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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2004년 1월 동대문 운동장(축구장)에 풍물시장을 개설하고, 950여 명의 노점상을 입주시켰다. 동대문에 개설된 풍물시장은 2008년 4월 16일 폐쇄된 후 한동안 주차장으로 쓰였다.
▲ 풍물시장이 개설된 철거 직전의 동대문 운동장. 서울시는 2004년 1월 동대문 운동장(축구장)에 풍물시장을 개설하고, 950여 명의 노점상을 입주시켰다. 동대문에 개설된 풍물시장은 2008년 4월 16일 폐쇄된 후 한동안 주차장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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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22일 오후 3시 20분, 서울 중구청장실 앞 복도에서 분신 사건이 발생했다. 분신한 사람은 청계3가 노점상 박봉규(60)씨였다. 이날 오후 1시께 박봉규씨는 을지로4가 우체국에서 이명박 서울시장 앞으로 '서민을 돕겠다던 공약을 지켜라'는 항의서한을 발송했다. 오후 2시께 중구청 단속반이 들이닥쳐 박씨의 노점 좌판을 압수해 갔다. 좌판을 압수당한 박봉규씨는 중구청으로 달려가 "왜 없는 사람을 괴롭히느냐"고 항의하며 분신했다.

박봉규씨가 청계3가에서 노점을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일자리를 잃으면서다. 그의 한 달 수입은 60~70만 원. 이중 아파트 임대료 20만 원을 내고 나면 마른 수건을 짜듯 빠듯한 생활이었다. 2002년 8월 박씨는 세 차례나 좌판을 압수당했다. 좌판을 압수당하면 벌금 5만 원을 내야 돌려받을 수 있었고, 옮기는데 2만5천 원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장사를 시작하면 또다시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박씨는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중구 청계4가 공구상 이아무개(52)씨가 목을 맨 것은 2004년 4월 28일 밤이다. 공구상가에서 29년째 장사를 해온 이씨는 청계천 복원공사로 장사가 되지 않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점심값이 없어 라면으로 때웠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가게에서 새우잠을 잤다.

이씨는 두 달 치 월세 40만 원과 세금 500만 원을 내지 못해 세무서로부터 압류 통고를 받은 상태였다. 목을 매기 전 그가 남긴 한 장짜리 유서에는 "서울특별시 시장님, 청계천 상인을 도와주십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청계천에서 쫓겨난 사람들

2010년 6월 10일 개장할 당시 가든파이브의 분양률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입점한 상가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다.
▲ 가든파이브 라이프동 내부 모습. 2010년 6월 10일 개장할 당시 가든파이브의 분양률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입점한 상가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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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씨와 이씨의 죽음은 청계천 상인들의 험난한 미래를 예고했다. 복원 전 청계천로 주변에는 1000여 명의 노점상과 6만여 개의 점포, 22만여 명의 상인들이 밀집한 대형 상권이었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앞두고 서울시는 노점상에 대해 강경탄압으로 일관했다. 노점상은 불법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2003년 7월 1일 복원공사가 시작되자 노점상에 대한 탄압은 강도를 더해 갔다. 2003년 11월 30일 서울시는 노점상에 대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행정 집행을 시행했다. 이날 서울시는 공무원과 경찰, 철거용역반을 동원하여 노점상을 일소해 버렸다.

2004년 1월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축구장)에 풍물시장을 개설하고, 950여 명의 노점상을 입주시켰다. 풍물시장이 문을 열자 평일 3만여 명, 주말 10만여 명이 몰려들어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개장 초기의 반짝 특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안정적인 상권이 형성되기 어려웠고, 운동장이라는 공간적인 제약도 무시할 수 없었다.

풍물시장의 반짝 특수는 2004년 4월이 되자 끝났다. 반짝 특수가 끝나자 잠복했던 문제가 드러났다. 힘 있는 몇몇 상인들이 좌판 수십 개씩 차지하여 갈등을 일으켰다. 하지만 서울시는 상인 명부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할 뿐이었다.

풍물시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동대문 주변의 대형 쇼핑몰로 발길을 돌렸다. 장사가 되지 않자 상인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미흡한 기반시설을 보강하기 위해 점포당 70만 원씩 거둬 전기가설과 지붕 공사를 했다.

누가 보더라는 동대문 풍물시장은 한시적인 것이었다. 앞날이 불안한 노점상들은 서울시에 다음과 같은 대책을 요구했다. 복원공사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고,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이주상가(풍물시장)를 조성해 달라는 것과 복원 후에도 청계 7~8가에서 노점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노점상은 불법이기 때문에 피해 보상도, 노점 허용도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006년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동대문 풍물시장의 폐쇄는 예고됐다. 그해 8월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에 디자인콤플렉스(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여 풍물시장의 철거를 공식화했다.

