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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영국의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 마케다(이탈리아)는 골을 넣은 뒤 원숭이를 흉내 내는 '원숭이 세리머니'를 한 적이 있다. 2014년에는 브라질 선수 다니엘 알베스가 코너킥을 차기 위해 준비할 때 관중이 바나나를 던진 일이 있었다. '노란 원숭이'는 아시아인이나 남미인 등 백인과 흑인이 아닌 이들을 향해 일어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코드 중 하나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언어에는 비단 '원숭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아베크롬비의 '홀리스터'가 국내에 입점을 시작할 당시, 홀리스터 모델들이 국내를 관광하며 손으로 눈을 옆으로 당겨 일 자로 만드는 사진을 찍었던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동양인들은 전반적으로 눈이 작고 옆으로 찢어져 있다는 것을 조롱하는 인종차별적 행위였다.

인종차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태생적 다름'을 조롱하고 계급화해 등위를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피부색이 검든, 하얗든, 노랗든 그것은 조롱의 대상이나 계급화될 대상이 아니다. 인종차별적 발언과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며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일이다.  

김무성, 다수자의 권위로 '구분 짓는' 일 습관 됐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삼성동에서 영남대 새마을 유학생들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와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삼성동에서 영남대 새마을 유학생들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와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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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색이랑 얼굴색이 똑같네."

오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외국인 유학생들과 연탄 나눔 봉사활동을 하며 아프리카계 유학생에게 한 발언이다. 명백한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아프리카계 학생이 검은 피부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굳이 '연탄색'과 연관 지어 발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얼굴색의 다름은 단순한 '다름'이며, 그것을 구분 짓기 시작하는 순간 '차별'이 된다. 태생에서 오는 단순한 '다름'은 명시화하는 순간 '계급화'의 대상이 된다.

피부 색깔이 어떻든 간에 그것을 기준으로 '구분 짓기'를 하고 누군가를 '색깔'로 규정지어 버리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구분 짓는 형태의 말이나 행동은 보통 소수자를 상대로 다수자가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과정에서 단순한 '다름'은 우월한 것과 우월하지 못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뉘어 계급을 부여받는다. 당연히 다수자가 높은 계급에 선다.

김 대표는 '분위기를 풀기 위한 나름의 농담'으로 그 말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담은 '구분 짓기'가 아니라 '모두가 즐거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김무성 대표와 함께한 아프리카계 학생이 '당신은 참 원숭이와 닮았군요'라거나 눈을 찢는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자신에게 민감한 질문을 한 기자에게 김 대표는 "그건 나하고 관계 없는 거야. 너는 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발언한 적 있다. 아프리카계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김 대표의 발언 역시 "연탄색은 나하고 관계없는 거야. 너는 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의 대상이다.

김 대표의 그간 발언들을 보면, 김 대표에게 '다름'이라는 것은 철저히 계급화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의 다양함은 '좌편향'되어 있는 '나쁜 다름'이기에 국정교과서가 필요하고, 강남 주민들은 '현명한 유권자'라는 '좋은 다름'이기에 '전국의 유권자가 강남만큼 수준 높다면 선거가 필요없다'는 발언을 하는 것이리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고엽제전우회, 애국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좌편향 역사교과서 바로잡기 국민대회'에 참석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0월 22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고엽제전우회, 애국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좌편향 역사교과서 바로잡기 국민대회'에 참석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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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는 지난 10월 국내의 국정교과서를 비판한 <뉴욕 타임스>의 사설을 두고 "한심한 지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양한 교과서가 만드는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한심하지 않다. 사람을 인종으로 구분하고, 유권자가 '강남인지 아닌지' 구분하고, 역사 해석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행위야말로 20세기 인류가 겪었던, 지독한 '우월주의'의 한 단면이며 '한심한' 행위다.

김무성 대표는 논란이 일자 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변명 여지 없는 불찰'이라며 사과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즉각적인 사과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일에서 김무성 대표가 배워야 할 것은 '구분 짓는' 행위의 위험성이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번 발언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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