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먹고 싸는' 문제는 여전히 인류가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중 '먹는 문제'에 쏠린 압도적 관심에 비해 인류의 '싸는 문제'는 중요한 화두가 되지 못해왔다.

사람들은 먹는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싸는 문제'를 대화거리로 삼는 것을 피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을 보아도 '먹방'이 대세를 차지하지만 '싸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인트웸 라비 마을 주민들이 노상배변 근절을 위해 주민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 인트웸 라비 마을 주민 회의 인트웸 라비 마을 주민들이 노상배변 근절을 위해 주민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전 세계 인류의 20억 명이 화장실 없이 살고 있다. 이 중 10억 명은 노상배변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노상배변이란 화장실이 없어 집 앞마당, 강 어귀, 개울가, 숲속 등 야외에서 배변을 함을 말한다.

노상배변은 대변에 있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등이 사람의 손이나 발, 음식물이나 물, 파리 등을 통해 전파될 수 있는 기회를 훨씬 증폭한다.

해마다 어른과 아이 합해서 무려 150만 명의 사람들이 설사로 사망하고 있다. 비위생적인 환경 특히 노상배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이처럼 끔찍하게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인류의 빈곤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출범했던 새천년캠페인의 두 번째 장이라 할 수 있는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서는 흥미롭게도 '노상배변을 하지 않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목표가 들어있다.    

노상배변을 없애기 위해선 가장 먼저 무엇이 필요한가? 두말하면 잔소리. 화장실이다.

인트웸 라비 마을 주민들이 직접 스스로 재료를 구해서 만든 화장실입니다.
▲ 주민주도형 화장실 인트웸 라비 마을 주민들이 직접 스스로 재료를 구해서 만든 화장실입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세계 20억 사람들의 '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도 발 벗고 나섰다. 한국국제협력단은 한국환경공단과 협력하여 민주콩고(Democratic Republic of Congo)에서 대규모 화장실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사업 착수 6개월 만에 마을별 화장실 보유비율이 90%를 넘어서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사업이 수행되는 곳은, 민주콩고의 수도 킨샤샤에서 동북쪽으로 약 650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반둔두'주에 속한 '이디오파'지역이다. 비포장도로가 많아 사륜구동으로 달려도 열 여섯 시간 가량이 걸린다.

이 사업을 통해서 마을별 화장실 보유비율이 90%를 넘어선 것이 놀라운 이유는 이 사업이 화장실 건축사업이 아니라 화장실 전파사업이라는 데 있다. 즉 보통의 시설 건축사업과 같이 화장실 업체를 선정하여 화장실 건축공사를 실시하는 사업이 아니다. 또한 화장실을 지을 건축재료조차도 최대한 주민들 스스로 지역 내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니까 이 사업의 핵심은 주민들에게 노상배변의 해악을 알리고, 화장실의 중요성을 알려 주민 스스로 화장실을 건축하게 하는 데 있다. 그동안 화장실 '건축'사업에서, 화장실 건축 이후 주민들이 화장실을 방치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화장실 사업모델이라 하겠다.

이 사업은 화장실 바닥을 덮을 용도의 시멘트와 손을 씻을 수 있는 물통을 나눠주는 것 이외 어떤 재료나 건축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마을주민들이 주민주도형으로 화장실을 짓다보니, 화장실 모습이 매우 다채롭습니다.
▲ 주민주도형 화장실 마을주민들이 주민주도형으로 화장실을 짓다보니, 화장실 모습이 매우 다채롭습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화장실 모습은 다채롭지만, 화장실이 갖추어야 할 기준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 주민주도형 화장실 화장실 모습은 다채롭지만, 화장실이 갖추어야 할 기준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벽과 지붕은 비와 강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여성과 아동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주민주도형 화장실 벽과 지붕은 비와 강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여성과 아동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빌게이츠 재단과 월드뱅크는 일찌감치 인류의 '싸는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말리, 케냐 등에서 화장실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대규모 화장실 전파사업에서 70%를 넘어선 적이 없다. 우리가 콩고 사업에서 보여주는 빠른 화장실 전파와 높은 화장실 보유비율 달성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업의 주인공은 서동식(한국환경공단 과장), 박병만(한국환경공단 과장), 까보레(아프리카 물 및 위생기구), 제롬(콩고 수자원부), 오누레(콩고 수자원부) 등이다.