2007년 2월부터 9월까지 디자인콤플렉스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마친 서울시는 2008년 4월 16일 동대문 풍물시장을 폐쇄했다. 서울시가 노점상에게 내놓은 대책은 동대문구 제기동(숭인여중 터)에 새로 조성한 풍물시장으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진 곳에 조성된 풍물시장에 입주를 희망하는 노점상은 많지 않았다. 결국 청계천 복원이라는 열망 속에서 노점상들은 희망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과 문서로 합의하지 말라

청계천 복원사업이 본격화되던 2002년 8월 12일 청계천 상권수호 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청계 3∼4가에 있는 7개 상인단체(세운상가시장 협의회, 산업용재 공구상가협회, 아세아상가, 광도 상가, 대림 상가, 현대 상가, 청계 상가 상우회)가 대책위에 참여했다. 해가 바뀐 2003년 2월에는 의류 상가 단체들이 중심이 된 의류 상가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서울시와 상인 대표들 간의 협상은 2003년 1월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협상에 임했다. '영업 손실 보상 등 간접보상은 없다', '이주문제와 리모델링 재개발 재건축 관련 금융 지원 등의 협상안에 대한 문서계약은 없고 오직 구두로 설득하고 협상한다', '이주 의지가 있는 상인은 최대한 도와준다', '공사 도중 일어난 상품 및 건물 파손 등 직접적 피해는 100% 보상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일관성 있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황기연 외, <프로젝트 청계천>, 174쪽)

이중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영업 손실 보상 등 간접보상은 없다'는 것과 '문서계약은 없고 오직 구두로 설득하고 협상'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시의 협상 원칙은 "정부는 기업과 달리 정책을 가지고 누구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므로 계약서는 필요 없다"는 이명박 시장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상인들의 경우 '청계천 복원반대'를 내세웠으나 협상이 시작되자 피해 보상과 공사 연기가 주된 관심사였다. 서울시는 피해 보상은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사 연기는 이명박 시장 임기 내에 완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2003년 4월 2일 서울시는 청계 상인들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대책은 3개 분야(영업 불편 최소화 대책, 상권 활성화 대책, 기타사항) 10개 항의 내용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때 처음으로 이주지원 대책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토대로 서울시와 상인 대표들은 송파구 문정동에 이주상가를 건설키로 잠정 합의(2003. 5. 23)했다. 비공식으로 이루어진 후속 협상에서 이주단지를 9만 평에서 15만 평으로 확대키로 하고, 청계 상인에게 이주상가를 특별분양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2003년 6월 21일 이명박 시장과 6인의 상인대표와의 면담에서 청계 상인 이주계획은 사실상 합의됐다. 이날 합의된 내용은 '상인대책 전담기구의 설치', '이주나 잔류와 상관없는 상권관리대책 마련',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상인대책 추진'이었다.

그런데 이날 합의는 문서가 없는 구두 약속이었다. 협상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관철한 서울시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서울시는 이때의 합의를 '공공부문 갈등관리 전략'의 모범사례로 꼽았다). 반면 이명박 시장의 달콤한 말을 믿었던 상인들은 이날의 약속이 족쇄가 되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청계 상인 이주상가 가든파이브

조감도 중간 왼쪽 건물부터 전문상가인 라이프(Life)동, 웍스(Works)동, 툴(Tool)동이 2008년 12월 완공되었다. 조감도 위쪽(남쪽)이 물류단지(화물터미널, 집배송시설, 창고 등)이며, 아래쪽(북쪽) 활성화 단지(오피스 센터 등)이다. 2015년 현재 가든파이브는 전문상가인 라이프동, 웍스동, 툴동은 완공된 상태이고, 활성화 단지는 공사 중이며 물류단지는 건설되지 않았다. 조감도를 촬영한 이미지이다.
▲ 가든파이브(동남권 유통단지) 조감도. 조감도 중간 왼쪽 건물부터 전문상가인 라이프(Life)동, 웍스(Works)동, 툴(Tool)동이 2008년 12월 완공되었다. 조감도 위쪽(남쪽)이 물류단지(화물터미널, 집배송시설, 창고 등)이며, 아래쪽(북쪽) 활성화 단지(오피스 센터 등)이다. 2015년 현재 가든파이브는 전문상가인 라이프동, 웍스동, 툴동은 완공된 상태이고, 활성화 단지는 공사 중이며 물류단지는 건설되지 않았다. 조감도를 촬영한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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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단지를 짓기로 한 서울 송파구 문정동 634번지 일대는 1999년 서울시가 지역거점 유통단지로 지정한 곳이다. 2002년 서울시는 이곳에 동남권유통단지를 짓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9만 평으로 계획되었던 동남권유통단지는 2003년 청계 상인 이주단지가 추가되면서 15만 평으로 확대되었다.

