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奈良) 반야사(般若寺, 한냐지)의 수선화는 한겨울인데도 곱게 피어 있었다. 9일 오후 3시 찾아간 반야사는 주택가 언덕길을 막 벗어난 곳에 동백과 수선화를 품고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반야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에는 사람들이 늘 바글거리지만 반야사를 찾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반야사에 머무는 동안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낡은 카메라를 든 노인들뿐이었다. 아마도 겨울 수선화를 찍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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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사 전경 나라시에 있는 반야사 전경, 왼쪽이 본당이고 오른쪽 탑은 목탑이 주종을 이루는 일본에서는 보기드문 석탑으로 13세기에 만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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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사 들머리 나라를 대표하는 동대사에서 10여분 거리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반야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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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산(奈良山) 아래 언덕 고즈넉한 곳에 자리한 반야사는 아스카시대에 고구려 스님 혜관법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수도가 나라로 천도함에 따라 덴표 7년(735년) 성무왕(聖武天皇)이 헤이죠쿄(平成京)의 귀문(鬼門)을 지키기 위해 '대반야경'을 기단에 넣어 탑을 세운 것이 인연이 되어 절 이름을 반야사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헤이안시대에는 천여명의 학승들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으므로 학문사(學問寺, 가쿠몬지)라 이름 지었다. 그러나 1180년 헤이케(平家)의 남도 공격으로 대가람은 재로 변하고 말았다."이는 반야사에서 만든 홍보물에 나온 이 절의 유래 가운데 일부이다. 천여명의 학승들이 공부할 만큼 컸던 대사찰 반야사는 가마쿠라시대 무사들의 군웅할거와 함께 한줌의 재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말이 유난히 안타깝게 들린 것은 특별히 이 절을 창건했던 고구려 스님 혜관(慧灌, 에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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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사 유래 아스카시대 고구려 혜관법사가 창건했다고 써놓은 반야사 홍보물, 붉은 글씨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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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사 경내 반야사 경내에는 나이든 분들만 드문드문 찾아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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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관스님은 나라시대 남도 6종의 한 종파인 삼론종(三論宗)의 시조로 추앙 받는 고승대덕이다. 혜관스님이 일본에 건너와 불법(佛法)을 펼쳤다는 처음 기록은 <일본서기(日本書紀)> 스이코왕 33년 (625)조에 '정월 고구려왕이 승려 혜관을 보냈다(正月、高句麗の王、僧慧灌を日本に遣わす)'라는 기록이다.
이 무렵 <일본서기>에는 고대 한국의 고승들이 빈번하게 일본에 건너온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고구려 혜자스님이 건너와 성덕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담징스님은 5경과 채색 및 지묵(紙墨)과 맷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최초의 불교 통사인 <원형석서(元亨釋書)>에도 혜관스님 이야기가 전한다. 원형석서를 지은 승려 고칸시렌(1278~1346)은 양(梁)·당(唐)·송(宋)나라의 3대 <고승전(高僧傳)>을 참고로 <원형석서>를 지었는데 이 책에 혜관스님 이야기가 나온다.
"혜관은 고구려 사람이다. 수나라에 들어가 가상대사(嘉祥大師) 길장(吉藏)에게 삼론의 요지를 배웠고 스이코왕 33년(625) 을유년 봄 정월에 본국(고구려)에서 천거하여 우리 일본에 왔다. 칙명으로 간고지(원흥사)에 머물렀다. 그해 여름, 천하가 크게 가물었다. 왕께서 혜관에게 조칙을 내려 비를 빌게 하였다. 혜관이 푸른 옷을 입고 삼론을 강설하니 곧바로 큰 비가 내렸다. 임금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면서 그를 발탁하여 승정으로 삼으셨다. 그 뒤 나이슈우(河內)에서 이카미지(井上寺)를 창건하여 삼론종을 널리 폈다." 1300여 년 전의 반야사는 천여 명의 학승이 있을 정도로 대규모 절이었을 테지만 오늘의 반야사는 작고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절 입구 매표소에는 늙고 쇠잔한 할머니가 표를 팔고 있었는데 600엔을 내고 들어서니 본당으로 이르는 길에 활짝핀 수선화가 나그네를 반긴다.
반야사는 "일본 최고의 코스모스 명소"라고 알려져 있지만 수선화도 그에 못지않게 경내 구석구석에 활짝 펴 있어 사진 애호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반야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일본 최고(最古)의 누문(樓門)과 중요문화재인 13중 석탑 등이 있지만 본당(대웅전)을 비롯한 경내의 건축물들은 모두 가마쿠라시대(1185-1333) 이후의 것으로 고구려 혜관스님 때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혜관스님이 맨 처음 이 땅에 대가람을 세운 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인으로서 감격스러움을 감출 길 없다.
이 세상의 상(相)이라는 것은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는 것이지만 그 터(址)라는 것은 천지개벽이 없는 한 그 자리에 여여하게 자리하는 것이 아니던가! 바로 그 반야사 터에 서서 실바람에 살랑거리는 수선화 꽃을 바라다보자니 1300여 년 전 고구려 땅에서 건너와 이곳에 대가람을 지으면서 일본에 불법(佛法)을 폈던 혜관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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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사 본당 반야사 본당 앞에선 기자는 고구려 혜관스님을 떠올려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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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가고 스님의 조국 고구려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혜관스님의 발자취만은 여전히 반야사에 남아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 가슴 속에 한 떨기 수선화로 오래도록 남을 것임을 믿으며 반야사를 뒤로 했다.
[찾아가는 길]JR 나라역에서 아오야마주택행(靑山住宅行) 11번 버스를 타고 10여분 가다 반야사정류장에서 내려 반야사(般若寺, 한냐지)쪽으로 5분 정도 걷는다. (버스 210엔, 택시 1400엔 정도)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과 대자보에도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