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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중  뉴욕 맷츠 구단 앞에서
 훈련중 뉴욕 맷츠 구단 앞에서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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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본의든 아니든 실업 상태가 되었다. 또 무언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중요한 시기를 맞기도 하였다. 지금껏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순응하며 아등바등 살기위해서 돌보지 못한 나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할 때이기도 하다.

오십대의 나이에는 여행 가방을 풀어서 정리할 때가 아니라 이제 비로소 설레는 마음과 호기심을 안고 진정한 인생 여정 길에 나설 여행 가방을 꾸릴 때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남들 눈치 보면서 경쟁사회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하여 조금씩 자기를 지우고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그리기 시작할 때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중국에서 자동차 액세서리를 조금씩 수입해서 팔며 생활해왔다. 그런데 경기가 안 좋아져서 무언가 부수입이 필요해서 식당업을 시작했다. 한 2년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느라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였다.

한 가지 일이 잘못되면 여러 가지가 엉켜버린다. 마치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에 앞이 막막했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면 더 멀리 가기 전에 멈추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돈 몇 푼 건지려고 아등바등 하다보면 현실의 노예 상태를 벗어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적성에 안 맞는 식당 일을 하느니 예측불허의 위험에 스스로 노출시켜 그 위험의 꺼풀을 하나씩 벗겨내는 쾌감을 만끽하고 싶다. 거기서 발견하는 내 안의 나와 가슴 벅찬 조우를 하는 거다. 온갖 시련과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새로운 인생과 극적이고 로맨틱한 만남을 꿈꾸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끝없이 달리며 내 자신을 돌아보고 이모작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모든 사람들과 평화 통일의 소중한 가치를 나누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그렇게 통일 열사가 되었냐고 비아냥거리면 나는 화를 내는 대신 당연히 그건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나는 본시 나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면서 국가와 민족의 일에 나설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해야 맞다.

노는 입으로 염불한다는 말이 있다. 기왕에 하는 일 없이 노는 입으로 염불을 해서 해탈을 이룬다면 그것은 최상의 시나리오가 된다. 내게 불어 닥친 이런 공백 상태를 활용하여 남북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면서 또 남과 북 모든 시민들과 공유하면 그것도 아름다운 일이겠다.

LA에서 뉴욕까지 화석연료나 기계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두 다리의 근육만을 사용하여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것을 오래 전부터 은밀하게 꿈꾸었다. 57세. 우리 나이 59세에 떠나는 멀고 긴 여행, 담대한 도전을 통하여 나도 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사람으로 확인하고 싶다.

또 올해는 조국이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다. 내가 떠나는 멀고 험한 길보다 조국 통일이 더 멀고 험할지라도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훨씬 가까이 느껴질 것이라는 믿음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통일은 꼭 우리 시대에 자주적이고 평화롭게 이루어 내야 하는 숙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싶다.

분단 70년 되는 해, 미 대륙 횡단 마라톤에 나가다

미 대륙 횡단 마라톤 출발 전.
 미 대륙 횡단 마라톤 출발 전.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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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나는 시시때때로 닥쳐올 위험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동시에 지금껏 만나지 못한 세상과의 경이로운 만남의 감동이 그 두려움을 덮어버리고 만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변화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모험가나 탐험가로 살아오지 않은 평범했던 일상들이 더욱 더 이번 특별한 여행을 두려움으로 떨게 한다.

그러나 지금 이후에 최고의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인식이 나를 멀고 험한 길을 떠나게 한다. 달리면서 얻어진 무한한 상상력과 달리면서 튼튼해진 두 다리의 만남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꿈꾸어 왔던 먼 곳으로 끝없이 달리는 특별한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들판에는 세찬 바람이 멈추지 않고 바다에는 언제나 파도가 일렁이고 내 가슴 한가운데에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 열망이 끝없이 소용돌이친다. 우리가 어디서 온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어디로 갈지 알 수는 없다. 삶은 목적지가 없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이제 지구상에는 미지의 세계란 없다.

