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 임은정

관련사진보기


'발칙하다'는 형용사는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하는 짓이 매우 괘씸하다', '몹시 버릇이 없다' 등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기분 좋은 단어는 분명 못 된다. 그런데 왜 용기 있는 젊은 검사 임은정을 떠올리면서 이 단어가 생각났을까?

보는 관점에서 기인하는 것 같았다. 임은정 쪽 관점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 그러니까 임은정을 찍어내려는 쪽에서 보면 그동안 그녀의 행동은 분명 '발칙한' 것이었다. 상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기계의 부품처럼 보이는 검찰 조직에서 임은정은 분명 특이한 존재이다. 개인의 영달과 출세 지향이 판치는 법조 사회에서 그런 흐름에 반기를 든 용감한 검사이다. 모든 검사가 임은정만 같다면 우리의 법조 문화도 꽤 수준 높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 비상식으로 매도당하고, 국민 전체를 위하는 일이 반조직 행위로 호도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특히 국민을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 보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독재 정권일수록 국가 기관에서의 이런 일은 보편화되어 있다.

불의한 정권에 대한 폐해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불의는 정권 당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거짓과 위선, 사악과 모략이 진리와 정의로 둔갑하여 누대에 악영향을 끼쳐 국민의 정신세계를 회복 불능으로 만들게 된다. 임은정 검사는 여기에 과감히 반기를 든 여검사이다.

현 박근혜 정권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정치 구조를 40년 전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를 흉내 내는 등 역사를 후퇴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내쳐서 고사시키는 것은 전체주의 독재 국가의 특징이다. 다양성 속에 일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임은정 검사를 생각한다. 그는 검사의 존재 의의를 정권에 복종하기보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에 두고 있다. 이런 당연논리를 실천하기란 생각 같이 쉽지 않다.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대다수의 검사는 '국민에의 봉사'를 외면하고 불의한 정권에 붙어 뇌가 정지되고 실천이 박제화되고 만다. 임은정 검사는 이런 굴종의 도상에서 '발칙한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다.

이런 '반란'은 정의롭고 귀엽기조차 하지 않은가. 이 글의 제목에 '발칙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 검사가 현대사를 보는 눈은 확실히 정권의 입장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 서 있다. 물론 정권이 국민에게 튼튼히 기반하고 있다면 굳이 정권과 국민을 구별하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나 지금의 박근혜 독재는 분명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임은정의 '반란'에 더 애정이 간다.

검사는 수사와 공판으로 말하는 직업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검사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몇 개 두드러진 사건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아마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맡겼다면 이런 '발칙한 반란'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검사동일체의 원리니 상명하복 등의 거추장스런 낱말로 포장되어 정권이 바라던 대로 사건 구형을 했을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임은정은 달랐다.

2012년 9월이었다. 제일교회 원로 박형규 목사가 민청학련사건을 배후 조종해서 옥살이한 것에 대해 법원에 재심을 요청했다. 박형규 목사는 우리의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를 비롯한 소수의 민주주의에 대한 희생과 헌신 위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 정도로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을 지나 특히 박근혜 정권에 와서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지만.

박형규 목사 재심 사건에서 임은정 검사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했다. 당시 검찰 상부에서는 백지구형을 지시해 놓은 상태였다. 백지구형이란 검찰의 할 일을 포기하고 판사에게 형량을 일임하는 것이다. 즉 판사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한다. 관행이라는 말로 합리화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검찰권의 포기이자 검찰 고유 권한의 불이행이다.

