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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앞에 선 존의 뒷모습은 외롭고도 슬프다. 이 단순한 스케치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얀 여백에 연필로만 그려진 그림은 모서리에 맞닿은 어린 소년의 마음을 담담하게 전해주었다.

존은 지각대장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존을 기다리는 것은 선생님의 매서운 눈초리였다. 선생님의 귀에 존의 대답은 허무맹랑한 거짓말처럼 들렸다. 노발대발하는 선생님과 벽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존. 과연 진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존의 등굣길에 일어난 사건들의 전말은 이랬다. 하수구에서 나타난 악어가 존의 책가방을 덥석 물었다. 덤불에서 튀어나온 사자가 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강가 다리 밑에서 솟아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존을 향해 덮쳤다. 현실을 초월하는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이 매일매일 존의 입에서 술술 재생되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은 객관적인 사실들이다. 보편적인 사실과 상식만이 타당한 선생님의 세계에서, 존의 경험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가에서 산더미 같은 파도를 만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존의 모험담은 엉뚱한 상상력으로 잘못을 모면하려는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그런 존을 향해 회초리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은 선생님으로서는 당연했다. 선생님은 존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호통을 쳤다. 하얀 종이 위에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써내려가는 존의 조막만한 손등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존과 선생님 사이에 놓여 있는 저 견고한 벽. 서로의 이해를 막고 있는 저 벽은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인가. 존의 말이 거짓이 되는 경우란 이 책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진실과 거짓은 개인마다 달라 그 경계가 불투명하다. 생각의 차이를 존중한다면 갈등은 생겨나지 않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 앞에 커다란 고릴라가 나타났다. 고릴라에게 사로잡힌 선생님은 그만 회초리를 놓쳐버렸다. 그 순간 놀람과 허무의 복잡한 감정들이 마구 뒤엉켰다. 고릴라에게 붙들려 교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선생님은 존에게 빨리 내려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선생님의 부탁을 향해 존은 당당히 외쳤다.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그래도 소년은 학교에 간다

존 버닝햄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지각대장 존>
ⓒ 우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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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마지막 외침은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리는 듯 통쾌했다. 존은 고릴라에게 꼼짝 못하는 선생님을 모르는 척 지나쳐버렸다. 설마 우리의 존이 고릴라를 못 보지는 않았을 텐데, 선생님에게 배운 방식대로 재현해내는 똑똑한 수제자가 아닐 수 없네.

어쩌면 존은 선생님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꼬마도 헤쳐 나온 위험인데 선생님은 더 잘 할 수 있죠. 선생님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면, 금방 탈출에 성공하겠네요."

존이 만났던 악어와 사자는 상상속의 동물이 아니다. 추운 겨울 아침, 악어에게 장갑 한 짝을 내주고 지켜낸 책가방은 선생님의 관심 밖이었다. 사자가 물어뜯은 흔적은 바지에 남았지만, 존의 마음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거센 파도에 몸은 흠뻑 젖었지만, 학교에 가려는 굳은 의지는 젖지 않았다. 학교 가는 길이 험난할지언정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존의 발걸음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의 원제목은 J'HON PATRIC NORMAN MCHENNESSY-THE BOY WHO WAS ALWAYS LATE'이다. 이 책의 한국어 제목, 지각대장 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우리말의 제목은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를 담고 있지만, 원제목은 어떤 철학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언제나 늦는 소년, 이다. 늦는다는 것은 시간 앞에서는 지각으로, 경쟁 앞에서는 순위로 표현된다. 지금 이 사회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시간과 경쟁일 것이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남들보다 앞서는지, 오직 질주의 본능에만 열광하고 있다.

학교 역시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의 관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가시적인 현상에 쏠려 있었다. 지각한 존을 향해 쏟아지는 질문은 한 짝 뿐인 장갑과 찢어진 바지, 그리고 흠뻑 젖은 몰골이 전부였다. 왜 늦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존의 대답이 예상 밖의 것이라면 더더군다나 용납되지 않았다. 상식의 잣대로 평가된 사실에 대해 엄중한 벌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일률천편적인 잣대로만 쓰여 진다면,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선생님의 방대한 지식은 견고한 틀이 되어 존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방대한 지식과 권위가 타인을 규정짓는 간편한 도구로 전락되고 만 슬픈 일이 교실에서 벌어졌다. 아, 저 섬뜩하고 참혹한 아이러니여! 고릴라를 만난 다음 날, 선생님은 어린 존에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네 말이 옳았구나.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고만 믿어왔는데. 고릴라를 만나고서야 고작 고릴라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니."

그런데 정말 어린 존을 향해 그런 고백을 하는 선생님이 있을까. 그 다음 날, 고릴라도 때려잡는 강력한 회초리로 중무장한 채 교실에 나타난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고릴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학교 담장을 세우기 위해 계획서를 작성하는 선생님의 복잡한 표정이 자꾸만 생각났다.

요즘 학교생활에 관해 풀어놓는 너의 말엔 불만이 가득했다.

"내가 안 떠들었는데, 선생님이 나보고 그랬대. 내가 정말 안 했다고 그러면,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해. 한 번만 더 그러시면..."

격앙된 너의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버젓이 알면서도, 어떤 부당함에 대한 너만의 항변을 준비한다는 느낌에 적잖이 놀라웠다. 이럴 땐 정말 곤혹스러웠다.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는 너의 심정을 모르지도 않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잔소리를 들어보지 않는 학생이 몇 있으랴.

같이 장난을 쳐도 선생님의 혼꾸멍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친구들은 꼭 있었다. 늘 공평할 수 없는 선생님의 인간적인 실수 때문인지,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난 친구의 전략 때문인지 단정 짓기가 어려웠다. 부당함에 저항할 만큼 훌쩍 자란 너의 눈높이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럴 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뻔했다.

"세상이 어디 공평하기만 하니. 부당함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지. 사사건건 불평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부당함도 배워야 하는 세상이라니... 살아본 경험으로 미뤄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런 세상을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은 무엇보다 자식이 덜 상처받는 것이었다. 그런 나약한 말로 자식의 불편한 심사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못마땅했지만, 현실에 뿌리내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고 위안할 뿐이었다.

존의 진실을 거짓이라고 비난하는 선생님과 그런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두둔할 수밖에 없는 부모 앞에서, 너는 투덜거리면서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 금세 웃어버리곤 했다. 우유부단한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주려는 듯 이 그림책의 마지막은 정말 감동적이다.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마저도 흐릿하게 채색하고서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남겨놓다니... 유난히 빈틈이 많은 이 그림 속에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얼룩져 있었다. 채색의 밀도가 흐려진 그림 속에, 허점투성이인 인간의 본질이 투영되었다.

누군가의 절박한 진실을 단순한 사실의 잣대로만 판단하려는 어리석음이 그 속에 있었다. 삶의 이해는 단순한 상식과 사실만으로는 확장되지 않는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고릴라와 마주했을 때,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선생님과 존의 사이에 세워진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힘쎈 고릴라가 필요했던 것처럼.

불투명한 존의 발걸음에 그래도, 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되는 곳이고, 그래도 선생님은 선생님인 것이다. 원근법이 무시된 그림도 어엿한 작가의 그림이고, 찬란하지 않은 태양도 아침을 밝혀준다. 부조리한 현실을 딛고 학교로 향하는 꼬마의 느린 발걸음이 뚜벅뚜벅 가슴 위를 지나간다.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비룡소(1999)


태그:#사춘기, #학교 ,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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