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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받아 기분이 좋은 조카 호연이
 원하는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받아 기분이 좋은 조카 호연이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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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2일 오전 11시 58분]

"언니~ 정말 미칠 것 같아. 세 시간 줄 서서 산 장난감이 한 시간도 안 돼서 망가졌는데 수리를 맡기려니까 7000원을 내래. 16800원짜리 짜리를 7000원을 달라니…, 말이 되냐구. 내가 정말 성질나서…."

새해 첫 주부터 무척 열 받은 동생. 조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을 샀는데 그게 말썽인 모양이었다. 사실 동생은 한 달 전부터 장난감을 구하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라고 투덜거렸었다.

"그거 어디서 파는데? 내가 사다줄게. 우리 동네에 큰 장난감 체인점이 있어."
"그게 돈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매장에 물건이 아예 없어. 한 달 전부터 언제 나오느냐고 매일 매일 회사에 전화해보고, 대형마트랑 장난감 가게에 전화하는데 다들 모른다는 거야. 결국 12월 21일 날 오전 9시에 매장 문 열자마자 전화해서 낮 2시부터 판매한다는 걸 확인하고 첩보작전 하듯이 달려갔잖아. 이런 고급 정보는 친구엄마들 하고도 절대 공유 안 해. 아무도 몰래 살짝 가야지."

그러고 보니 성탄절 전 장난감을 구입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장난감을 구하기 어려워 여기 저기 찾아다닌다는 불만을 토로했던 것 같다. 도무지 무슨 장난감이기에 돈을 들고도 사지 못해서 저렇게 애를 태운단 말인가.

"터닝메카드 신상 가진 아이가 최고 인기라니까"

자동차를 던지면 로봇으로 변신한다
 자동차를 던지면 로봇으로 변신한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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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인공은 터닝메카드. 요즘 3세부터 10세 사이의 아이들이 열광한다는 터닝메카드는 KBS2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다. 초이락컨텐츠팩토리가 기획해 만든 터닝메카드는 지난해 2월 첫방송 이후 아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애니메이션이 인기는 당연히 캐릭터 상품 구매로 이어진다. 터닝메카드를 주목한 손오공의 투자는 성공이었다. 방송 횟수가 한 회 한 회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변신로봇(메카니멀)들이 등장했으며 종영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지금까지 70종류가 넘는 장난감이 출시됐다. 아이들은 새로운 종류의 메카니멀이 등장할 때마다 부모를 조른다. 부모와 아이들이 끝도 없이 장난감을 사들여야 하는 '장난감 지옥'에 빠져 버린 것이다.

"성탄절이 끝이면 좋겠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야. 종영할 때까지는 계속 새로운 게 나올 텐데 언제까지 그걸 사러 다녀야 하냔 말이지. 다행히도 2월에 종영한다니 당분간은 쉴 수 있으려나. 장난감 사다가 등골 빠져. 그래서 요즘 터닝메카드를 새로운 등골브레이커라고 하잖아."

터닝메카드 장난감의 개당 가격은 1만6800원에서 대형의 경우에는 3만2000원까지 다양하다. 동생도 새로운 캐릭터가 나올때마다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랑 싸우고 싸우면서 적게 산다고 한 게 어느새 10여 개나 된다고 한다. 만약에 아이가 사달라는대로 모두 샀다면 장난감 구입에 수백만 원을 써도 모자랄 판이다.

"나도 안 사주고 싶지. 그러려면 TV를 끄고 애들 집에서만 데리고 살아야 해. 어린이집을 가도 동네 놀이터를 가도 페스트푸드점을 가도 온통 아이들이 그것만 가지고 놀거든. 그거 없으면 아기들 사이에서도 왕따야. 새로운 걸 하나 가지고 온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곁에 모여서 그 아이하고 만 놀려고 하고….

놀이터든 어디든 터닝메카드 새로운 장난감 가지고 있는 아이가 최고 인기야. 초등학교 형아들도 다섯 살 짜리에게 와서 보여달라고 하고 같이 놀자고 하고 터닝메카드 가진 아이가 대장이라니까. 그러니 어떻게 안 사주겠어. 몇 번 조르면 하나 사주고 그래도 집에 있는 것만 10개가 넘어."

