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혼자 '한 달 네팔여행'을 다녀왔다. 10박 11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올랐고, 어떤 날은 할 일 없이 골목을 서성였다. 바쁘게 다니는 여행 대신 느리게 쉬는 여행을 택했다. 쉼을 얻고 돌아온 여행이었지만, 그 끝은 슬펐다. 한국에 돌아오고 2주 뒤 네팔은 지진의 슬픔에 잠겼다. 그래도 네팔이 살면서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임에는 변함이 없다. 30일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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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레파니 로지 식당에서 먹는 한 끼. 이보다 더 멋진 레스토랑은 없다. |
| ⓒ 박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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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까요?"푼힐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고 고레파니 로지로 돌아온 우리는 식당에 앉아 머리를 맞댔다.
"전 오늘 하루 더 있고 싶어요. 푼힐에서 보는 일몰도 그렇게 예쁘대요."
"오빠 생각은 어떠세요?"
"저도 일몰을 보고 싶기는 한데..."
"그럼 하루 더 있죠."그렇게 우리는 푼힐 일몰을 보기 위해 고레파니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다행히 포터 아저씨도 트레킹 일정을 하루 추가해도 괜찮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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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산과 함께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
| ⓒ 박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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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이 산 속에서 거리낄 것 없이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지만, 사실 우리 셋은 트레킹에서 처음 만난 사이이다. 내가 네팔 트레킹 카페에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올렸고, 보경이와 선재 오빠가 거기에 댓글을 달았다. 보경이는 네팔로 오기 전 한국에서 한 번 봤고, 세계 여행 중인 선재 오빠는 네팔에 와서야 처음 만났다.
무엇보다 서로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게 중요했다. 친한 친구와도 의견이 안 맞아 싸우는 게 여행이니까. 열흘 남짓한 일정으로 네팔에 온 보경이만 괜찮다면 한 달 일정의 나나, 선재 오빠는 시간상 여유가 있었다. 다행히 보경이가 일몰을 가장 보고 싶어했다.
오늘 같은 날씨면 일몰도 아주 잘 보일 거라는 포터 아저씨의 말에 우리 셋의 가슴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붉게 물든 설산이 장관이라는 설명에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갔다. 이미 석양을 본 듯한 들뜬 표정의 우리가 이제 할 일은 빈둥거리기. 우리와 포터 아저씨 모두에게 하루씩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루에 2천 불씩 버는 네팔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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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것이 잘 정돈돼 있는 고레파니의 로지. 창밖으로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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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커들은 늦어도 9시 이전에 로지를 떠나기에 이제 식당에 남은 건 우리뿐.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로지 전체가 조용하다.
어제 저녁 내내 식당은 시끌시끌했다. 한 트레커의 생일을 알리는 축하 노래가 로지 식당에 울려퍼졌고, "스테이크요~" 하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불붙은 스테이크가 식탁 여기 저기로 배달됐다. 해발 3천 미터에서 울려 퍼지는 클럽 음악과 불붙은 스테이크,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라니. 이거야말로 문화적 충격이다.
미리 말하자면, 이날 저녁엔 급기야 흥겨운 춤 파티(?)까지 벌어졌다. 신나는 음악에 어깨를 들썩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방 앞으로 나와 스텝을 밟았다. 식당 직원과 트레커들이 하나된 춤의 한마당. 로지에서 때우는 시간이 무료하다는 말이 이날만큼은 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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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고레파니 로지에서 벌어진 생일파티. 설산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은 어떨까. |
| ⓒ 박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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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고레파니 로지에서 벌어진 생일파티. 설산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은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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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장사가 정말 잘 되네요.""여기 로지가 음식도 맛있고, 이 주변에서 제일 괜찮아요. 그래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죠. 이 로지가 하루에 2천 불씩 벌어요.""2천 불이요?!!"포터 아저씨도 인정한 '잘 나가는 로지'는 하루에 2천 불, 우리 나라 돈으로 200만 원을 훌쩍 넘게 번단다. 네팔 1인당 GDP가 699불(2014년 기준)인데, 그 세 배 가까이를 하루 만에 번다는 얘기이다. 입이 떡 벌어진다.
