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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공부중독사회'다. 공부는 유일한 신분 상승 또는 유지의 길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높은 학벌이 좋은 직장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나갔고, 젊은이들은 재수, 편입, 대학원, 취업준비 등 더 나은 스펙을 쌓기 위해 공부한다는 이유로 사회 진출을 계속 유예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쟁이 심화할 때 우리 사회가 알고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은 공부다. 또다시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2016년에는 이러한 공부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편집자말]
수능시험 준비하는 수험생들
 수능시험 준비하는 수험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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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나면 서둘러 학원으로 뛰어갔다. 한 시간가량의 자습. 늦을 수는 없었다. 부랴부랴 영어 단어를 외웠다. 수업 전에 단어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수는 월말마다 있는 학생평가에 반영됐다.

그 결과에 따라 더 '높은 반'으로 옮겨갈 수도 있었고, '낮은 반'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일종의 승격 혹은 강등이랄까. 떨어지는 것은 꽤 굴욕적인 일이었다. 더 나쁜 분위기에서 더 성적이 낮은 아이들과 공부해야 했으므로. 낮은 반에 가면 부모님은 헛돈을 썼다는 생각을 할 테고, 상급반 아이는 나를 은근히 비웃을 것이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는 둔하지 않았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시간은 오후 10시 정도. 수업이 끝났다고 학원 문도 닫히지는 않았다. 영어 단어를 외우던 그 자리에 가 앉아 새벽 두 시까지 공부를 했다. 학원에서 배우지 못하는 과목, 학교 숙제와 수행평가는 모두 그 시간에 처리해야 했다. 잘 따라가지 못했던 과학 수업을 위해서 참고서의 내용과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고스란히 공책에 옮겨 정리했다.

외웠다. 외우고, 또 외웠다. 암기 로봇이라도 된 마냥. 흐아아암. 오류가 났을 때는 하품 한 번, 기지개 한 번. 조그만 등받이 의자에서 일어나,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집으로 갈 즈음엔 이면 도로에는 차 하나 다니지 않았고, 풀벌레 소리만 고요히 들려오곤 했다. "이게 사는 건가" 싶었던 그게 중학교 3학년의 일상이었다.

AM7 to AM3, 공부만이 내 세상

중고등학교 시절엔 '공부만이 내세상'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공부만이 내세상'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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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간 뒤에는 주말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하는 공부량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시간이 부족했다. 일곱 시에 등교해,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수업과 자습이 꽉 차 있었고, 그 이후에도 면접, 논술 등을 준비하는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야자는 열한 시가 되어서야 끝났고,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힘들었다. 힘든데도, 시험 기간에는 새벽 두 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했기에.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학원에 갔다. 두 시간짜리 수업이 두 번 이어졌고, 두 시간짜리 자습이 나를 기다렸다.

공부만이 내 세상. 그랬다.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을 볼 틈은 많지 않았다. "이거 시험에 나온다. 밑줄 쳐." 그 말은 내게 일종의 경전과 같았다. 믿고, 따르고, 흠숭하고. 시험에 나온다면 따라야 했다. 절대 진리. 믿습니다, 아멘.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에 온 뒤에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공부, 까라면 까야 했다. 전공수업부터 교양필수였던 영어수업, 운전면허 시험과 토익에 각종 능력 시험들. 2007년 중3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독서실 책상에서 학교 도서관으로, 학원 자습실에서 스타벅스로. 장소만 조금 바뀌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허리를 구부정하게 낮춘 채로, 책 속의 말들을 그대로 내 머릿속에 옮기고 있었다.

공부가 포기시킨 것들

공부는 밖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시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학생과 어른들이 한 팀을 이루어 체육대회를 즐기는 장면
 공부는 밖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시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학생과 어른들이 한 팀을 이루어 체육대회를 즐기는 장면
ⓒ 꿈틀리 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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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내 삶을 그 자신으로 채우는 동시에, 다른 것들을 포기케 했다. 기회비용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것이 최고였으니까. 그것은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머지 것들은 (어쩌면)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었기에.

