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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대전시민아카데미'는 20~30년씩 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해 온 이 땅의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연속 인터뷰한다. 땀 흘려 일해서 직장과 가정,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를 지켜온 그들이 진정한 숨은 영웅들이다. [편집자말]
"청춘도 없이 힘든 삶을 이어왔지만 후회는 없어"
 "청춘도 없이 힘든 삶을 이어왔지만 후회는 없어"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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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가뭄 속 모두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비가 드디어 내리던 날 지난달 27일, '대전시민아카데미' 책방에서 덤프트럭 운전사 박찬옥(57)씨와 마주앉았다. 마침 비가 와서 작업이 쉬는 날이라 볼일도 볼 겸 나왔다는 박씨,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30년 넘게 덤프트럭 운전대를 잡으며 먹고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 달라 청했다.

현재 대전 동구 판암동 재개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는 33년 전, 군 제대 후 처음 덤프에 손을 댄 게 지금까지 왔단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운전뿐이라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그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어"

"공군을 지원해서 갔는데 거기서 통근버스를 몰았어요. 군에서 버스를 운전하고 나오니까 작은 차는 몰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만진 게 덤프트럭이었어요. 15톤 덤프 '미쯔비씨 80A'라고 있었는데, 그 차 기사로 타서 강원도 묵호가 동해시로 바뀌면서 택지 조성하는 현장에 투입됐어요. 그게 첫 일이었죠."

박씨가 받은 첫 월급은 23만 원, 당시 상황으로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객지에서 하루 12시간을 주야 구분 없이 힘들게 일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는 박씨.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부품 조달해서 밤늦게까지 수리해놓고 다음날 또 일 나가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도 불평불만 할 수가 없었어요. 덤프기사 일자리가 흔치 않았거든요. 내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의 차를 타는 저로서는 차주 마음에 들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건데 어디 불평불만 할 수 있었겠어요."

월급을 못 받는 일도 다반사였다. 차주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몇 개월씩 월급이 밀리기도 하고, 월급이 밀려도 행여나 잘릴까봐 말도 못하고, 그렇게 떼인 월급이 꽤 된다고.

"여건이 워낙 열악했어요. 차주들도 주기 싫어 안 준 건 아니겠죠. 월급도 못 받고 결국 당하고 말았어도 지금처럼 노동청에 신고하는 걸 알지도 못했고. 힘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많이들 당했어요 그 때는."

기사생활 3년 만인 1986년 박씨는 15톤 덤프트럭을 장만했다. 이후 15톤 트럭 한 대를 더 장만해 기사도 태웠다. 그럭저럭 안정이 되어가려던 때 박씨는 가지고 있던 15톤 트럭 두 대를 팔아 23톤 트럭 한 대를 장만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고난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23톤 '앞사발'이라고 있었어요. 앞바퀴가 네 개라서 '앞사발'이라고 하는데 보험료, 기름값 등 계산을 해보니 가지고 있는 두 대를 팔고 큰 차 한 대를 끄는 게 낫겠더라고요. 집사람이 반대를 하는데도 강행했죠. 그게 1997년도였어요. 그런데 일하던 공사현장의 회사가 잘못돼서 부도 5천만 원을 맞은 거예요. 일을 하고 어음으로 받았는데 종이가 된 거죠. 게다가 얼마 안 있어 IMF까지 터져버렸어요."

"부도에 IMF까지, 못된 생각도 했지만 가족 때문에 버텨"

박씨의 삶이 담긴 덤프트럭과 함께
 박씨의 삶이 담긴 덤프트럭과 함께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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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차 할부금과 어음 빚을 갚느라 5년여의 시간을 힘들게 버텨왔다는 박씨. 너무나 큰 어려움이 겹쳐서 오다 보니 잘 마시지 않던 술을 찾고 걷잡을 수 없는 방황이 시작되었다며 한숨을 내쉰다.

"지금도 가끔 술 한 잔하고 그때 생각하면 고개를 떨궈요. 집사람도 저도 엄청 고생했죠. 집에 가압류가 들어오고, 초등학생 아들, 딸 데리고 어디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어요. 형제들한테 돈도 빌려보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결국 장인 장모님이 도와주셔서 헤어 나올 수 있었어요."

