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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5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전남 여수시 여수 서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2년 12월 5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전남 여수시 여수 서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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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2월 초,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지방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여당으로 등극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130여 명의 희생자를 낸 프랑스 역사상 가장 끔찍한 테러 직후 치러진 선거 내용은 테러로 '이슬람 혐오'가 퍼진 결과로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불과 1주일 뒤, 프랑스 언론은 완전히 다른 소식을 타전한다. 지방선거 2차 투표에서 결국 국민전선이 전국 13개 지역 중 단 한 지역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프랑스 선거 시스템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 많은 언론이 1차 선거 결과가 마치 '최종 결과'인 것처럼 이미 완결된 분석 기사들을 내보낸 뒤였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일주일 만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보낸 일등공신은 1차 선거 결과를 보고 신속하게 작동한 프랑스 시민 '이성의 힘'이다. 하지만 상당 부분의 공은 '결선투표제'라는 선거 시스템에도 돌려야 할 것이다.

2002년, 국민전선이 대선에서 2차 투표에 진출했을 때에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된 바 있다. 당시 국민전선의 대선 후보 장 마리 르펜은 17%의 득표로 16%를 득표한 사회당의 후보를 제치고 2차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의외의 소식은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다. 사회당의 지나친 우경화는 사회당 지지자들의 투표 의지를 반감시켰고, 그 틈을 타서 르펜은 송곳처럼 프랑스 민주주의의 심장을 꿰뚫고 선거 정국을 발칵 뒤집었다.

프랑스 정당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 펜.
 프랑스 정당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 펜.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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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민전선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표가 '반 국민전선'의 깃발 아래 결집했다. 9명이 격돌한 1차 선거에서 17%를 얻었던 르펜은 2명의 후보가 맞붙는 2차 투표에서 달랑 1%만을 더 얻어 82%를 차지한 자크 시라크에게 참패를 당했다. 당시 2차 선거 직전에 있었던 노동절 대규모 집회에서 한 프랑스 시민이 들었던 피켓 슬로건이 잊히지 않는다.

"자크 시라크 - 우리의 사후피임약".

1차 선거에 방심해서 르펜을 결선투표에 내보낸 프랑스인들에겐 시라크가 '사후 처방'과 같았다. 2차 투표에서 시라크를 통해 극우정당의 집권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2015년에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결선투표제의 허와 실

2차 투표는, 1차 선거에서 투표자의 50% 지지를 얻은 후보가 없는 경우, 최소 12.5% 이상을 획득한 후보 가운데 상위 득표자 둘, 혹은 셋이 다시 우열을 겨루는 방식이다. 대부분 정당은 1차 투표에서 얻은 성적을 바탕으로, 열심히 실익을 따지며 함께 연대할 정당을 찾는다. 대체로 정치적 색깔이 유사한 정당들 중 가장 많이 득표한 다른 후보와 연대하여, 단일 후보를 만드는 방식이다.

단체장 선거일 경우, 연대의 조건으로 지자체 내에서의 일정한 지분을 약속받을 수도 있다. 대선일 경우에는 정부 내각에서의 몇몇 자리를 약속받을 수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인 경우에 그 '딜(협상)'은 각 정당이 각자 당선이 유력한 지역에서 연대를 약속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국민전선은 완전히 고립될 수 있다. 언론도, 다른 정당도 국민전선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대할 동지가 없는 국민전선은 2차 투표제의 영원한 피해자로 남는다.

국민전선은 나머지 모든 정당이 적대시하는 공공연한 '왕따 정당'이다. 프랑스의 다른 정당이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어도 그들과는 연대하지 않는다.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전 세계 44개국의 정상과 파리시민들이 함께 평화의 행진을 하는 그 자리에도 유독 국민전선은 초대받지 못했다. 실제로 우파 정당과 극우파 정당인 그들의 차이가 종이 한 장일 뿐일지라도 말이다. 노골적으로 인종주의를 내세우는 국민전선을 향한 반응은 '혐오'가 기본적이다.

프랑스에서 결선 투표제가 도입된 것은 1852년부터다.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간접투표인 상원의원 선거까지 모든 투표는 이 방식을 거친다. 결선 투표제는 물론, 단 1회에 걸쳐 끝나는 투표보다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사표 방지와 과반수 이상 득표에 따른 정당성 확보라는 장점을 가진다.

