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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크루즈 투어
 소형 크루즈 투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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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두나강 크루즈 투어를 시작한다. 두나강 투어는 주간과 야간에 모두 할 수 있다. 주간 투어는 낮 12시부터 시작하고, 야간투어는 대개 저녁 7시 또는 8시부터 시작한다. 투어는 두나강에 놓인 6개 다리를 지나면서, 강 양쪽의 경치를 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크루즈는 상류의 아르파드(Árpád) 다리에서 세체니 다리를 지나 하류의 페퇴피(Petőfi) 다리까지 왕복하게 된다.

크루즈투어는 서비스 종류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이루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커피 또는 음료수를 한 잔 제공하는 크루즈로 1시간 45분이 걸린다. 요금은 3200 포린트다. 두 번째로 칵테일 또는 맥주를 제공하는 크루즈가 있다. 칵테일 두잔 또는 맥주 3병을 마실 수 있다. 이것 역시 1시간 45분 걸리며, 요금은 5500 포린트다.

두나강에 비치는 야경
 두나강에 비치는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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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와인을 제공하는 크루즈 투어가 있다. 투어를 하면서 7가지 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투어시간은 1시간 30분이고, 요금은 5500포린트다. 이 투어는 오후 7시부터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야경투어가 된다. 마지막으로 간단한 음료를 제공하는 파티 크루즈 투어가 있다. 이 투어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 11시에 시작되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투어가 끝난 후 관광객을 시내 클럽까지 안내해 준다. 요금은 3500포린트다.

그런데 우리는 단체 관광객이어서 배를 전세 내어 크루즈 투어를 진행한다. 그러므로 마르기트 다리 상류의 야자이 마리 선착장(Jászai Mari tér)에서 오후 8시에 출발한다. 크루즈도 마르기트(Margit) 다리, 세체니 다리, 에르제베트(Erzsébet) 다리만을 왕복하는 1시간 코스다. 우리가 탄 배의 이름은 포루투나(Fortuna)다. 영어로 말하면 행운을 말한다.

마르기트 다리 아래로 보이는 두나강 야경
 마르기트 다리 아래로 보이는 두나강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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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조금 있다 마르기트 다리 아래를 지난다. 이 다리 역시 야간조명을 했다. 왼쪽으로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가운데 세체니 다리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마차시 교회와 어부의 요새 그리고 왕궁이 보인다. 국회의사당은 조명이 어찌나 화려한지, 황금으로 지은 궁전 같다. 세체니 다리는 두 개의 주탑과 이를 연결하는 쇠줄에 불이 들어와 마치 동화 속의 다리처럼 환상적이다. 상대적으로 마차시 교회와 어부의 요새가 눈에 덜 들어온다.   

국회의사당을 좀 더 가까이서 보다

배는 이제 국회의사당 앞을 지난다. 낮에 볼 때 국회의사당은 흰 벽에 붉은 지붕이었는데, 밤에는 조명을 해서 전체가 황금빛이다. 그리고 그 건물에서 나오는 조명이 두나강에 반사되어 더 더욱 환상적이다. 더욱이 268m나 되는 정면과 123m나 되는 측면을 모두 볼 수 있어 어부의 요새에서 볼 때 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국회의사당은 부다페스트 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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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중간 중간에 뾰족뾰족 솟아오른 첨탑은 칼끝처럼 위협적이어서 누구도 정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모방했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사실 국회의사당을 좀 더 가까이 보려면 코수트 라요스(Kossuth Lajos tér) 선착장에서 잠시 내려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의사당의 삼면을 천천히 살펴본다.

오른쪽으로 마차시 교회, 어부의 요새, 왕궁이 만들어내는 풍경

국회의사당을 지나자 우리의 관심은 마차시 교회, 어부의 요새, 왕궁으로 향한다. 이들 역시 낮에 봤지만, 밤에 보는 풍경이 훨씬 더 낭만적이다. 마차시 교회와 어부의 요새에 비해 건물의 규모가 훨씬 큰 왕궁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보니 왕궁이 바로크 건축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가운데 둥글게 올라온 지붕과 사각형의 건물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세체니 다리와 왕궁
 세체니 다리와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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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쪽 상징건물이 국회의사당이라면, 부다쪽 상징 건물은 왕궁이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면, 궁전은 왕권의 상징이다. 헝가리 역시 1848년 민중혁명으로 왕권이 약해지면서 민중의 정치적 욕구가 점점 커진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1848년 혁명을 통해 공화제 실험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유럽 전체로 퍼지게 된 때는 제1차 세계대전 후다. 그러나 헝가리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찾아온 것은 1989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황금빛 왕궁과 그 앞으로 보이는 세체니 다리의 실루엣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것은 왕궁의 삼차원성과 다리의 이차원성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대비 때문이다. 세체니 다리는 흰색으로 조명을 하고 있어 차가운 느낌이 들고, 왕국은 황금빛으로 조명을 하고 있어 따뜻한 느낌이 든다. 세체니 다리 위로는 반달이 솟아 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반달, 그것은 청초하기까지 하다.  