그러나 남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길은 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길을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며 뛰어들면 그것이 도전이고 탐험이다. 나는 이제 가슴 벅찬 도전가의, 탐험가의 길을 나서고 있다. 만 57세의 나이에, 우리 나이 59세의 나이에.

달릴 때 나는 내 몸에 시원을 알 수 없는 싱그러운 생명의 물이 흐르는 것 같은 환희를 만끽한다. 그 기쁨이 나를 끝없이 달리고픈 열망에 빠뜨리게 한다. 끝없이 달려서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고 대평원을 지나 거기서 보이는 진정한 나의 모습과의 진지한 만남을 꿈꾼다.

대자연의 절경, 새로운 세상, 낯선 사람들을 동경하며 끝없이 달리면서 얻어지는 자기 초월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상처를 어루만지지만 또 한편으로 달리면서 대지의 친구가 되어주고 대자연의 아픔을 어루만져준다. 외부와 고립된 채 우주의 근원에 직면하는 기회를 가지는 일은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가슴 벅차다.

달리기는 나에게 안락의자 같은 것이다. 달릴 때 나는 끊임없이 몰려드는 고통과 좌절 속에 편안하고 안락함을 느낀다. 마치 오리들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앉아서 편안하게 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쉬어야 할 때 안락의자에 앉듯이 나는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달린다. 달리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달리는 순간에는 소유해야 할 것도 잃어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땀이 나며 모공이 열리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온전한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 트인다. 달리기는 밖으로 향하던 인생의 길에 내면의 보석을 캐러 들어가는 지하갱도를 파는 행위이다.

길 위를 달릴 때 나는 구도자가 된다.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정염과 번뇌에서 벗어나 육체의 고통 속으로 홀연히 뛰어든다. 기본적으로 나는 가난한 사람이지만 달릴 때 나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도 탐욕을 내지도 않는다. 다만 목마르면 마실 시원한 물과 땀을 씻어줄 바람과 맘껏 숨 쉴 맑은 공기를 원할 뿐. 나는 자연스럽게 무소유와 무 탐욕 그리고 순결함에 녹아 든다.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값진 경험을 원할 때가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서 거기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고도 기꺼이 그것을 얻기 위해 홀연히 뛰어들 용기가 있다면 그건 내가 아직 청춘의 한가운데 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나는 끝없이 펼쳐질 광대무량한 미 대륙을 가로지르면서 내 삶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 내 생명의 시원을 찾아 갈증을 해소하려 한다.

고난과 역경이 오히려 생명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기둥이라면 때로 삶의 어느 한쪽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더 큰 고난과 고통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어서 변화를 꿈꾸어도 좋으리라.

명태가 따뜻한 햇볕과 눈 실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황태로 거듭나듯이 미 대륙 횡단 마라톤을 하면서 사막의 햇볕과 로키 산맥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내 스스로 융해와 응고를 거듭하면서 거듭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내게는 대자연의 영혼과 영매를 이루며 건강 전도사로 마라톤 작가로, 통일 운동가로 태어나기 위한 무속신앙의 신내림굿 같은 것이다. 이 특별한 여행을 통하여 내 가슴 속의 불씨와 사람들 가슴 속의 불씨가 서로 교통하는 통로를 찾고 싶다. 불씨는 불씨와 만나 더욱 훨훨 타오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작은 불씨에 풀무질을 하는 감동적인 문장 한 줄을 받아들고 싶다.

이 광활한 대륙을 달리면서 영혼이 사방팔달 다 통하고 나면 생명은 더 활기에 넘치고 자유는 확장될 것이다. 사막의 지는 노을과 깊은 산 속에 맺히는 아침이슬과 대평원의 지평선 저 넘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깊은 침잠 속에서 사유하며 큰 지혜를 얻고 싶다.

나는 이 여행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여기서 계속 살 것인가 결정하여야 한다. 이모작 인생을 고국에서 시작할 것인지 26년간 살아서 모든 것이 익숙한 곳에서 계속할 것인지 숙제를 가슴에 안고 출발한다.


태그:#미대륙횡단마라톤, #분단 70주년, #특별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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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을 이용하여 달리며 여행한다. 달리며 자연과 소통하고 자신과 허심탄회한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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