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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차례의 유럽의 일상생활, 시민사회 관찰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6개월여에 걸친 '행복사회, 유럽' 연재를 마치고 고민의 넓이와 깊이는 증폭되고 심화됐다. 영국,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이른바 유럽 선진국의 '사람 사는 사회'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여전히 나는 절망과 희망의 경계선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제 나는, 또는 우리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설사 난민이 될지언정 이 나라에서 벗어나는 길이 유일한 해법은 아닌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숙고했다. 지금 한국은 국가로서 기본적인 품격과 자존감조차 찾아볼 수 없다. 때로 무정부상태를 방불케 하는 어설픈 정부는 국민을 돌보거나 보살필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정부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마음이 있기나 한 건지 오해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심지어 제 나라 청년들로부터도 손가락질과 조롱을 당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래의 희망인 청년들은 조국을 신뢰하고 사랑하기는커녕 원망하고 자조하는 마음만 가득하다. 애국심이나 동포애조차 잘 발현되지 않는다. 급기야 N포세대 청년들은 조국 한국을 '헬조선'이라 비판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옥(Hell)과 조선(朝鮮)을 합성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이다. 상황은 막장에 다다른 느낌이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헬조선'을 탈출할 대안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럴 역량을 갖추고 있기나 한가. 선진 유럽은 이미 19세기부터 진지 구축을 마치고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데 우린 지금 진지 설계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앞으로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기나 한 걸까.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나. 나는 유럽에서 답에 이르는 길을 목격하고 충분히 눈치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마리를 붙잡고 왔다. 하지만 그 길이 우리의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갑갑함과 무력감도 함께 얻어왔다. 

국가나 정부가 아닌 국민과 시민이 행복해야 한다

지난해 세월호 분향소에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
 지난해 세월호 분향소에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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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행복한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그 나라의 국민과 시민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부유하고 정부가 강력해서 행복한 게 아니다. 유럽의 시민들이 행복한 이유는 물질이나 외형에 있지 않다. 오래된 집, 마을, 길 같은 역사적 자산, 그리고 신뢰, 협동, 참여 같은 뿌리 깊은 사회적 자본에 일상과 평생의 삶이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국가의 권력이나 정부의 방침이 감히 국민과 시민을 지배하지 않는다. 문화와 예술, 자유와 평화, 협동과 연대, 자주와 자립, 이타심과 공동체의식, 신뢰와 질서, 생태주의와 생명사상, 지역재생과 농촌보전 등이 유럽인들의 일상생활과 시민사회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 시민 스스로 통치하고 있다. 민주적으로 자치하고 있다. 그렇게 정치, 경제, 산업,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의 영역에서 국가와 사회가 정상적인 패러다임과 공정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불행하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사는 게 불안하고 불쾌하다. 재수 없고 위험하다고 느낀다. '위험사회, 절망사회'의 세계적인 수준의 표본이 바로 한국이라는 조사 보고나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자살률은 부동의 1위다. 그러니 결코 반사회적인 주관적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처해있는 현실이 그렇다.

한국인은 서로 믿지 않는다. 친구나 이웃도 쉽게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서로 협동하거나 공유하지 않는다. 사회적, 정치적 연대가 이루어질 리 없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가 자꾸 편을 가른다. 남과 북, 경상도와 전라도, 강남과 강북이 자꾸 금을 긋고 벽을 쌓는다. 사용자와 노동자, 선생과 학생, 갑과 을이 서로 반목하고 질시한다. 그래야 겨우 나 혼자라도 먹고살 수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한국인은 힘들 때 의지할 친구나 동료 하나 없다. 국가와 정부의 책임과 의무는 개인과 가계가 온통 짊어지고 있다. 감당하기 어렵다. 대의정치와 민주주의는 조롱당하고 능멸당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불법과 반칙이 얼마든지 이길 가능성이 있다. 공기인 언론과 방송도 사사롭게 얼마든지 소유하고 활용할 수 있다.

