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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관 밖 자연 속에서 히고 고류(肥後古流)를 체험하다

히고 고류를 준비하는 다인
 히고 고류를 준비하는 다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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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관을 보고 지하 화실(和室)을 지나 밖으로 나가니 다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히고 고류를 시연해줄 구마모토 다인들이다. 모두 5명으로 전통 기모노 복장에 다기와 다구를 손보고 있다. 히고 고류란 모모야마(桃山)시대 구마모토 지역에서 전승된 다도의 유파다. 다인 센노리쿠(千利休: 1522-1591)의 와비차(わび茶) 미학을 계승한 유파로, 구마모토 다도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이들은 먼저 넓은 평상 위에 다구세트를 설치한다. 그리고 그 옆에 화로를 갖다 놓고 쇠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준비를 마치고 다인들과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자리에 앉는다. 다인들 중 다관 한 명이 평상으로 올라가 다구세트를 꺼낸다. 나머지 네 명은 옆에 서서 시중을 든다. 다기 세트를 꺼내는 것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한다.

히고 고류를 실행하는 다관
 히고 고류를 실행하는 다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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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트의 문을 연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하나씩 차례로 꺼내 깨끗이 닦는다. 닦은 다구와 다기를 놓고는 차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여기서 쓰인 차는 말차(抹茶)다. 말차는 가공된 녹차를 갈아 가루형태로 만든 차를 말한다. 쉽게 가루차, 분말차라고 하기도 한다. 가장 먼저 찻잔을 깨끗한 수건으로 닦은 다음, 주전자의 물을 찻잔에 부어 잔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것은 찻물의 온도가 쉽게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음 차숫가락인 차사쿠(茶杓)로 말차를 한 숫가락 떠 찻잔에 넣는다. 그 다음 대나무로 만든 국자로 끓은 물을 떠 찻잔에 따른다. 그리고 대나무로 만든 차선(茶筅)으로 차와 물을 섞는다. 차선이란 대나무를 쪼개 붓처럼 만든 도구로, 차와 물을 잘 섞는 데 사용된다. 이때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천천히 섞는다. 이를 서너 번 반복한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저어 말차를 완성한다.

히고 고류
 히고 고류
ⓒ 오쿠라 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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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차는 왼손에 받쳐 손님 앞에 내 놓는다. 그리고는 다관과 손님이 허리를 숙여 서로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 다음 손님이 찻잔을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잡고 마신다. 나는 두 번째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차를 한잔씩 대접한다. 그러면서 가볍게 차의 예절과 법식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았다.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다도를 진행했지만 아주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학술발표회에서 다도의 내용과 방식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이 햇볕과 그늘이 적당히 어우러진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차맛은 일품이었다. 정말 신선놀음에 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히고 고류 다인들은 우리와 함께 점심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오후에 진행된 학술발표회에도 참가했다.  

센노리큐의 와비차 이야기

센노리큐
 센노리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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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가 되어 '일본과 한국의 전통공예'라는 주제의 연구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연구발표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먼저 이시하라 히로시가 '도자기와 다도'를 발표했다. 두 번째로 박근영이 '충주 소반의 유래와 제작기법'을 발표했다. 세 번째로 하야세 테루미가 '다양한 일본 종이와 야스시로의 제지법'을 발표했다.

우리는 이번 주제발표를 통해 한일의 전통공예의 역사와 기법 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다도는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어서 더 재미있고 의미가 있었다. 또 센노리큐라는 사람이 일본의 근대 다도를 완성하고 전파한 사람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센노리큐는 일본에서 차의 성인(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다.

센노리큐는 모모야마시대 차의 미학을 완성한 사람이다. 작은 찻집(草庵)에서 마시는 소박한 와비차를 최고로 여겼다. 이러한 와비차의 미학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죽은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이후 10년간 완성되었다고 한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다구를 사용, 많은 사람이 즐기는 차 대신, 몇몇이 조용한 찻집에 모여 소박한 다기에 차를 즐겼다고 한다. 이것을 금욕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와비차의 미학에 반한 사람이 전국시대 무장 호소가와 다다유키다. 그는 에도시대인 1600년 후젠고쿠라번주가 되어 큐슈로 오게 되었고, 1632년 히고번주가 되면서 외비차의 미학을 구마모토 지역에 전수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히고 고류라는 다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센노리큐 시대만 해도 차 마시는 것을 차노유(茶の湯)라 불렀고, 이것이 다도로 정착된 것은 1600년대이다.

