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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서부 우루무치에서
▲ 고비사막 253km 대장정의 시작 중국 북서부 우루무치에서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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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0년 넘게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는 조금 독특한 모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사십대에서 사막과 오지 레이스를 빼고 이야기 하는 건 곤란하다. 그런데 시각장애인과의 인연을 빼고 사막을 말하는 것도 참 어렵다. 2005년 초 한 시각장애인에게서 "사막에 가고 싶은데 함께 동행해 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좋은 일 한번 하겠다고 OK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역할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해 4월, 과거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중국 북서부 우루무치(Urumqi) 지역에서 고비사막 레이스(Gobi March)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전 세계 32개국에서 모여든 89명의 전사들은 5박7일 동안 253km에 달하는 고비사막과 투루판(Turpan) 분지의 산야를 넘나들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제작진도 극한의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합류했다. 공포와 좌절, 감동과 희망이 반전을 거듭했던 이 경기는 출전자 중 완주율이 60%에도 못 미칠 정도로 최악의 레이스였다.

달리는 내내 필자는 그의 낙타가 되었다
▲ 시각장애인과 함께 레이스 달리는 내내 필자는 그의 낙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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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동구시앙(Donggouxiang) 캠프에서 시각장애인 이용술씨가 내게 말했다.

"김 형! 김 형은 이제부터 낙타가 되는 거야. 나는 낙타만 따라갈게. 사막에서는 낙타가 제일 믿음직하잖아."

그때부터 나는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충직한 한 마리 낙타가 되었다. 사막의 극한상황에서 누군가를 온전하게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낙타는 레이스의 주인공이 아니다.

낙타는 오직 주인님의 분신이어야 하고, 한 순간도 떨어져서는 안 될 그림자여야 한다. 그래서 내 자신을 모두 내려놓지 않으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다. 사막을 달릴 때 지면이 고른 길은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도우미는 거칠고 험한 길로 가야 한다.

주로의 장애물도 미리 제거해 주어야 한다. 레이스 첫째 날, 어른 머리만한 돌들이 끝없이 깔려있는 34km의 제왕의 계곡(The Valley of the Kings)을 따라 올라갈 때에도, 휘몰아치는 모래폭풍 속도 함께 뚫어야했다.

허리까지 조여오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 만년설이 녹아 흐는 협곡 허리까지 조여오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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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왕들의 하계 휴양지인 티안치(Tianchi)를 지나 만년설이 녹아 흘러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수십 개의 강물을 건널 때에도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을 거친 길로 몰고 내가 좋은 주로에 서면 결국 험난한 여정의 목적지까지 함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스를 할 때 도우미는 주변 풍경과 날씨는 물론 코스 정보까지, 시각장애인이 답답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해줘야 한다. 촉각과 냄새로, 상상으로 주변 환경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거짓말을 많이 해야 한다. 그때 나는 평생 할 거짓말을 이 레이스 기간 동안에 다한 것 같다.

능선 뒤로 산허리를 타는 코스가 이어졌다
▲ 스네이크 피크 칼능선 능선 뒤로 산허리를 타는 코스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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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 분지로 들어서는 레이스 넷째 날, 정상인도 경기를 포기했던 스네이크 피크(Snake Peak)라는 수백 미터 흙산의 칼 능선을 지나자 한 뼘 남짓한 산허리의 패인 골을 따라 주로가 이어졌다. 한 손은 그의 팔목을 다른 손은 흙벽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까치발로 거미처럼 벽면에 달라붙어 버둥거리듯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발끝을 내디뎠다. 온도계 수치가 58℃까지 치솟았다. 분지 전체가 살인적인 열기로 달아올랐다. 발아래 천 길 낭떠러지로 흙더미들이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연신 굴러 떨어졌다.

코스는 변화무쌍하게 이어졌다
▲ 협곡의 하상을 따라 이어지 레이스 코스는 변화무쌍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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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두 손은 흙먼지와 땀으로 흥건했다.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너무 깊은 곳까지 와버렸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모두가 살아남지 못할 상황에서도 "이 형, 나 믿지? 괜찮을 거야! 조금만 더 가면 돼"라며 거짓말을 했다. 사선을 넘나들던 레이스 기간 내내 오직 나의 음성과 서로를 연결해준 끈 하나에 의지한 그에게 수 없이 반복했던 말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내뱉은 거짓말이었다.

무엇보다 도우미는 자신의 안전보다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도우미는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하거나 그의 손을 놓는 것은 곧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이스 중에는 위험과 때로는 목숨까지 담보로 해야 한다. 레이스 둘째 날 저녁, 대자연의 광기인지 엄청난 굉음의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세찬 비가 쏟아졌다. 일순간에 티안샨 산맥 구릉지에 자리 잡은 캠프 전체를 쓸어버릴 것 같은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긴 밤을 함께 지새웠다.

물집제거
▲ 캠프의 일상 물집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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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도 그의 손을 놓을수 없었다
▲ 희망을 향해 빅균을 넘다 한 순간도 그의 손을 놓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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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폭풍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고비사막의 춥고 깊은 밤, 광활한 투루판 분지 유전지대의 정유관 불기둥을 앞선 선수의 배낭에 달린 깜빡이로 잘못 알고 한참을 쫓아가다 길을 잃었다. 얼마만큼 주로를 이탈했는지 알 수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사막 한가운데서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무릎 꿇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의 발길을 부디 당신 뜻대로 내딛게 해 주옵소서.'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땅바닥에 코를 박고 수백 미터를 기다 기적적으로 앞서간 선수들의 신발자국을 발견했다. 간절함이 절박했던 나의 한계를 넘어선 순간이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냉혹한 대자연 앞에서 내 자신도 믿을 수 없었던 나를 그저 믿으라고만 했으니, 도대체 무엇을 믿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그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을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 신뢰였다. 서로 격려하며 이끌어 주었기에 용케 완주가 가능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 없는 각박한 현실에서 상대의 눈이 되어 좋은 길을 양보하고, 포기하지 않게 힘을 북돋아주며 두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인생. 이런 삶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으니까.

결승선에서
▲ 완주 축하를 위해 찾은 신동엽과 함께 결승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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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비사막, #오지, #김경수, #오지레이스, #직장인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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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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