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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2012년 11월 27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 상설시장에서 한 어르신이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다가와 인사하자, 박 후보가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18대 대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2012년 11월 27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 상설시장에서 한 어르신이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다가와 인사하자, 박 후보가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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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지 논쟁이 뜨겁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 이후 5년 만이다. 이번에는 '청년수당'이다. 성남시가 '청년배당' 정책을 추진한 데 이어 서울시도 '청년수당' 정책을 발표하자 정부여당과 보수세력은 '포퓰리즘'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지자체의 복지 정책을 중앙정부가 나서서 가로막는 희한한 형국이다. 정치권도 논란에 가세함으로써 지자체 발 '청년 이슈'는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전국화 되는 양상이다.

'청년수당' 논란이 보여준 한국 복지 정치의 민낯

논란 속에서 성남시의 청년배당 조례는 성남시 의회를 통과했다. 보건복지부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시행까지는 난행이 예상되지만 일단은 추진 동력을 확보했다. 반환점은 돈 셈이다.

서울은 더 복잡하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중위소득 60% 이하의 청년들 중에서 정규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고 고용되어 있지도 않은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활동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2개월에서 최장 6개월까지 월 평균 50만 원을 청년활동지원비를 지급할 계획이다.

청년수당 지급 대상으로 선정될 3천여 명은 대학생도 아니고 취업자도 아닌 '사회 밖 청년' 50만명 중 0.5%에 해당된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이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19~24세 청년이라면 누구에게든 연 100만 원(분기별 24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개념인데 반해,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급여의 기준과 조건을 따지는 '선별복지' 정책이기 때문에 설명하기에 훨씬 까다롭다.

논란의 양상도 내용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는 원색적인 공격과 알맹이 없는 비난이 난무하는 난타전의 모습을 띤다. 청년수당을 놓고 '로또' '마약' 운운하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발언은 정책의 본질과 내용을 왜곡하고 복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각각의 청년 복지정책들이 경합하고 공론의 장에서 진지한 접근과 토론을 보장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복지 정치의 두 얼굴> 표지
 <복지 정치의 두 얼굴> 표지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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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대 교수 5인이 집필한 <복지정치의 두 얼굴>(안상훈, 김병연, 장덕진, 한규섭, 강원택 공저)에서 저자들은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때로는 폭발적인 위력을 갖는 복지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고 의도한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복지 이슈의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할 때 규범적 접근이 아니라 대단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정치의 역할과 책임이기도 하다"고(205쪽) 강조한다.

'변화에 저항하는 유권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여기에 미디어의 선정성이 더해지면 정치는 '퍼포먼스'가 된다. 소위 일본의 '극장정치'다. 극장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률 경쟁이다. 상대 정파의 유력 정치인 지역구에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나 정치 경험이 전무한 젊은이를 공천하는 '자객공천'은 극장정치의 백미다. 한국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극우발언이 일본 정치에서 난무하는 것은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막장 요소다.' (140쪽)

한국의 현실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막장 언어가 넘쳐나고 논란이 격화될수록 합리적 담론 형성에 실패하고 복지에서 '정치'가 실종되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사회적으로는 고수준의 갈등, 정치적으로는 저수준의 합의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복지 이슈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의 복지 담론은 2010년 무상급식 논란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복지 정치' 없는 '복지 정책'의 한계를 넘어 

<복지정치의 두 얼굴>은 한국 복지 정치의 현실을 진단하고 한국형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다. 저자들은 "한국의 복지 정치에서는 복지 이슈를 중심으로 유권자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있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있지도 않다"며 "최근 들어 계층별 격차의 문제, 경제적 양극화 등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러한 이슈들이 집단화된 정치적 지지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못하다"(212쪽)고 진단하다.