세체니 다리에서 떨어진 한스를 구한 자보는...

세체니 다리 야경
 세체니 다리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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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니 다리의 야경을 보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독일과 헝가리 합작으로 만든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99>다. 이 영화는 자보(Szabó)라는 음식점 여종업원 일로나(Ilona)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죽음의 노래(Ein Lied von Liebe und Tod)'다. 이 영화의 원제가 '사랑과 죽음의 노래'고, 부제가 '글루미 선데이'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부제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제목에서 나왔다.

닉 바르코프(Nick Barkow)가 쓴 '슬픈 일요일의 노래(Das Lied vom traurigen Sonntag)'를, 감독인 롤프 쉬벨(Rolf Schübel)과 루트 토마(Ruth Toma)가 시나리오로 각색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성공한 독일의 사업가 한스(Hans Wieck)가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젊은 날 추억이 서린 도시 부다페스트를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부다페스트의 하늘, 두나강, 세체니 다리를 지나 자보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세체니 다리
 세체니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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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을 탄 한스 일행이 자보식당에 도착해 주인의 영접을 받으며 자리에 앉는다. 그는 동행한 헝가리 주재 독일대사에게 자신이 젊은 날 이 식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 즐겨먹었던 불고기(Rollfleisch)를 주문한다. 그런데 불고기를 먹은 한스는 토하며 쓰러진다. 한스는 그곳에서 죽고, 영화는 젊은 시절 그가 찍어준 일로나의 사진을 비추며 1930년대 후반 부다페스트로 돌아간다.

젊은 한스가 자신의 생일날 자보 식당을 방문하고 여종업원 일로나에게 반한다. 그런데 마침 일로나도 생일이어서 식당에서 생일 축하 파티가 열린다. 그는 일로나의 사진을 찍어주며, 독일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자랑한다. 그리고 자신과 결혼해 독일로 갈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일로나는 청혼을 완곡하게 거절한다. 이에 낙담한 한스는 그날 밤 세체니 다리를 지나다 죽으려고 다리 아래로 뛰어내린다. 마침 레스토랑 주인 자보(László Szabó)가 한스를 따라와 그를 구해준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 있는 유대인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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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한스는 타고 기차를 독일로 떠난다. 그런데 몇 년 후 한스는 나치 친위대(SS) 장교가 되어 부다페스트를 찾는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자보 식당을 방문해 옛 친구들을 만난다. 그는 유대인인 자보를 구해준다는 명분으로 피아니스트 안드라쉬(András Aradi)를 죽게 만들고, 일로나를 겁탈한다. 결국 그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인 자보조차 유대인 수용소로 보내 죽게 한다.

이처럼 '슬픈 일요일의 노래'를 만들고 들은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피아니스트 안드라쉬다. 그는 일로나를 사이에 두고 식당 주인 자보와 경쟁한다. 그는 또한 이 노래로 유명해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이 노래를 듣고 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그는 그 때문에 괴로워하며 악보를 두나강에 던져버리기도 한다. 결국 안드라쉬, 자보, 한스의 순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사랑과 죽음의 노래'고 '슬픈 일요일의 노래'다.

아쉽지만 에르제베트 다리까지만

왕궁 야경
 왕궁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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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이제 세체니 다리를 지나 왕궁 앞으로 간다. 왕궁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어 두나강에 비치는 반영이 국회의사당만은 못하다. 그러나 강변으로부터 올라가는 계단, 왕궁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웅장한 왕궁이 이루어내는 거대한 건축물은 마치 언덕 위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그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저절로 그리로 향한다.

배는 이제 서서히 하류의 에르제베트 다리로 향한다. 에르제베트 다리는 1903년 현수교로 처음 만들어졌으나, 교통량 증가로 1964년 6차선 다리로 확장되었다. 다리 너머로 겔레르트 언덕과 성채(Citadella)가 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에 익숙한 우리 눈에 그것들이 잘 들어오질 않는다. 배는 에르제베트 다리를 통과하지 않고 뱃머리를 돌린다.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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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는 부다 쪽이 아닌 페스트 쪽으로 운행을 한다. 페스트 쪽에는 메리어트 호텔, 인터 콘티넨탈 호텔 같은 특급호텔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별로 눈에 띄질 않는다. 배는 다시 세체니 다리를 지난다. 우리는 아쉬움에 왕궁, 마차시 교회, 어부의 요새를 다시 한 번 더 살펴본다. 두나강에는 수많은 선박들이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국회의사당도 좀 더 가까이서 유심히 쳐다본다. 이제 배는 천천히 마르기트 다리 아래를 지나 처음 출발한 야자이 마리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선착장 건너편으로는 마르기트 섬이 있다. 배에서 내리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버스에 탄 우리는 부다페스트 외곽에 있는 호텔로 향한다. 내일 우리는 E77번 고속도로를 따라 폴란드 크라쿠프까지 갈 예정이다. 중간에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산맥을 넘어가는 정말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태그:#부다페스트 야경, #크루즈 투어, #국회의사당과 왕궁, #세체니 다리 , #<글루미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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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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