나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들에게는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넉넉하게는 아니어도 원만히 해 주려고 노력했다는 박씨의 이야기에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다만, 어렵고 힘든 때 아이들에게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던 것이 너무나 마음 아프다고.

"돈에 쪼들리다 보면 부부싸움을 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부딪히는 모습을 집에서 애들이 볼 수밖에 없고. 그게 너무 속상하고 미안해요"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그래도 사고 한 번 안 치고 부모 속 썩이지 않고 무던히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단다.

덤프업계에도 시대의 흐름이 있다. 15톤에서 23톤으로, 그리고 24톤, 지금은 25톤을 끌어야 한다. 박씨는 2005년 25톤 덤프트럭을 새로 구입했다. 차 값도 만만치 않을 텐데 때때로 바꿔야 하는 이유는 뭘까.

"토사든 골재든 짐이 더 실리니까요. 사용자 입장에서는 같은 가격에 짐을 더 실을 수 있는 차를 원해요. 그러니 몇 년간 힘들게 할부 갚고 숨 좀 쉴만해지면 또 차를 바꿔야 하고, 그게 반복되더라고요. 25톤으로 바꾸고서 4년간 할부를 갚았어요. 월 250~300만 원 정도 할부금이 들어가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상황이 비슷해요. 이제 11년 돼 가는데 손 볼 데가 하나 둘 늘어가고 있어요. 그래도 더는 안 바꾸려고요."

"기름값이 하루 20만원, 차량 할부금이 월 250만원"

33년간 덤프트럭 운전대를 잡고 공사현장 누벼온 박찬옥(57)씨
 33년간 덤프트럭 운전대를 잡고 공사현장 누벼온 박찬옥(57)씨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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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덤프트럭 일은 겨울 석 달과 장마철 두 달은 비수기다. 1년 열두 달 중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6~7개월 정도. 일감이 많을 때 부지런히 일을 해서 비수기 때 구멍 나는 부분을 메우는 식으로 생활이 반복된다.

"우리는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일 있으면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무조건 달려가야죠. 애들 어릴 적에 엄마아빠랑 놀러가고 싶다고 해도 못 갔어요. 남의 차 탈 때는 차주 말 들어야 하니까 못 움직이고, 내 차 탈 때는 할부금 내고 하다 보면 어려우니까 주말 없이 일해야 하고. 주말에 일하다 보면 외곽에 차가 많이 밀려요. 가족끼리 놀러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일 해야 하는데 차 막히니까 짜증도 나고 그래요."

박씨는 주로 토사를 나르고 부리는 작업을 한다. 아파트나 건물을 지을 때 우선되는 작업이 흙을 파내는 것인데, 그렇게 파낸 흙을 회사 또는 업주가 지정해주는 장소에 가져다 부리는 것이다.

흙작업은 골재, 아스콘, 폐기물 등을 운반하는 것보다 '탕뛰기'가 덜한 것이 낫다면 나은 점이다. '탕뛰기'란 일당이 아닌 운행횟수로 임금을 받는 계약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충남의 방파제 공사 현장에서 '탕뛰기'를 경험했던 박씨는 '아주 위험하고 못 할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15톤 탈 때 충남 어딘가 방파제 공사 현장을 갔었는데, 덤프로 후진하면서 흙을 채워나가는 일이었어요. 깜빡 잘못하면 차가 뒤로, 바다로 그냥 뒤집어지는 작업이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탕뛰기 차량들 때문에 못 하겠더라고요. 한 번이라도 더 갔다 오려고 엄청 설치고 다니는 거예요. 작업 자체도 위험하고 신경 쓰이는데 순서대로 하는 게 아니라 앞지르려고 설쳐대니까 너무 피곤한 거죠. 탕뛰기가 사고의 원인이에요."

