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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유엔 인권이사회 차기 의장국으로 한국이 선출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내년 1월부터 1년간 의장국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당선이 확정된 후 외교부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및 인권신장 성과와 지난 10년 동안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을 세 차례나 수임하며 세계 인권증진에 기여해온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반영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인권이사회 의장이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현재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인권 상황에 어떤 우려를 표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본다면 이렇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인도,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나은 한국 

제네바에서 열린 제24차 유엔인권이사회
 제네바에서 열린 제24차 유엔인권이사회
ⓒ us-mission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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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사회 의장국은 매년 지역별로 돌아가며 맡게 된다. 2006년 창설 당시 멕시코(중남미)를 시작으로 루마니아(동유럽), 나이지리아(아프리카), 벨기에(서유럽), 태국(아시아), 우루과이(중남미), 폴란드(동유럽), 가봉(아프리카), 독일(서유럽)까지 의장국이 이어져 왔으며 우리는 제10대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016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 한 국가가 의장국을 맡게 되어 있으며 후보로 오를 수 있는 국가들은 이번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뽑힌 국가 중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속하는 방글라데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몰디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몽골, UAE, 키르기스스탄, 한국, 필리핀이었다. 유엔 총회에서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와는 달리 인권이사회 의장국 선출은 해당 지역에서 비공개로 한 국가를 뽑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다른 투표보다도 더욱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처음 의장국 후보군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이 경합을 벌였으나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한국 인권이 더 낫다고 판단되니 한국 쪽으로 의장국이 거의 확정될 무렵, 인도가 후보로 나섰다. 그리고 몇 차례의 논의 끝에 인도가 후보에서 사퇴했다. 물론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보다는 조금 더 인권 상황이 낫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교부 보도자료대로 한국이 세계 인권증진에 기여해 온 국제사회의 평가가 반영된 의장국 선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의장국 선출이 있기 두 달 전인 10월 28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193개 유엔 회원국들은 인권이사회 이사국들을 선출했다. 한국은 2006~2008년, 2009~2011년 두 차례 인권이사회 이사국을 연임하고 두 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는 규칙에 따라 2012년에는 참관국으로 활동했다.

이어서 2013년에 재선된 후 올해 10월, 다시 연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3년 재선될 때도 아시아 지역 5개 빈자리를 놓고 5개 국가(일본,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한국, 아랍 에미리트)가 후보로 나서 전원 당선이 되었는데 당시 한국은 5개 국가 중 4위로 선출되었다. 이번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아시아 지역 5개 빈자리를 놓고 이번에는 7개 국가가 후보로 나섰는데 한국은 몽골(172표), 아랍에미리트(159표), 키르기스스탄(147표)에 이어 136표, 4위로 당선되었다. 참고로 나머지 한 국가는 113표를 얻은 필리핀이었다.

한국은 유엔에서 지겹도록 권고를 내리고 있는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국가보안법 개정 등과 관련하여 인권이사회 출범 이후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있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과도한 공권력에 의한 집회 참가자 탄압은 외신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져 비판을 받았고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극히 정치적인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월등히 낫다고 판단되어서, 혹은 이제까지 국제사회의 인권 증진에 기여한 바가 많아서 이번 의장국으로 선출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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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국 한국에 거는 국제 시민단체들의 기대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맡게 되는 의장국이지만 실제 인권이사회 회의를 주재하고 진행하는 역할이니 만큼 각국 정부들의 발언권이 센 인권이사회 회기 때 시민사회들에게 얼마나 많은 발언권을 보장해주고 시민사회 친화적인 분위기의 회기가 만들어지는가는 전적으로 의장에게 달려 있다. 당연히 이번 한국 정부의 의장국 선출에 제네바 소재 인권단체들이 발 빠르게 대응한 이유다. 더욱이 한국이 의장국을 맡는 2016년은 인권이사회 10년, 유엔 자유권, 사회권 규약 50년을 맞는 해다. 여러모로 한국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장직을 수행하게 될 최경림 주 제네바 대표부 대사는 취임 인사를 통해 "지난 10년간 인권이사회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틀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이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테러리즘, 기후 변화, 그리고 이주와 같이 시급한 문제들은 인권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된 주 제네바 한국대표부 최경림 대사는 10일(현지시각) 앞으로 결의안 채택 수를 늘리는 것보다 기존의 합의 사항이 잘 이행되고 작동되는지 평가하는 등 앞으로 실행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인권이사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로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된 주 제네바 한국대표부 최경림 대사는 10일(현지시각) 앞으로 결의안 채택 수를 늘리는 것보다 기존의 합의 사항이 잘 이행되고 작동되는지 평가하는 등 앞으로 실행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인권이사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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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소재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경림 대사 이전 의장이었던 독일의 요아힘 뤼커(Joachim Ruecker) 대사가 시민사회에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특히 유엔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자국에서 박해받은 활동가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며 최경림 대사도 이러한 역할을 이어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 아시아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의장국으로서 아시아 인권 증진에 있어서 어떠한 주도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기대하는 바가 크다.

국내 시민사회단체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와 관련, 한국에도 여러 계기가 있을 예정이다. 당장 1월에는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공식 방문하고 5월에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이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에 대한 3차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 대응 준비도 곧 시작될 예정이고 인권이사회와는 다른 조약기구이기는 하지만 자유권 심의에서 내려진 권고에 대해 1년 평가 보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여러 차례 유엔에서 한국 인권상황을 검토하고 권고를 내리게 될 것이다.

비록 한국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인권 상황이 조금 나을지 몰라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지난 자유권 심의 때 우간다 출신 므후무자 의원도 "일반적으로 많은 것들이 주어진 곳에는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된다. 한국 정부가 속해있는 집단이 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보다 앞서 있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한국 정부에는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한국 정부는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 사이에서, 다른 기준들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고 말한 것도 그 맥락일 것이다. 인권이사회 의장국으로 활동하게 되는 2016년, 한국 정부는 인권 모범국이 될지, 아니면 이름만 의장국이면서 인권 후퇴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 1년 후에 평가받게 될 것이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입니다.



태그:#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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