도자기와 다도의 관계

가라츠야키 창포문 다완
 가라츠야키 창포문 다완
ⓒ 야스시로 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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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노리큐 이전 다도에 사용된 도자기는 중국풍의 당물(唐物)이었다. 그러나 센노리큐 이후에는 고려물(高麗物)과 남만물(南蠻物)이 선호되었다. 그것은 이들 물건이 실용적이고 소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려물이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시 끌려왔던 도공들이 도자기를 대량생산하면서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가 가라츠야키(唐津燒), 아리타야키(有田燒), 쇼다이야키, 야스시로야키(八代燒), 사쓰마야키(薩摩燒)다. 가라츠야키에서 만든 다완(茶碗)으로 대표적인 것이 17세기 창포문(菖蒲文) 다완이다. 갈색이 약간 들어간 다완에 진청색의 창포를 그린 소박하면서 기품 있는 다완이다. 이것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쇼다이야키 백파(白波)
 쇼다이야키 백파(白波)
ⓒ 야스시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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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츠야키로는 주전자 형태의 다기도 남아 있다. 이것은 진한 갈색으로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쇼다이야키도 유명하다. 이것은 백파(白波)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사쓰마야키로는 흑유를 사용한 차이레(茶入)가 있다. 차이레는 엽차를 담아두는 용기다. 그래서 아래위로 길다.

야스시로야키는 호소가와 가문에서 즐겨 사용한 다기다. 비후주의 번주가 된 호소가와 다다오키(1563-1645, 일명: 三齋)는 센노리큐의 유명한 제자 7명(七哲) 중 한 명으로 비후주에 와비차의 미학을 보급했다. 그는 무장임에도 불구하고 교양이 풍부하고 차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가 이룩한 다도의 유파를 산사이(三齋)류라 부른다. 산사이류는 현재 구마모토현과 시마네현 지역에 퍼져 있다. 야스시로 다기로는 철회(鐵繪)다완이 유명하다.

야스시로에 있는 쇼힌켄
 야스시로에 있는 쇼힌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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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현에 산사이류를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다다오키의 가노(家老)였던 마츠이 야스유키(松井康之)였다. 그의 둘째 아들인 오키나가(興長)가 나중에 야스시로 성주가 되었고, 마츠이가는 대대로 야스시로에서 와비차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러므로 마츠이가의 차야(茶屋)와 정원으로 이루어진 야스시로 쇼힌켄(松浜軒)에는 현재까지 다실과 다구가 완벽하게 전해지고 있다. 

마쓰이 가문에 전해오는 다기

쇼힌켄은 현재 국가지정 명승으로 보호받고 있다. 차야 안에는 다구가 갖추어진 다실이 있고, 관광객은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곳에서 히고 고류가 시연되기도 한다. 그리고 건물 한쪽에는 마츠이가의 가보를 전시하는 마츠이 문고((松井文庫) 자료관이 있다. 마츠이 문고에 대해서는 이시하라 히로시의 발표를 통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쇼힌켄의 다실과 다구
 쇼힌켄의 다실과 다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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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이 문고는 마츠이가 소유의 고문서, 회화, 서책, 도자기, 무기, 노(能) 관련 물품, 공예품 등을 보존, 관리, 공개하기 위해 1985년 공식박물관으로 출범했다. 사무국과 전시실은 쇼힌켄 내에 있으며, 전시실에 중요 유물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쇼힌켄 남쪽에 위치한 야스시로 시립박물관에도 마츠이 문고 상설전시실을 만들어 연 5-7회 이들 유물을 교체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시하라는 마츠이 문고 자료관에 있는 다기를 PPT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가장 오래된 것이 도요토미 히데유시가 야스유키에게 하사한 당물(唐物) 차항아리(茶壺)다. 그러므로 이 차항아리는 명나라 때인 14-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항아리에는 미야마(深山)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 15-16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발(簾) 무늬의 차항아리다. 이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야스유키에게 하사한 것이다.

야스시로야키
 야스시로야키
ⓒ 야스시로 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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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보여준 것이 고려 다완으로 불리는 것으로, 교맥(蕎麥) 다완, 웅천(熊川) 다완, 무삼(茂三) 다완이다. 이들은 17세기 조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것은 에도시대 야스시로에서 만든 다기다. 대표적인 것이 철유통(鐵釉筒) 다완이다. 철유가 많이 들어가 검붉은 것이 있고, 철유가 적게 들어가 밝은 갈색인 것이 있다. 이들은 고려와 남만의 다완을 모방하면서도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이것이 바로 야스시로야키로, 와비차의 정신을 반영해 17세기 이후 히고지방 다도의 다기와 다구로 사용되었다. 야스시로야키는 이유(飴釉)를 사용해 갈색을, 철회(鐵繪)기법을 사용해 흑갈색을 내는 등 색깔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상감(象嵌)기법을 사용해 여유를 추구하기도 했다. 야스시로야키는 필요에 따라 이처럼 다양한 다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전해오는 것은 아니어서 야스시로야키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태그:#히고 고류, #센노리큐, #와비차, #마츠이 야스유키, #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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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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