그래도 박씨가 다니는 현장들은 탕뛰기를 없애기 위해 하루 임대료(일당)를 정해놓고 준다. 현재 25톤 덤프트럭의 하루 임대료는 55만 원선. 덤프트럭 운전자로서 가장 어려운 점,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씨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현실적이지 못한 임대 단가'라고 답했다. 물가도, 보험료도, 부속비도, 신차 가격도 오르는데 임대료는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의 행태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하루 8시간 일하면 기름값이 20만 원 내외로 들어요. 그나마 요즘 기름값이 내려서 그 정도고, 한참 비쌀 때는 기름값만 40만 원 가까이 들었어요. 거기에 장비값(덤프트럭), 운전사 일당 등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하루 큰돈이 오고가는 업종이다 보니 수입이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 남는 게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앞바퀴 4개, 뒷바퀴 8개가 들어가는 25톤 덤프트럭의 앞 타이어 한짝 교체비용이 55만 원, 뒷타이어 한짝 교체비용이 40만 원이란다. 거기에 자동차 보험료가 연 700만 원~1천만 원이 들어가니 차 한 대 굴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

"하도급 구조, 비현실적인 단가가 문제"

박씨는 임대단가가 '건설공사 표준품셈' 만큼 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공사 표준품셈'이란 건설공사 중 대표적이며 일반화된 공종 및 공법을 기준으로 공사에 소요되는 자재 및 공사량 등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건설사가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작성·제출하게 된다.

"대전의 경우 표준품셈표상 15톤 트럭 하루(8시간 기준) 임대료가 80만 원가량, 25톤 트럭은 100만 원이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받는 금액은 50~60만 원 선이니 한참 못 미치죠. 하도급 구조가 문제예요. 원청에서 책정한 금액이 하청으로 넘어오면서 더 깎이니까요. 노조가 생긴 후로는 덜하지만 예전에는 배달사고도 많았어요."

원청인 종합건설사가 하청인 전문건설사에 하도급을 주면서 애초에 책정된 단가보다 낮아지고, 거기에 중간업자까지 끼면 단가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씨처럼 공사차량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보통 하청의 하청인 중간업자에게 일을 받는데, 일만 시키고 돈을 주지 않고 도망가는 '배달사고'가 종종 일어났다고.

"처음에는 전문건설사 원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전문건설도 원청의 횡포에 시달리는 약자더라고요. 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원청도 있고, 그래도 말 못하죠 약자니까. 지금은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을 해요. 중간업자가 아닌 전문건설사를 통해 직접 비용을 받게끔 하는 등 안전장치를 요구하죠. 많이 나아졌어요. 예전에 비하면 천지개벽한 거죠."

박씨는 노조가 생긴 후로 현장의 작업여건이나 결제 시스템, 사람 간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다소 긴 결제 기한이다. 현재는 일을 한 후 30~60일 사이에 결제가 되는데, 45일이 넘어가면 운전자가 미리 사용한 주유비 등의 카드 값을 2번 지불하게 된다. 회사 사정상 결제일이 늦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보니 그 피해는 운전자에게 돌아가는 꼴. 박씨는 최소한 45일 이내에 결제가 되기를 희망했다.

"청춘 없었던 내 인생, 후회는 없어"

33년간 덤프트럭을 운전해 온 박찬옥 씨.
 33년간 덤프트럭을 운전해 온 박찬옥 씨.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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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덤프기사로서의 인생이 후회스럽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다는 박씨다. 노동의 대가가 너무 작은 것이 가장 아쉽단다. 그래도 이 일을 하며 뿌듯한 순간도 있다.

"우리 운전사들끼리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해요.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 공사 내가 한 거야 인마'하고(웃음). 을지대병원 지날 때면 '여기 흙을 내가 팠는데' 하고 옛날 생각하죠. 많은 건설현장 가운데 내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게 조금 보람되다고 할까요."

군 복무 시절 통근버스를 운전하다가 군인 아버지를 둔 아내를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그는 아들, 딸이 빨리 자리 잡는 걸 보는 게 소원이다. 현재 아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고 딸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좋은 직장, 안 좋은 직장이 어디 있겠어요. 아이들이 어디든 빨리 취직해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주말에 가족들 모여 식사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젊은 나이에 준비도 없이 결혼해 평생 먹고 살기 바빴던 그는 '청춘이 없었다'고 말한다. 좋은 가정에서 잘 자란 아내를 데려다 고생시킨 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정작 그 역시 청춘도 없이 힘들게 살아왔다고.

누군가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렇게 힘든 세월을 버텨왔을 생각을 하니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했던가. 박씨가 지금이라도 청춘을 살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노동자, #건설, #덤프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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