한국의 경우,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소수정당의 지지자들은, 선거를 앞두고 결국,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포기하고, 최악의 후보를 막기 위해 가장 유력한 반대편 후보에 눈물을 머금고 표를 던지게 되는, 혹은 그리하도록 주변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일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심지어는 군소 정당들의 후보들은 선거 직전에 사퇴압력에 시달리고, 이를 무시하고 완주할 경우,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정치인의 낙인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1차 투표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은 소수 정당의 존립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물론 결선투표제의 단점도 분명히 있다. 지지율 2~3%를 오르내리는 소규모 정당일지라도 지지자들이 소신 투표를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작은 정당들도 수십 년씩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맥을 이어간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덩치 큰 정당들이 다 차지하는 구조다. 연대의 과정에서 내부적인 권력의 배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실 그것은 부수적인 소득에 지나지 않는다.

2002년 프랑스 총선에서 우파정당인 대중민주연합은 1차 투표에서 겨우 33.3%를 득표했지만, 2차에 가서는 60%의 의석을 싹쓸이할 수 있었다. 그들이 1차에서 거둔 약간의 우세는, 2차에서 중도 우파 정당의 표까지 흡수하면서 그들의 압도적 우세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반면, 1차 투표에서 11.3%를 획득했던 국민전선은 2차에서 단 하나의 의석도 얻지 못했고, 4.8%의 득표를 했던 프랑스 공산당은 그나마 소수 극좌 정당들의 표를 조금 흡수하면서 2차에서 21석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이 제도 또한 거대 양당들의 독주를 쉽게 안착시키는 데 기여하는 제도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프랑스는 우리와 달리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 매년 논의되긴 하지만 여전히 채택되진 못했으며, 이 제도가 실현되지 않아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정당 또한 국민전선이다. 결국 사표를 최소화하고, 동시에 소수 정당의 몫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이상적 제도는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제를 결합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1차 투표의 투표율을 통해 비례대표를 뽑고, 2차 결선 투표를 통해 지역 대표를 뽑는 식이다.

현재 결선투표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프랑스뿐이 아니다. 남미 대부분 나라와 아프리카의 프랑스어권 나라들, 그리고 유럽에선 오스트리아·불가리아·핀란드·포르투갈·러시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이 이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묻지 마 1번' 투표, 원천봉쇄

지난 2014년 7.30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7월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동작구 중앙대 정문 앞에 동작을 후보자 선거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지난 2014년 7.30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7월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동작구 중앙대 정문 앞에 동작을 후보자 선거벽보를 부착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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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거 운동에서는 어떤 후보도 자신을 '기호 몇 번'이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단 기호가 없고, 포스터가 붙는 순서는 선거구별로 후보들의 제비뽑기를 통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특정 후보에게 붙여진 1이라는 수사는 6~7이란 숫자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인상을 심을 수밖에 없고, 이는 초반부터 공정하지 않은 선거의 포석을 만든다. 모든 후보는 소속 정당과 자신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공약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다.

따라서 선거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유니폼을 입고 기호 몇 번을 호명하인사하는 선거 알바도 프랑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선거철이 시작되면, 동네 곳곳에 후보자들 포스터가 붙고, 그리고 장에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찾아온다. 프랑스에는 도시건 시골 마을이건 일주일에 한두 번 장이 서는데, 대부분 선거운동원은 장이 서는 날 장 한편에 서서 시민들을 만난다. 특히 주말에 서는 장은 동네 사람들끼리 소식을 주고받으며 느슨하게 주말 아침을 누리는 시간이어서, 여러 정당이 열띤 선거운동을 펼친다.

일방적으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크게 떠들고 메시지를 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후보 자신과 각 당의 당원들이 함께 서서, 전단을 나눠주며 유권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시민들도 자주 이런 대화와 토론에 참여하는 편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든 혹은 반대하는 정당이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차이점을 확인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각 지역의 공공건물에서 유권자들을 초청하여 후보와 당원들이 함께 토론회를 개최한다. 후보는 정견을 발표하고, 시민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그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대선이 아니고는, 장외유세보다 이렇게 실내에서 소규모 토론회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유세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선거철이면 정당마다 경쟁적으로 틀어대는 선거송도 유세 차량도 마이크도, 심지어는 현수막도 프랑스 선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간혹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후보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집으로 배달되는 공식 전단이 후보자들의 생각을 차분하게 비교하며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물론 대선 때는 후보들 간의 텔레비전 토론이 압도적인 역할을 한다.

