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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캥거루 가족
 캠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캥거루 가족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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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집을 찾아갈 때도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 외진 곳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아침을 맞는다.

여명이 밝아온다. 시골의 삶은 시계보다는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집주인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베란다에 나가 심호흡을 한다. 조금은 싸늘한 날씨다. 시드니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맞는다. 집주인과 함께 산책한다. 맑은 물이 있는가 하면 돌투성이의 작은 동산도 있다. 산책하며 내는 인간의 소리가 자연에 소음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낯선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우리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근처에 있는 볼거리를 찾아 나선다. 퀴암발 국립공원(Kwiambal National Park)이다.

비포장도로를 잠시 운전하니 자그마한 동굴이 있다. 안내판만 있으며 특별히 관리하지 않는 동굴이다. 혼자서 들어가라면 망설여지는 어둠이 동굴에 짙게 깔려 있다. 휴대 전화를 이용해 불을 켜고 동굴에 들어선다.

우리만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종유석도 있다. 조금 더 들어가니 기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가 나온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 들어간 흔적이 있다. 우리는 허리를 굽히고 다닐 수 있을 정도만 돌아보고 나온다.

국립공원을 향해 비포장도로를 운전한다. 도로 주변에 사람의 손길이 끊어진 건물이 있다. 양털을 깎던 건물이었던 것 같다. 주위에는 그 당시에 쓰던 큼지막한 쇳덩어리가 흩어져 있다. 옮길 수만 있다면 가지고 가서 정원에 장식물로 놓고 싶다. 호주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건들이다. 폐허가 된 건물 주위에는 야생으로 자라는 한 무리의 염소가 사람을 경계하며 무리를 지어 다닌다. 
 
넓은 잔디와 물이 흐르는 국립공원 야영장에 도착했다. 서너 개의 텐트가 있다. 잔디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캥거루가 사람 숫자보다 많다. 야생으로 자라는 레몬이 가지에 많이 열려있다. 레몬을 따려고 나무 주위로 가는데 반디쿠트(bandicoot)라는 호주 특유의 동물이 보인다. 아기를 등에 업고 산책하다 우리를 보고 천천히 나무뿌리에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아기를 업고 가는 모습이 정겹다. 엄마의 자식 사랑은 동물과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

주위 환경을 즐기며 간단한 점심을 먹고 산책한다. 자그마한 강을 따라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산책길에 들어서자 사람을 보고 놀란 야생 염소들이 강을 떠나 높은 언덕으로 올라간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이곳에는 야생 염소들이 많다. 집에서 키우던 염소가 주인을 잃고 야생으로 사는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돌이 유난히 많은 산책길이다. 산책길이 끝나는 지점에 가니 오목하게 파인 바위가 인상적이다. 인공적으로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기묘한 바위 모습에 도취해 경사진 바위를 타고 혼자서 조금 더 들어가 본다. 앞이 탁 트인 물줄기가 자그마한 폭포를 만들어 가며 흐르고 있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간다. 경치에 팔려 경사진 바위를 잘 타고 왔으나 가는 길이 쉽지 않다. 경사진 바위 오목한 곳에 발을 잘 내디뎌야 한다. 올 때와 갈 때 발 디디는 곳이 다르다. 바위 바로 옆에는 한 길쯤 되는 물이 흐르고 있다. 빠져 죽지야 않겠지만 빠지는 날에는 카메라, 휴대전화기 등이 못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택해서 온 길, 내 힘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끄러질 확률이 반쯤 되는 경사진 곳을 어렵게 건너왔다. 식은땀이 흐른다.

국립공원의 또 다른 볼거리를 지인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다. 짧은 산책길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른다. 이곳 또한 바위로 이루어진 풍경이다. 바위가 많은 만큼 크고 작은 폭포도 많다.

폭포 아래에는 물놀이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있다. 여름에는 수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강물에 깎인, 자연이 조각한 바위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는다. 오랜 시간 걸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조각품이다. 인간이 만든 어떤 작품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돌아갈 시간이다. 텐트를 친 사람은 이곳에서 밤을 지낼 것이다. 자연과 함께 지내는 텐트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먼지를 흩날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오면서 보았던 야생 염소 떼가 산 중턱에서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이 키울 때는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편안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려움과 위험을 스스로 감당하는 삶을 지낸다. 문득 질문이 떠오른다. '어느 삶이 더 행복한 삶일까?'

고달프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삶이긴 해도 울타리 밖의 삶을 사는 염소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지낼 것이다. 울타리 밖의 삶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싶은 이유다.

퀴암발 국립공원(Kwiambal National Park)은 가물었음에도 물이 많은 펀이다.
 퀴암발 국립공원(Kwiambal National Park)은 가물었음에도 물이 많은 펀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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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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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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