동생은 상당히 알뜰한 편이다. 조카의 옷이며 신발도, 영유아기때 장난감들도 모두 주변에서 얻어 입히든지 아나바다 장터에서 구입해 사용해왔다. 한번 쓰고 버리거나 짧게 쓰고 못쓰는 것을 절대 구입하지 않는 성격인데 아이들의 놀이 문화 앞에 3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알뜰한 소비습관마저 무너진 것이다.

제품에 불만이 있어도 말할 곳도 없고...

날개의 작은 부분이 깨졌는데 AS 비용이 제품값의 절반이다
 날개의 작은 부분이 깨졌는데 AS 비용이 제품값의 절반이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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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몇 시간씩 줄을 서든 선착순을 하든, 사주는 건 사준다고 쳐. 장난감을 중국에서 OEM으로 만들다 보니 늦게 온다, 적게 온다, 물량을 맞추기 어렵다…, 별 이야기를 다 해도 이해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팔아놓고 애프터서비스(AS)가 그게 뭐냐고. 뭐 하나 고치려면 장난감값의 절반을 달래. 16800원짜리 장난감 날개가 조금 부려졌는데 수리비는 7000원이래. 큰 거 32000원짜리도 조금 망가져서 살짝만 보수하면 될 것 같은데 14000원을 달라는 거야. 그 값이면 차라리 새 거 사고 말지. 거기다 택배로 수리를 맡기면 두 달 이상이나 걸리거든. 그동안 애한테 들볶여 못살아. 그래서 부천 손오공 회사까지 직접 찾아가서 수리를 해갖고 온다니까. 이게 전쟁이지 뭐야."

성탄절을 앞두고 터닝메카드를 사러가서 세 시간 넘게 줄을 섰다는 동생. 그나마도 1번부터 20번까지만 신형 모델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동생보다 먼저 줄은 선 사람들은 실제로 아이가 있는 부모라고 보기 어려운, 노인들이거나 중장년층이었는 게다.

장난감이 인기가 있다 보니 사람들을 고용해 구매를 하고 그것을 인터넷에서 두세 배 높은 가격으로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한다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려는 부모는 많은 데 비해 구매할 수 있는 양이 워낙 적다 보니 줄을 서서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부모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웃돈을 얹어주고라도 구매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 동심 이용해서 부모들 등골 빼먹는 일이지 뭐야. 손오공이라는 회사는 너무나 일방적이야. 뭐라도 이야기 하려고 회사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찾아보니 없는 거야. 불만이든 AS 접수든 회사와 일대일로만 이야기하게 돼 있어. 부모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자자하고 불만도 엄청난데 공개게시판도 없고, 팔고 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속상해 죽겠어."

비싼 수리비, 오랜 수리 기간... 이건 아니죠

부모등골 휘는 등골브레이커가 된 터닝메카드
 부모등골 휘는 등골브레이커가 된 터닝메카드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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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폭풍처럼 장난감 문제를 쏟아낸 동생이 크게 한숨을 쉬며 일어선다. 성탄절 선물로 구입한 터닝메카드가 망가져서 수리를 위해 부천에 있는 손오공 회사에 가는 길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러 들른 것이다. 그나저나 바닥에 던져서 그 충격으로 변신이 이뤄지는 장난감이 쉽게 부러진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니 그 정도의 충격에는 견디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비싼 수리비에 기간도 오래 걸린다니.

터닝메카드를 제작한 회사 손오공의 지난해 매출이 1000억 원대를 돌파했을 것이라는 보도를 들었다. 터닝메카드의 인기에 힘입어 엄청난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동심 마케팅이 성공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면, 그 이익의 일부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과 부모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공급방식을 개선해 몇 시간씩 줄을 서거나 공공연히 프리미엄을 얹어 거래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또한 AS의 방식과 비용도 지금보다는 훨씬 저렴하고 신속하게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적어도 아이들을 사랑해서 동심을 파는 회사라면 말이다.


태그:#터닝메카드, #손오공,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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