'백지'란 말이 나오면 나는 오래 전 모 재벌 총수가 젊은 연예인과 하룻밤을 지내고 건네주었다는 백지수표가 떠오른다. '너에게 입은 사랑을 나는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우니 너 마음대로 액수를 적어 넣어 쓰라'는 뜻으로 주었다는 백지수표. 백지는 자존권의 포기요, 불순한 마음이 감춰져 있다는 뜻의 다른 말이다. 오랜 관행이란 이름으로 내려오던 백지 구형을 거부하고 임 검사는 무죄 구형으로 검사의 의무를 다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12년 12월 윤길중 진보당 간사장의 재심이 있을 때였다. 윤길중은 죽산 조봉암과 가까운 사람으로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오랜 세월 옥살이를 한 정치인이다. 이 사건도 임 검사는 무죄를 구형했다. 비슷한 사건에 관련 있던 사람들이 이미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에 비추어 당연한 구형이었다. 하지만 그는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고 말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역사가 발전하면 과거의 사건도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총칼로 국민을 겁박하던 독재시절에 일어난 재판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들쭉날쭉하기 쉽다. 윤길중 진보당 사건은 이승만 독재체제 하에서 일어난 일이다. 박형규 민청학련 관련 사건은 박정희 유신 독재 하에 있었던 일이다. 정의와 진리의 잣대가 아닌 독재자의 통치 논리에 의해 형량이 정해진 사건들이었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된 21세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임은정 검사가 파고 든 이 사건들이 그랬다. 그는 상부에 윤길중 진보당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할 것을 보고했다. 그러나 담당 부장검사는 반대했다. 정권의 바람을 잘 알고 있는 부장 검사는 무죄 구형을 하는 것은 검찰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되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임 검사는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검찰 상부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공판 검사를 교체하는 것이다.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긴 하나 검찰은 이런 칼을 자주 휘둘러왔다. 재판 당일 공판 검사 임은정을 다른 검사로 바꾸어버렸다. 그것도 공판검사가 아닌 기획검사로. 해당 사건에 무지한 검사를 재판에 투입하려 한 것이다. 허기사 백지 구형에 검사의 질은 변수가 아니니 이런 편법을 동원할 마음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특단의 조치에는 또 다른 특단의 조치가 따르는 법. 이런 걸 두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이 나왔을까. 임 검사는 재판 당일 검사 출입문을 안으로 잠그고 자신이 준비하고 검토한 사건 내용을 토대로 무죄 구형을 해 버렸다. 검찰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일을 해 낸 것이다. 이 사건은 검찰의 무죄 구형에 따라 재판장도 당연히 무죄를 선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일로 그는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당했다.

이런 임은정 검사가 지금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심층적격심사 대상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불의한 검찰로서는 정의로운 임 검사를 찍어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검사의 심층적격심사는 임은정 검사 같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제도가 아니다. 이것은 검사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항소 기간을 놓쳐 항소를 못했다거나 수사과정에서 인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거나 뇌물을 받고 형량을 조절하는 등의 일로 검사의 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을 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몇 개의 사례로 알아보았듯이 임은정 검사의 행동은 검찰의 위상을 높였으면 높였지 결코 추락시키지 않았다. 심층적격심사를 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지금 이 심사를 받을 사람들은 권력에 아부하며 다수의 국민을 능멸하는 데 주저치 않는 다른 많은 검사들이 그 대상에 올라야 한다고 본다. 특히 공안검사 출신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 그리고 각 검찰청 우두머리들이 먼저 심층적격심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일부 극우 세력들은 임은정 검사를 종북(從北) 검사라며 인격살인을 일삼는다. 내가 보기엔 그는 법 위에 굳건히 서 있는 검사,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검사이다. 종북이 아니라 종국민(從國民)이라고 해야 할 듯. 지금의 정권은 종권력(從權力)을 원하며 그가 길들기를 바라겠지만, 이는 정의와 진리의 잣대 위에 서 있어야 할 검사의 자세가 아니다. 임은정 검사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가 정정당당하게 검사 생활을 해 온 만큼 심층적격심사를 겁낼 것 없다. 당당히 임하기 바란다. 역사는 결국 정의의 편이니까.

끝으로 2012년 9월 박형규 목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구형한 임 검사의 모두 진술의 일부분을 첨부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그 무엇보다 울림이 큰 문장이다. 마음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태그:#김은정 검사, #무죄 구형, #심층적격심사, #박형규 목사 재심, #윤길중 간사장 재심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