선거일을 평일 중 하루를 정해 임시공휴일로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의 모든 선거는 일요일에 이루어지는 것도 우리와 다른 점이다. 평일을 선거일로 지정할 경우 소규모 사업장은 공휴일인데도 문을 열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 투표에 참여하기 힘들다. 프랑스는 2번에 걸쳐 선거를 하므로 평일에 유권자들이 선거할 경우 사회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다. 대도시의 경우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선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유권자 수가 적은 지역의 경우 오후 6시나 오후 7시에 투표가 마감될 수도 있다.

프랑스 선거 제도, 투명 투표함과 현장 수개표

"프랑스의 투표함은 투명하다. 개표는 투표가 마감된 즉시 개표소에서 바로 수개표로 이뤄진다."
 "프랑스의 투표함은 투명하다. 개표는 투표가 마감된 즉시 개표소에서 바로 수개표로 이뤄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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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투표함은 투명하다. 개표는 투표가 마감된 즉시 개표소에서 바로 수개표로 이뤄진다. 가장 먼저 무효표들을 추려낸 후, 유효표들을 100개 단위로 묶는다. 개표 테이블 위에 전달하고, 개표원들은 각각의 투표봉투를 하나하나 열어서 옆의 또 다른 개표원에게 넘긴다. 그걸 넘겨받은 개표원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개표 결과를 읽는다. 호명된 이름은 옆에 있는 두 명 이상의 개표원이 기록하는 방식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아직 프랑스에서 선거 개표에 관한 잡음이 일거나 부정 의혹이 제기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정당연합이란 말 그대로 비슷한 정체성을 갖는 정당들의 연합체다. 각자의 당명을 유지하고 당조직도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연합체로 뭉쳐 있어서, 선거 때에는 그 연합체의 이름으로 나오게 된다. 2008년, 프랑스 공산당과 좌파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좌파전선(Front de Gauche)이 바로 그 예다. 1920년에 만들어져서 2차 대전 직후 한때 프랑스에서 제1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경직된 교조주의적 색깔을 벗지 못하면서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간 '공산당'이 있다. 신생정당이라서 조직력은 약하지만 좌파진영에서 가장 대중적인 정치인 장 뤽 멜랑숑이 있는 좌파당은 공산당과 결합하면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언급한 두 정당 이외에 다른 좌파정치운동 세력 5~6개도 합세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신당(NPA)과 노동자투쟁당(Lutte Ouvrière)은 좌파전선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여, 결국 의도하던 대로 '극좌 대연합'을 이루진 못했다. 2012년 열린 대선에서 11.1%의 지지율을 기록한 공산당이나 이제 막 시작한 신생정당 좌파당으로서도 서로 성공적인 결합이라 평할만한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이들의 정당연합 좌파전선은 여전히 큰 잡음 없이 공고한 연합체를 형성하고 있다. 정당연합은 '합당'하기엔 껄끄럽지만 선거에 나설 땐 서로의 조직과 역량을 수용할 만한 정도의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소수정당들이 단결하여 존재를 드러내는 제도라 하겠다.

프랑스의 의회는 양원제다. 하원의원 수만 577명이고. 상원의원은 348명인데, 상원은 직접선거로 뽑지 않고(각 지역의 하원의원, 지방의원들이 뽑는 간접선거) 하원만 직접 선거를 통해 뽑는다. 인구 5천만 명인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300명인 것에 비하면, 인구 6천5백만 프랑스의 인구당 의원수는 한국보다 2.5배 정도 많은 셈이다. 프랑스에서는 만18세(우리나라는 만20세)부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지는데 상원의원 선거의 경우엔 24세 이상이어야 피선거권이 주어진다.     

2016년 한국 총선 앞두고... 선거제도 결함 고쳐야

대한민국 20대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건만, 국회는 정작 선거구조차 정하지 못하고 선거구 실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사실상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의 의지로 처리되어 온 일련의 민심이반 사건들을 지켜보며, 거기에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던 국회의 의미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린 또다시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국민의 대표자들을 뽑으며 우리의 분노와 열망을 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당선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부정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불의와 독선의 정치는 민심을 거칠게 할퀴었고,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분노와 심판의 의지는 곳곳에서 끓어 넘쳤다. 하지만 어쩐지 현 정부 들어 치러진 선거들은 번번이 민심과 동떨어진 결과를 보여주었다. 선거가 민심을 반영하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200년이 넘는 선거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에서도 지금의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여전히 프랑스도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완벽한 선거제도는 만들지 못했다. 후발주자의 좋은 점은, 남들이 가진 좋은 점을 모두 취사선택하여 최상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무모한 꿈을 꾸어야 한다면, 우선 한국의 현 선거제도가 보이는 결함부터 두드려 고쳐야 할 것이다.


태그:#프랑스, #선거제도, #비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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