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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격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언론포커스'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유진(민언련 이사), 박태순(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 신태섭(동의대 교수),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장행훈(언론광장 공동대표),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전국농민총연맹(전농)이 오는 12월 5일 서울광장에서 열겠다고 신고한 집회를 경찰이 금지했다. 경찰은 "11월 14일 불법 폭력 시위의 연장선상에서 또다시 불법 폭력 시위로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고 금지 이유를 밝혔다.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때 있었던 불법폭력 시위로 미뤄보아 오는 5일 2차 민중총궐기 시위가 열리면 또 다시 폭력시위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노동단체들은 2차 집회 강행 의사를 밝히고 있어 경찰과 시위대 간 정면충돌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

헌재 "과거 전력 이유로 집회 금지해선 안 돼"

지난 11월 14일 오후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 '민중총궐기 대회', 경찰에 막힌 민중들 지난 11월 14일 오후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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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항의하기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다. 정부가 이 자유를 제한하려면 해당 집회에서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의 행위가 집단적으로 이뤄짐으로써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끼칠 게 명백하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경찰은 집회를 신고한 전농이 20일 전인 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가한 점을 집회 금지의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주최자의 성향이나 과거의 전력만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 사실이 있다. 뿐만 아니라 1차 대회 후 조계사에 은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제의한 평화시위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위원장은 지난 11월 27일 '현 시국 및 거취 관련 입장'을 발표하면서 2차 민중총궐기 대회는 평화적으로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계종 외 4개 종단에서도 평화시위를 보장하기 위해 경찰의 차벽 대신 종교인들이 사람벽을 쌓아 충돌을 막겠다고 자원했다. 누가 봐도 평화적 시위가 가능한 객관적 조건이 갖춰진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찰이 1차 대회의 폭력성을 빌미로 합법적인 시위를 금지한 것은 헌법 위반행위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집회에서 충돌이 벌어지는 이유는 매번 비슷하다. 시위는 '주최 측의 집회 신고→경찰의 불허→주최 측의 집회 강행→경찰의 저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11월 14일의 집회를 주최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도 집회에 앞서 시위과정을 사전에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차벽을 쌓고 행진을 막아서자, 시위대들이 밧줄로 경찰차를 끌어내려고 달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상을 입는 불상사가 벌어졌던 것이다. 하여, 집회 측은 폭력사태의 원인 제공자가 경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경찰이 폭력시위 가능성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했다. 하지만 이 금지 이유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면 경찰은 왜 헌법이 보장한 집회를 금지했는가? 경찰이 시위를 금지하면 시위대의 반응은 뻔하다. '도발'하려는 저의가 엿보인다.

시위대 반응 뻔히 알면서 금지하는 이유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혁 등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규탄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광화문광장으로 이동을 준비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대비하고 있다.
▲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 강화하는 경찰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혁 등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규탄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광화문광장으로 이동을 준비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대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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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개리 마르크스 명예교수는 "민주국가 시위의 경찰 규제 고찰"이라는 글(1999)에서 196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에서 흔히 발생하던 폭력사태가 20세기 말에 와서는 크게 줄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 원인 중 하나로 경찰이 시위대에 가하는 국가 폭력이 줄어든 점을 들었다.

시위가 폭력화 하는 1차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뜻이다. 경찰이 시위대를 도발하는 행위가 시위를 폭력화하는 도화선이었다. 따라서 경찰이 폭력을 자제하니 폭력시위도 줄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다.

1960~197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폭력시위가 많았다. 시위 군중의 폭력은 닉슨이나 레이건 같은 보수 정치인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개리 마르크스 교수는 지적했다. 폭력시위가 군중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제2차 민중총궐기 시위를 경찰이 금지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민중총궐기 시위를 거론하며 이슬람국가(IS)와 연계시키려는 발언을 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 국가의 국민이 정부를 상대로 불만을 표출하는 권리의 하나인 집회 시위를 정치적 종교적 파괴행위인 테러와 같은 차원의 행동으로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하는 발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금지하겠다고 공언하는 경찰의 태도는 명백한 폭력시위를 부르는 도발이다. 또한 이날 시위에서 또 다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폭력 사태가 벌어진다면, 경찰 그리고 해당 지시를 내린 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언론광장 공동 대표입니다.



태그:#민중총궐기, #평화시위, #집회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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