. 사회복귀시설이란 한마디로 해당시설 원생들의 사회적 자립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시설이다. 사회복지시설처럼 '수용'이 목적이 아니다.

한때 노인복지시설을 꿈꾸던 이 부부에게 바로 이 부분이 '매력'으로 다가온 게다. 이 시설의 모든 프로그램과 생활지도가 바로 원생들의 '홀로서기'에 맞춰진 건 우연이 아니다.

자기 빨래는 자기가 하고, 설거지도 하고, 순번을 정해 식사준비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원생이 여성들이다 보니 살림살이하는 것을 학윤씨가 일일이 가르친다. 적어도 자기 앞가림은 하라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학윤씨를 보면서, 딸자식(실제 원생 연령대가 20대에서 50대 후반임에도)을 가르치는 '친정엄마'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한 달에 한 번은 무료급식소에 가서 급식봉사도 같이 한다. 원생들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놀라운 변화 중 하나다. 덕분에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는 원생, 현재 외부로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원생 등은 이 부부의 '뿌듯한 보람'이다. 어느 개그맨의 "바로 이 맛 아닙니까"는 이때 쓰라고 있는 말이렷다.

사실 "이 일을 하려면 아이큐가 좋아야 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원생들의 돌발적 행동, 게으른 습관, 수동적 태도 등을 보면서, 머리를 엄청 써서 대처해야 한다. 원생의 행동에 따라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그들의 삶을 찾아주려면 사소한 습관부터 개선해야 하니까.

'달팽이부부'가 꾸는 꿈이 무엇이길래?

남편 상현씨는 시설의 외부적인 문제(예컨대 소방법 처리 문제, 안성시 공무원과의 법리 해석 문제 등)를 해결하느라 거의 전문가가 되었다. 건물만 달랑 있는 땅에 원생을 위해 '무엇도 짓고, 무엇도 조성하고, 무엇도 해보고'등은 고스란히 상현씨의 몫이다.

요즘 이 부부는 "심심할 사이가 없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다. "잠자는 게 아깝고, 눈뜰 때가 제일 좋고, 원생들 얼굴 볼 때가 제일 좋다"는 부부인데, 굳이 무슨 사족을 달까. 굳이 단다면 아내가 말한 "돈 문제만 어렵지 않으면, 이일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는 것 정도다.

본인들이 이 일을 하며 행복하다는데 무슨 사족이 필요하랴 그 시설에 입소한 원생들은 고스란히 이 행복에너지를 받아 홀로서기를 완성할 게 분명하다
▲ 달팽이부부 본인들이 이 일을 하며 행복하다는데 무슨 사족이 필요하랴 그 시설에 입소한 원생들은 고스란히 이 행복에너지를 받아 홀로서기를 완성할 게 분명하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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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작명했다는 '달팽이의 꿈(동그라미)'.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가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듯, 원생들도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단다. 목적지는 바로 원생들의 '홀로서기'다. 더 나아가 달팽이부부의 꿈은 '그런 일을 잘 해내는 사회복귀시설의 롤 모델이 되는 것'이란다.

달팽이부부가 일궈가는 노후설계의 꿈, 즉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 겨(전우익, 현암출판사)'와 같은 선한 의도와 정신이 모진 세파를 딛고 끝내 꽃피우기를 바라본다.


태그:#사회복귀시설, #정신보건사회복귀시설, #달팽이의꿈, #동그라미,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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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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