'복지 정치' 없는 '복지 정책'의 추진은 단기적으로 이슈화될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정책과 제도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휘발되어 버리는 한계를 보인다. 때문에 추진하려는 복지 정책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토론은 실종되고 예산 투입과 같은 기능적인 문제만 부각되는 '탈 정치적' 논란이 주를 이룬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사항이던 무상보육과 기초노령연금 관련 정책을 그 필요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예산상의 이유로 후퇴시키거나 지자체에 떠넘긴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양극화와 더불어 저성장 시대의 도래와 불안정 고용의 증가는 갈수록 복지의 수요를 증대시킨다. 수요가 높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복지는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선거 때만 되면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한 수단으로 각종 복지 공약들을 쏟아내고는 선거만 끝나면 '나몰라라' 하는 것은 책임정치의 실종과 '포퓰리즘'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지난 10월 1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청년배당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청년배당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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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을 비판한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실은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인 2011년 청장년층의 구직활동 장려를 위한 '취업활동수당'을 추진한 바 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인기를 얻기 위해 선거 때만 반짝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포퓰리즘' 복지 정책의 원조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권의 이런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합의체제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가 발달한 서구 유럽과 달리, 한국은 노조가 높은 조직률과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계급 연대의 기반이 취약하다. 더구나 보수 양당이 지배하는 노동배제적, 상층편향적인 정당 구조속에서 계급 계층의 사회경제적 갈등은 공정하게 대변되지 못한다. 여기에 승자독식구조인 소선거구제로 인해 정책 경쟁은 포퓰리즘에 압도되기 쉽고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데도 취약하다.

/사실 복지정책은 속성상 매우 갈등적이다. 모든 복지정책과 그 결정과정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며 복지정책은 그 속성이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의 정의가 가장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지역, 이념 등 다양한 갈등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았지만 복지정치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계급정치 혹은 계층갈등은 정당경쟁의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의 복지논쟁은 서구와는 달리 정당정치와 뚜렷이 구분된 계급적 이해관계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점은 한국에서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적 추동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며 정치 세력간 타협의 도출 역시 사회적으로 조직된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절박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4쪽)

저자들은 "우리보다 선진적으로 복지국가를 성공시켰던 모든 나라들의 공통점은 의무와 권리를 합리적으로 조정해낸 사회경제적 합의의 경험들이다. 각국의 역사제도를 반영해 나름대로 최적화된 합의체제가 임금과 복지의 수준조정, 부담과 복지의 계층간, 세대간 배분 조정 등 복지국가 갈등조정의 전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우리도 한국 상황에 최적화된 사회경제적 합의체제를 서둘러 마련하는 것에서 한국형 복지국가 전략 마련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65쪽) 충고한다.

한국형 복지, 정당 체제의 혁신에 달렸다

한국의 길은 유럽의 그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한국에는 유럽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거대한 사민주의 정당과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유럽의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성장의 시기에 구축된 모델이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 고령화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모델을 탐색해야 한다. 계급적 연대가 취약하다고 해서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시민사회 동력의 정치화를 통해 한국형 '복지동맹'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한국형 복지의 실현은 전적으로 정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당초 복지는 정치적 힘을 조직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조절하고 탈상품화를 실현하는 정치적 기획물이자 한 나라의 경제사회시스템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복지 모델은 정당과 다양한 계급 계층, 이익 집단들간의 토론과 경쟁, 타협의 산물이 제도화 된 결과로 만들어진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로 되려면 제대로 된 복지 정치가 필수 조건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당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복지개혁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치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정당이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계층적 지지 기반을 어떻게 동원하느냐가 관건이다. 청년수당 이슈가 단기적으로 반짝했다가 휘발되어 버릴 것인가, 장기적인 청년정책으로의 연속성을 가지고 발전해나갈 것인가는 오로지 '정치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복지정치의 두 얼굴> (안상훈, 김병연, 장덕진, 한규섭,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2015.10. / 1만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복지정치의 두 얼굴 - 서울대 교수 5인의 한국형 복지국가

안상훈 외 지음, 21세기북스(2015)


태그:#복지정치, #복지정책, #청년수당, #청년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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