동남권유통단지는 2006년 10월 서울시 산하 SH공사의 주관으로 착공되어 2년 2개월 후인 2008년 12월 완공됐다. 완공과 함께 동남권 유통단지는 가든파이브(Garden 5)라 명명된다. 총 8360여 개의 점포로 구성된 가든파이브는 전문상가인 라이프(Life)동, 웍스(Works)동, 툴(Tool)동과 물류단지(화물터미널, 집배송시설, 창고 등)와 활성화 단지(오피스센터 등)로 구성된다. 2015년 현재 가든파이브는 전문상가인 라이프동, 웍스동, 툴동은 완공된 상태이고, 활성화 단지는 공사 중이며 물류단지는 건설되지 않았다.

청계 상인들에게 분양된 상가는 라이프동과 툴동이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장지역과 연결된 라이프동은 지하 5층 지상 11층에 연면적 42만6625㎡로 패션관, 영관, 리빙관, 테크노관으로 구성된 유통전문상가다. 공구상가로 지어진 툴동은 지하 5층 지상 10층에 총면적 27만3851㎡로 철물, 배관, 소방, 미싱 등으로 구성된 산업용재 상가다.

가든파이브의 건설비는 7692억 원으로 예상되었으나 실제로는 2배 가까운 1조3393억 원이 들어갔다. 건설비가 이렇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 서울시는 청계 상인들이 '백화점 수준의 상가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공사 기간을 2년 2개월로 단축한 것이 건설비 증가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서울시는 애초 계획보다 착공이 늦어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시공사에 공기 단축을 요구했다. 시공사들은 서울시의 독촉에 철야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건설비가 대폭 늘어났다.

건설비의 증가는 예산 낭비뿐 아니라 분양가 상승을 촉발하여 가든파이브 문제를 꼬이게 하였다. 서울시가 청계 상인들에게 처음 제시한 상가(전용면적 7평) 분양가는 7천만 원이었다. 하지만 건물이 준공되자 서울시는 애초 약속을 어기고 2억 원에 가까운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분양가가 대폭 인상되자 다수의 청계 상인들은 입점을 포기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든파이브 공사가 한창이던 2007년 입점을 희망한 청계 상인은 6097명이었다. 1차 특별분양(2008년 8월 5일~25일) 당시 신청한 사람은 6097명 중 4757명(78%)이었다. 그 후로도 분양신청은 저조해 2010년 6월 개장 당시 입주한 청계 상인은 1028명(16.8%)에 불과했다(2015년 현재 가든파이브에서 영업을 하는 청계천 이주상인은 1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든파이브, 이런 복마전은 없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장지역 3번 출구와 연결동 라이프동은 패션관, 영관, 리빙관, 테크노관으로 구성된 유통전문상가다.
▲ 가든파이브 라이프동 모습. 서울 지하철 8호선 장지역 3번 출구와 연결동 라이프동은 패션관, 영관, 리빙관, 테크노관으로 구성된 유통전문상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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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이브는 2008년 12월 완공과 함께 개장하지 못했다.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광고를 내보내는 등 홍보에 주력했음에도 개장일은 네 차례나 연기됐다. 개장 지연의 주된 원인은 분양이 너무 저조했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10일 가든파이브가 개장할 당시에도 분양률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입점한 상가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다.

가든파이브의 입지가 좋지 않은 것도 개장 지연에 한몫했다. 가든파이브는 서울시와 성남시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있지만 사람들을 끌어모을 흡인력이 없었다. 위례신도시, 문정 법조단지 개발이 추진되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다. 근처에 잠실 롯데월드와 삼성동 코엑스가 위치하는 상황에서 가든파이브를 찾을 이유는 없었다.

청계천 상권의 특성을 잘 살리지도 못한 것도 문제였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앞두고 서울시가 분석한 청계천 상권의 특징은 같은 업종의 가게와 소규모 공장이 밀집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든파이브는 청계천 상가의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졌다.

분양률이 높지 않자 2009년 4월 SH공사는 가든파이브 이주전문상가 특별공급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미신청자까지 대상자 확대', '전매제한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축소', '신용불량자의 명의 변경(승계)을 직계존비속까지 확대', '잔금 납부일로부터 2년간 대출금리 초과분 보전' 등이었다.

그런데도 접수율은 전체 상가대비 40% 정도에 불과했다. 청계 상인들에 대한 특별분양은 2008년 10월부터 2010년 개장 때까지 모두 9차에 걸쳐 시행됐다. 분양이 신통치 않자 상가 임대도 병행되었다. 그런데 임대로 입점한 상가들의 경우 장사가 되지 않자 임대료와 관리비를 체납하여 명도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개장을 앞두고 분양 실적이 저조하자 SH공사는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인테리어비 지원과 관리비를 무상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SH공사는 입점하는 상가마다 1000만 원씩, 총 230억 원의 인테리어비를 지원했다.