이들은 이디오파 내 마을을 돌며, 마을 주민들이 마을 내 화장실 문제를 주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할 '식수위생위원회'를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하게 했다. 이들은 사업기간 내내 가구를 방문하며 화장실 중요성을 전파하고, 화장실 건축을 독려했다. 주민들과 면담 결과 이 식수위생위원회가 사업성공의 중요한 열쇠로 드러났다. 이들은 필요할 경우 방문한 가구를 위해 2미터가 넘는 화장실 구덩이를 파기도 했고, 숲으로 가서 나무와 풀을 베어 화장실 벽체와 지붕을 만드는 것을 거들기도 했다 한다. 

화장실 내부는 안전하고 깨끗하게 시멘트로 '슬라브'를 제작하여 설치하였습니다. 사업팀은 시멘트를 지원하기만 했고,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설치하였습니다.
▲ 화장실 내부 화장실 내부는 안전하고 깨끗하게 시멘트로 '슬라브'를 제작하여 설치하였습니다. 사업팀은 시멘트를 지원하기만 했고,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설치하였습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마을 주민들이 숲에서 나무와 풀을 구하여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벽체의 정교함이 놀랍습니다.
▲ 화장실 내부 마을 주민들이 숲에서 나무와 풀을 구하여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벽체의 정교함이 놀랍습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서동식 과장은 위생교육을 통해 화장실 중요성을 알린 후 시멘트와 손세척 시설로 화장실 건축의 동기를 부여한 것을 주요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우선 마을주민들에게 화장실의 중요성과 노상배변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구덩이를 최소한 2미터 이상 파고, 화장실 덮개 부분인 슬라브를 만들 나무틀을 갖춘 집에만 시멘트를 주도록 한 것이 먹힌 거 같아요. 그리고 화장실 건축이 다 끝난 경우에 손 세척 시설을 나눠주는 것으로 했죠."

박병만 과장은 식수위생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렇게 교육하고 설득하는 역할은 우리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서 만든 식수위생위원회가 했습니다. 이게 적중한 게 아닐까 합니다."

화장실 사업팀 일행과 인트웸 라비 마을의 식수위원회 구성원들입니다.
▲ 사업팀 일행과 식수위원회 화장실 사업팀 일행과 인트웸 라비 마을의 식수위원회 구성원들입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서동식, 박병만 일행이 시도한 화장실 전파사업 모델은 기존에 보조금, 보조물품을 기반으로 정부가 주도하던 방식의 사업과, 일체의 보조금과 보조물품을 지원하지 않고 주민스스로 집단적 행태변화를 통해 화장실을 건축하게 한 두 개의 극단적인 이론을 절묘하게 혼합시켰다.

아직 주민주도형 대규모 화장실 전파사업에서는 화장실 보유비율이 70%를 넘어선 적이 없으니, 이 사업의 성공은 20억 인류에게 화장실을 저비용으로 빠르게 전파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개발에도 큰 교훈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이들이 전파한 화장실 모형은, 대변을 통해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이 전파되지 않도록 UNICEF가 개발한 개선된 화장실과 완벽히 일치했다.

깊은 구덩이와 슬라브 및 화장실 뚜껑은 대변 또는 대변을 실어나르는 파리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함이고, 벽체와 지붕은 비와 강풍에서 보호하거나, 또는 사생활을 보호하여 아이들과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 모두가 화장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하기 위함이다.

20억 인류의 '싸는 문제' 해결을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서동식, 박명만 일행이 시행하는 화장실 사업은 원래 계획에도 없던 인근마을까지 빠르게 번지며 전파되어가고 있다. 이 사업이 인류의 싸는 문제 해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정말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서동식 과장과 박병만 과장이 완성된 화장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 화장실 감독 중인 사업관리자들 서동식 과장과 박병만 과장이 완성된 화장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 차승만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화장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