내가 그것을 위해 첫 번째로 잊어버린 것은 즐거움이었다. 유치원, 또 초등학교에서 나가서 친구들과 뛰노는 것 대신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며 뜻 모를 시조나 동시 따위를 암송하거나, 가정방문 학습지 문제 풀기를 택해야 했다.

일주일마다 집으로 배달되던 동화책들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포켓몬스터>나 <디지몬 어드벤처>를 볼 시간, 소독차를 따라 친구들과 동네를 뛰어다닐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두 번째로 놓아야 했던 것은 잠이었다. 이미 충분한 시간을 공부에 투입하고 있던 나에게 더 많은 공부를 위해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잠자는 시간뿐이었다. 하루에 적게는 네 시간짜리 쪽잠을 자고도 수업시간에 졸지 않을 방법은 있었다. 친절하게도, 교실 뒤에는 졸린 사람을 위해 마련된 서서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이 있었으니까.

수면 시간이 줄어들고 나서는 건강도 안녕이었다. 다이어트를 한 적도 없는데 살이 5kg 가까이 빠졌다. 그때는 "공부 다이어트. 개이득"이라고 자랑했지만, 다크써클은 눈 밑 깊숙이 자리 잡았고, 피부도 점점 나빠졌다. 공부로 빠진 살은, 공부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이내 다시 쪄버렸다. 몸은 고등학교 생활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망가졌다. 그리고 난...

오늘도 공부를 위해 많은 것들을 뒤로 제쳐 놓는다. 대학생이 된 후에 꼭 가보고 싶었던 벚꽃놀이는, 시험 기간 아니면 조별발제와 겹쳐 다음 해, 또 다음 해로 미뤘다. 꼭 보고 싶던 영화도 놓쳐 버렸다.  근 20년 동안, 나는 포기하고, 잊고, 미뤘다. 공부를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또 포기하게 될까.

공부중독, 불안증

수많은 학생들을 얽매는 공부
 수많은 학생들을 얽매는 공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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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해왔지만, 끝나지 않는다. 언제든 내가 그냥 나로서 충분해지는 순간은 없었다. 선생님이 때로는 부모님이 원하는 성적을 위해서, 친구들에게 꿀리지 않는 점수를 위해서, 대학이 바라는 등급과 표준점수를 위해서, 그리고 이제는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계속해야 했다. 나는 그 요구사항에 비해 항상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었으므로. 하고 또 했다.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던 그것. 내가 그것에 그토록 중독되어 있던 이유는 딱 그것뿐이었다.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나는 그것에 몰두했다. 아니, 차라리 나는 그것에 쫓겼던 것 같다. 공부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그것의 객체일 뿐이었다. 한 번도 내가 공부의 주인이 된 적은 없었다.

공부의 노예였던 나는 그것에 끌려다니면서도, 그것의 손을 놓지 못했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에게 뒤처질까 봐, 성적이 떨어질까 봐, 시험에서 탈락할까 봐. 영어 단어장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수업 필기 내용을 머릿속에서 잠시라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런 공부가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다른 공부를 했다. 내 손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크릿> 같은 책이 들렸다가, <즉문즉설>이나 <청춘멘토> 따위의 책이 들렸다. 나는 그들의 삶을 공부했고, 나도 저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빠졌다. 그러니까 나는 마치.

호모 스터디쿠스. 공부의, 공부에 의한, 공부를 위한 사람처럼 살았다.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를 하지만, 공부와 삶을 분리한 채 공부에 올인하다 보니 삶이 더욱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빈약함과 허약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면서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어요." (엄기호·하지현 <공부중독> 중에서)

별다를 것 없다. 식민지화된 삶을 어쩌지 못해, 나는 오늘도 공부를 한다. 영어 단어장을 외우고, 전공교재를 읽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공부할 것이다. 불안하니까. 그 밖의 다른 것들을 포기하면서라도. 이 공부가 과연 끝나기는 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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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공부가 답'이라는 486 판타지, 안 되는 걸 알면서
② 오늘은 몇 명이나 쓰러질까, 아이들도 내가 측은하대


태그:#공부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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