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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경태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치고 나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치고 나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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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법·파견법 등을 비롯한 노동 5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테러방지법.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올해 내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벼르는 '쟁점법안' 들입니다. 이들은 이 법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내년에 닥칠 경제 리스크를 방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새누리당은 17일 '미국발(發) 금리인상'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제 우리 경제에 '빨간 불'이 확실히 켜졌는데도 야당이 이를 해소할 쟁점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골자였습니다. 김무성 당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은 우리 경제에 울리는 위기경고음에 응답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그는 "야당은 틈만 나면 민생을 챙기겠다고 하지만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국민의 공감을 받을 수 없다"라며 "지금 사즉생의 각오로 나서야 할 것은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집안싸움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민생과 경제를 구하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최근 몇 주 동안 반복된 레퍼토리입니다. 다만, 달라진 건 딱 하나 있습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긴급 재정명령' 발동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여당 지도부는 이날 그 누구도 이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 딱 하루만입니다.

올해보다 개선된 경제성장 전망해놓고 '응급조치' 필요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 10월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을 마치고 국무위원석으로 돌아와 목을 축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 10월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을 마치고 국무위원석으로 돌아와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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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긴급 재정명령은 헌법 76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의 상황에서 국회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입법권'을 발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당 입장에서는 야당과의 협상도 쉽지 않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도 거부하는 현 상황을 강행돌파할 수 있는 묘수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청와대가 선을 긋고 나섰습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6일 "국가 비상상황이라면 직권상정 요청 대신 긴급 재정명령을 발동하는 게 낫지 않냐"는 질문에 "(긴급 재정명령은) 선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날 역시 "(긴급 재정명령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말씀드린 입장 그대로"라고 단언했습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의 입장도 같습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전날(16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긴급 재정명령 발동 검토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해서는 답할 내용이 아니다, 이미 대변인이 답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그간 대내외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가 노력해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청와대가 현 상황을 긴급 재정명령 발동 요건인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라고 보지 않는 셈입니다. (관련 기사 : 여당 '국가비상상황'이라는데 청와대 "그건 아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는 지난 16일 발표한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대외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내수 중심의 경기회복세를 시현했다"라며 "2015년 경상성장률은 4년 만에 5%내외로 예상되며 3대 신용평가사 모두 역대 최고 등급 달성했다"라고 올해 경제운용을 긍정평가했습니다.

또 "미 금리인상 가능성에 따른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자원국 불안 등 대외 불확실성 증가는 부담이 되고 고령화·가계부채 부담, 주력 제조업 경쟁력 약화, 기업 구조조정 추진 등 대내 리스크 요인도 상존한다"라면서도 "저유가, 확장적 거시정책 효과 지속, 소비·투자 촉진 등 정책효과로 2015년보다 개선된 3.1% 성장"이라고 2016년 경제를 전망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 경제가 긴급 재정명령과 같은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은 아닌 셈입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긴급 재정명령이 발동됐던 금융실명제와 달리 전국민적인 동의를 구하지 못한 쟁점법안들을 대통령이 직접 처리하면서 떠안게 될 정치적 부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 "(긴급 재정명령이 발동됐던 금융실명제 도입) 그 때 상황하고 지금 상황하고는 다르다"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지금 시급하다는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경제가 어떻게 된다고 하는 것에 대한 답이 나와있지 않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도 이날 최고위 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이 워낙 어려운 상황이고 뭔가 일을 풀어야 되기 때문에 이것저것 검토해보겠다고 얘기한 것을 언론에서 너무 크게 썼다"라며 긴급 재정명령권 검토 발언을 '회수'했습니다.

"청와대나 여당, 쟁점법안 협상하기 위해 애쓴 흔적 없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5일 오전 선거구 획정 관련 협상을 하려고 국회의장실에서 정의화 의장 주재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5일 오전 선거구 획정 관련 협상을 하려고 국회의장실에서 정의화 의장 주재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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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상황 진단이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청와대와 여당에게 '자승자박(自繩自縛)' 논리가 돼 버렸단 겁니다.

국회법 85조는 ▲ 천재지변 ▲ 국가비상사태 ▲ 여야가 합의한 경우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정하고 있습니다. 정 의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를 거론하며 "과연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국가비상사태) 볼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직권상정 거부 입장을 재차 밝혔습니다. 앞서 설명한 경제관계장관회의 내용만 보더라도, 정 의장의 입장이 새누리당의 '국가비상사태' 주장보다 더 논리 정연합니다.

이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예방주사' 논리를 댑니다. 내년에 닥쳐올 대내외적 리스크를 미리 방비하지 않으면 '국가비상사태'를 맞게 될 것이란 얘기입니다.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대내외적 불확실성 속에서 관련 법 통과는 우리 경제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놓는 일인데 이마저도 안 하겠다는 것은 경제를 망쳐놓겠다는 것"이라며 야당을 비판했습니다. 지난 16일 만난 한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비상사태를 주장하는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너무 긍정적으로 내년 경제를 전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같은 전망은 관련 법 통과를 전제해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근거가 희미해진 직권상정만 고집하며 야당에게 책임을 묻는 여론전만 이어지는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장을 역임했던 인명진 목사의 발언이 더욱 따갑게 들립니다.

그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지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얼마 있으면 국회의원 출마 위해서 (국회에) 들어온다는 거 아니에요"라며 "정말 비상사태냐, 경제위기라면 정말 그러느냐, 산업자원통상부 장관하는 분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고 지금 들썩거린다면서요"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내년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수장들이 줄줄이 여의도로 향하는 '이중적 태도'를 비친다는 겁니다.

야당 탓만 말고 설득하라는 주문도 했습니다. 인 목사는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권상정 요구를 위해) 국회의장실을 찾아갈 게 아니라 야당 대표실을 찾아가야 됩니다"라며 "가만히 보면 청와대든지, 여당이든지 이 쟁점법안을 야당과 협상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을 볼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날 역시 "주요 쟁점법안에 대한 여야의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정상적인 국회 상태를 정상화시킬 책무가 (정 의장에게)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의 '야당 탓'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박근혜, #경제위기, #직권상정, #정의화, #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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