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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차가운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대한민국은 들끓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하고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표 이후 전국의 역사학자들은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선언을 이어나갔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연일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외치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계 노동계 종교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1973년 교과서 국정화 그리고 2015년 교과서 국정화

사태의 중심에 있는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추진을 위해 비밀TF를 운영하고 예비비를 편법으로 사용해 논란을 일파만파로 키웠다. 새누리당은 정부의 발표에 맞추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정부 정책을 무작정 지지했다. 하지만 여론의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현수막을 철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귀를 닫은 정부는 급기야 11월 3일에 확정고시를 발표했고, 복면 뒤에 얼굴을 감춘 교과서 비밀 집필진을 구성했다. 정부가 역사 교육을 장악한다는 사실 자체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지금 정부의 많은 정책들이 과거의 잘못을 거의 똑같이 베껴왔다는 점이다. 예전 신문기사들을 살펴보면 교과서 문제 등 여러 가지 논란들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6년 <동아일보>에 실렸던 '논란 빚은 교과서 국정화'란 기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문교부가 밝힌 중등교과서 국정화방침은 교과서출판업자 및 집필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 감각으로 볼 때 교과서의 국정화는 시대역행적이며 국제사회에서의 국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 표면적인 이유이다. 지난 5월말 제20차국제출판인연합회 총회에서 한국대표로서 최장수(요산문화사사장)씨가 한국국정교과서의 현황이란 주제강연을 하자 사회를 보던 영국대표가 "대단히 슬프고 불행한 보고를 들었다"고 개탄했을 정도로 교과서의 국정화는 세계적차원에서는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동아일보> '논란 빚은 교과서 국정화' 1976년 08월 28일 기사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비극인 이유 역시 토인비의 경고처럼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교과서 문제뿐만 아니라 자연환경파괴 문제에서도 소름 끼치도록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1997년 덕유산 스키장 그리고 2018년 가리왕산 스키장

국립공원 덕유산의 스키장을 건설하면서 옮겨심었던 나무들은 거의다 죽었다. 케이블카가 그 나무들 사이를 지나고 있다.
▲ 죽은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덕유산 케이블카 국립공원 덕유산의 스키장을 건설하면서 옮겨심었던 나무들은 거의다 죽었다. 케이블카가 그 나무들 사이를 지나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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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엄격하게 관리해오던 가리왕산은 2018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의 활강경기장 때문에 파괴되고 있다. 500년 동안 지켜왔던 가리왕산을 3일짜리 활강경기를 위해서 처참하게 밀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서 국립공원 덕유산을 훼손했던 일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당시 덕유산도 동계유니버시아드 활강경기를 위해서 나무를 밀어버리고 바위를 깎아서 경기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덕유산의 슬로프는 지금 흉물로 남아있다.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산을 복원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잊혀졌다. 과거에서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덕유산의 경우와 똑같은 일이 2015년 가리왕산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덕유산에는 많은 희귀생물과 멸종위기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생물종다양성 협약에 가입한 정부가 앞장서서 보존해야 할 중요한 생태계이다. 그런데도 불과 12일 동안의 겨울유니버시아드대회를 내세워 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한겨레> '하이트와 덕유산' 1994년 12월 29일 기사

"9월 17일 정선 가리왕산에서 전기톱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단 사흘 동안의 평창 겨울올림픽 활강경기를 위해 국내에서 유전적·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기로 손꼽히는 숲을 합리적인 복원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베어내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9월 29일부터 평창에서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톱질은 계속됐다"
- 한겨레 '가리왕산 거목 울고 가로림만 물범 웃었다' 2014년 12월 30일 기사

1970년 설악산 케이블카, 그리고 2015년 설악산 케이블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조감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조감도
ⓒ 양양군 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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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이자 5가지 보호구역으로 중복해서 보호하고 있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1970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씨가 정부의 허가를 얻어 설악산 권금성에 케이블카를 건설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모노레일과 케이블카를 추가로 건설하기 위한 시도들이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사업의 명분도 관광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 노약자와 장애인들을 위한다는 것으로 변함없이 꾸준했다. 그렇지만 설악산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 덕분에 지금까지 보호받아 왔다. 문화재청과 국립공원위원회가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은 국립공원이자 천연보호구역이자 유네스코생물권 보전지역인 설악산을 훼손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사업허가를 내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2015년의 국립공원위원회는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8년 동계올림픽까지 오색케이블카를 건설하라고 언급하자 일사천리로 설악산 케이블카 추가 건설을 승인했다. 승인 과정에서 내부의 논란이 거세자 합의로 진행하였던 심의를 비밀 투표로 바꾸고 자격이 없는 공무원을 투표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40년 동안 힘겹게 지켜왔던 설악산에 또다시 커다란 쇠기둥들이 박히고 생명과 경관을 훼손할 위기가 닥친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27일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안에는 케이블카 설치를 할 수 없다"고 결정 강원도등 관계기관에 통보했다. 이 위원회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경우 자연생태계를 파괴할 것으로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는데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171호)은 설악산 총면적(1억여평)중 상단 쪽 4952만 178평으로 지난 65년 11월 16일 지정됐다."
- <동아일보>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케이블카 설치 불허 문화재위' 1982월 12월 27일 기사

"속초시가 추진하고 있는 설악산모노레일 건설계획에 대해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반대의견을 공식 통보했다. 9일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환경부는 최근 내무부국립공원위원회(위원장 내무부 차관)에 보낸 의견서에서 "설악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생물권보호지역으로, 모노레일과 같은 인위적인 시설을 설치하면 경관과 생태계가 망가지고 쌍천의 속초상수원보호구역이 더러워질 것"이라며 반대의견을 통보했다.
- <한겨레> '속초시 설악산 모노레일 재추진 환경부·국립공원공단 반대 통보' 1996년 1월 10일 기사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은 과거에 있었던 문제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전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다. 이는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의 방향이 과거의 흐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때문에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힘겹게 쌓아올린 소중한 가치들이 무너지고 있다며 낙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가는 것은 처음보다 분명 쉬운 것처럼 문제가 과거와 같다면 해결하는 방법 역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 이디스 워튼 (Edith Wharton, 1862~1937)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녹색연합 평화생태팀 활동가 이장교입니다.



태그:#국정화, #가리왕산, #교과서, #설악산 ,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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