판잣집과 다름 없는 로지가 갑자기 달라 보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높은 데 로지를 어떻게 지었을까, 재료 조달하기도 힘들겠다"며 걱정했는데, 누가 누굴 걱정한 건지... 로지 주인 중엔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몇 개의 로지를 소유한 경우도 있단다. 그야말로 '로지 재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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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지 식당 풍경. 주방 입구에 와인진열대도 보인다. 트레커들과 포터, 가이드들은 이곳에서 쉬고, 밥을 먹는다. 오른쪽에 시트가 주렁주렁 널린 곳은 로지에 하나 뿐인 거대한 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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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천미터 로지에서 먹는 스테이크. 주문을 하면 큰소리로 "스테이크요~" 하며 불붙은 스테이크를 가져다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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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앞 테이블에 앉아 굳은 얼굴로 장부를 뒤적이는 로지 주인 아줌마가 보인다. 두툼한 검은색 패딩을 입은 그녀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음악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드는 사람들에게 갔다가 이내 다시 돌아왔다. 한 장 한 장 장부를 넘기는 얼굴은 시종일관 심각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처음 로지를 시작하며 설렘 반 두려움 반이던 그때와 이 지역 잘 나가는 로지로 손꼽히는 지금, 그녀는 언제 더 많이 웃었을까.
우박과 폭우 속으로 사라진 '푼힐 일몰'
'하늘도 무심하지'는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창밖으로 구름이 점점 몰려온다. 아침 내내 멀쩡하던 하늘이 늦은 오후부터 점점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감추기 시작했다. 우리가 식당에 모여 앉아 추억의 빙고 게임을 하고 동네 마실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이 말이다.
오후 4시 30분. 일몰을 보려면 지금 출발해야 하는데...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해가 보일까 싶지만은 그래도 일단 가보자는 심정으로 로지를 나섰다. 10m는 갔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완두콩만한 우박이 후두둑 쏟아져 내린다. 우박이 날리던 하늘은 연이어 비를 퍼부었다.
아... 멀리 안 간 상태에서 비가 내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붉게 물들어 황홀하다는 설산의 일몰 풍경은 빗 속에 날아가 버렸다. 그 한순간을 위해 오늘을 이곳에 바쳤는데 허무하기 그지없다.
오후에 구름이 심상치 않게 많아질 때부터 포터 아저씨는 괜히 미안해 하는 눈치였다. '날씨는 우리도 아저씨도 누구도 알 수 없다, 괜찮다'고 했지만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영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문득 트레킹 첫날 트레킹 시작점인 나야풀에서 만났던 서양 트레커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그렇듯 포터나 가이드 없이 자신의 짐을 직접 진 모습이었다. 우리처럼 푼힐과 ABC트레킹을 왔다는 그들은 "오늘 어디까지 가냐"는 질문에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갈 수 있는 데까지?"라고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가면 될 일이다.
<시시콜콜 정보> - 로지 계산은 한꺼번에 : 로지에서의 숙식비 등은 떠나는 날 아침 한꺼번에 지불한다. 당연히 로지 식당에서 먹은 음식값, 와이파이 비용 등도 그때 같이 낸다. 내가 쓴 내역을 그때 그때 메모해 놓으면 계산할 때 확인하기가 수월하다. - 트레킹 '효자 용품' 김장 비닐 : 트레킹 도중 날씨는 수도 없이 바뀐다. 비가 내렸다가 해가 났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다시 개었다가. 배낭용 레인 커버를 준비해야 하지만, 6시간 가까이 내리는 비를 뚫고 우중 산행을 해야 하는 경우 등 비상 상황에선 이것도 부족하다. 김장 비닐로 물건들을 한 번 감싼 뒤 배낭에 넣는다면 예상치 못한 사태 때 짐이 비와 땀에 젖는 걸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