또한 SH공사는 대형유통업체(키 터넨트)의 유치에 몰두했다. 이랜드그룹의 NC백화점을 비롯하여 이마트, 킴스클럽, 엔터식스, CGV 등 유통자본의 가든파이브 입주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대형유통업체의 유치는 분양률을 높이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으나 만만찮은 나쁜 결과를 동반했다.

대형유통업체의 입점을 위해 이미 입점한 상가들을 옮겨야 했고, 이 과정에서 상인들과 마찰이 빚어졌다. SH공사는 2010년 6월 NC백화점을 라이프관에 유치하면서 119억 원의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했다. 2011년 6월 툴동에 이마트가 입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SH공사의 지원은 청계 상인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대형유통자본에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이주단지로 지어진 가든파이브의 건설 목적에 반하는 것이다.

NC백화점, 이마트, 킴스클럽, 엔터식스, CGV 등 대형 업체들이 입점하면서 가든파이브는 활기를 띠는 듯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대형유통자본의 유치는 중소 상가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예컨대 NC백화점과 엔터식스에 신발 매장이 들어서면서 일반 신발 상가들은 손님을 빼앗기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NC백화점은 연결 통로를 막아 일반 상가의 영업을 방해하는 갑질을 부리기까지 했다.

SH공사가 대형유통자본을 유치하여 영세 상인들의 입지를 좁히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가운데 가든파이브의 관리체계는 비대해졌다. 가든파이브에는 SH공사에서 파견한 사업단, 입주자 대표기구인 관리단, 그리고 관리단이 설립한 관리회사가 난립하는 옥상옥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관리단이 설립한 관리회사의 경우 인원 구성이 같고, 소관 업무가 겹친다.

분양률 저조, 대형유통자본의 유치와 각종 지원책이 남발되면서 SH공사의 비용 부담 또한 늘어났다. 2008년 개장 후부터 2010년 1월까지 SH공사가 지출한 관리비용은 159억 원에 달한다. 부분 개장을 한 2009년 9월 이후 매월 15억 원이 넘는 관리비를 부담하면서 SH공사는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가든파이브 문제, 서울시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가든파이브는 공식 개장일을 네 차례 연기한 다음 2010년 6월 10일 개장했지만 현재까지 표류하고 있다.
▲ 가든파이브 라이프동 외벽에 새겨진 세일 광고. 가든파이브는 공식 개장일을 네 차례 연기한 다음 2010년 6월 10일 개장했지만 현재까지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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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산장 같다."

2011년 12월 가든파이브를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역설적이게도 청계천 상권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10년, 서울시민들은 복원된 청계천을 거닐며 환호했지만 가든파이브에서는 청계 상인 이주잔혹사가 쓰이고 있었다.

청계 상인들은 서울시가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의 피해자들이다. 청계 상인들을 골치 아픈 떼쟁이, 악성 민원집단으로 대해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서울시는 청계 상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신뢰를 쌓으면서 가든파이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가든파이브가 자리를 잡으려면 서울시의 콘트롤타워 기능이 회복돼야 한다. 지난 2006년 6월 서울시는 동남권 이주사업 추진단을 구성하여 청계 상인에 대한 이주 대책을 총괄한 바 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다음 추진단이 해체되면서 체계적인 이주대책은 중단되었다. 가든파이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가든파이브 전담부서를 사업단으로 격상시켜 SH공사를 아우르는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가든파이브 활성화를 위한 단기적 처방과 중기적 계획, 장기적인 전망 수립도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가든파이브 건설로 발생한 채무를 해결해야 한다. 가든파이브를 짓는 데 투입된 1조3393억 원은 SH공사가 전액 차입한 금액이다. 1조3393억 원 중 2015년 6월까지 회수된 금액(분양 대금)은 8608억 원에 불과하다. 회수하지 못한 4560억 원(34.6%)의 연간 이자가 216억 원에 이른다.

중장기적으로는 청계천 이주상가라는 특성을 살리기 위한 방안들이 시행되어야 한다. '업종 간 집적된 규모와 상호 연관된 네트워크'라는 청계천 상가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서울시는 가든파이브의 환경과 지원책을 수립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가든파이브 주변 환경이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위례신도시가 건설되고 있고, 문정 법조단지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유리한 조건을 십분 살려 가든파이브가 청계 상인들의 삶의 터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서울시는 관심과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된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 전상봉 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칼라밍(www.columning.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태그:#가든파이브, #동남권유통단지, #청계천복원사업, #이명박,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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