전문가와 장인은 없고 사이비와 얼치기만 난무한다. 친일파와 독재자의 후손이 되려 도덕과 정의를 가르치고 노래한다. 양아치와 모리배가 사회지도층 완장을 차고 나와 광장과 대로를 장악하고 있다. 거짓말과 모함도 우기면 진실로 인정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불량사회 한국'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이 건설한 허무와 불통의 건축물 청와대
 제왕적 대통령이 건설한 허무와 불통의 건축물 청와대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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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 사회에선 정신은 잿빛으로 타락하고 물질만 금빛 찬란하다. 공공성과 공동체는 소멸하고 이기주의와 패거리만 득세한다. 무기력증과 모멸감과 복수심이 일상을 지배한다.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주의의 완전무결한 표본이다. 그래서 불량한 한국은 '불행사회'다. 참 '나쁜 나라'다. 한국, 한국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않다. 공멸 직전이다.

그래서 나는 불량사회 한국, 불행사회 한국의 병인과 치부를 낱낱이 고발하려고 한다. 고자질이라도 하려고 한다. 일단 '불량한 정치'가 문제의 뿌리다. 한국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만병의 원인이다. 독재자의 향수에 취해있는 대통령, 패거리나 동아리 같은 정당, 국회의원을 감투로 착각하는 국회, 갑질이 주요업무이자 주특기인듯한 행정, 무소불위의 신처럼 스스로 군림하는 법원, 토건 토호들에게 장악당한 지방자치 등부터 우선 손 봐야 한다.  

'부실한 경제'는 사람을 자꾸 죽인다. 재벌은 기업이 아니라 일개 가족의 구멍가게로 전락하고 있다. 애초 상품이 될 수 없는 부동산은 여전히 최고의 유망상품이자 축재수단이다. 돈 놓고 돈 먹는 고리대금업 수준인 금융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식량기지 농업과 농촌도 장사꾼, 외세의 차지가 되고 있다. 노동자는 회사에서, 상인은 시장에서 자본에게 축출당하고  있다.

'불안한 사회'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전인을 키워야 할 학교는 시험꾼을 양산하는 학원과 다르지 않다. '사람으로서 잘먹고 잘사는 방법'이 아니라 '친구와 싸워 이기는 법'만 가르치고 있다. 복지를 적선이나 구걸이라 칭하며 낙인효과를 찍으려는 자들이 복지예산을 주무르고 있다. 시민이나 응원단이 없이 소속 운동선수끼리만 웅성거리는 시민운동도 안타깝다. 마을이나 공동체의 깃발이 난무하는 난민촌 도시는 결국 마을이나 공동체가 될 수 없다. 최저생계비도 못 버는 늙은 농부들만 무성한 농촌은 농촌이 아니라 농장의 모습이다. 마을은, 공동체는, 시민사회는 만드는 게 아니다. 서로 살려서 더불어 사는 곳이다.   

'불쾌한 문화' 때문에 기분은 더욱 우울하고 불행하게 느껴진다. 이제 사람들은 책은 읽지 않는다. 책 속에 길이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나쁜 예술, 나쁜 문학도 힘이 세면 용서를 받는다. 역사도 역사를 잘 모르는 정부가 마음대로 생산하고 공급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언론도 소통과 진실을 잘 모르는 정부의 차지가 되었다. 기후나 환경이 나빠지면 더욱 불행하게 죽을 수  있다. 

단 하루라도 행복한 한국인으로 살고 싶다

시청광장 옆 4.19 의거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비
 시청광장 옆 4.19 의거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비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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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국민의 의무는 다하는데 내 몫의 권리는 찾을 수 없고, 난데없는 봉변과 불운이 다반사다. 도시의 주거지 주변에선 억울하고 야속한 사건과 사고도 빈발한다. 결코 내 잘못이 아닌 경우에도 그냥 모른 척, 슬쩍 피해갈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 불편하고 어려운 소시민의 일상이 매일 무한반복된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몹시 조심스럽고 두려운 극한의 생존환경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국가는 야생의 정글, 도시는 사각의 링같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운명의 조국 한국은 그 표본이다.

십수 년 전 도시와 국가로부터 벗어나 자발적으로 하방했다. 이후 그저 마을에서, 마을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이유다. 하지만 그 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을에 내려가 살아도 국가로부터, 한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좀 벗어나고 싶다.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으로서도 얼마든지 행복해지고 싶다. 단 하루만이라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앞으로 또 6개월여 '불행사회 한국'을 연재하는 고행을 자초하는 절박한 이유다.

연재 예정 목차

1. 불량한 정치 
  1-1. 대통령-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다   
  1-2. 정당 - 정당은 동아리가 아니다 
  1-3. 국회 - 국회의원은 감투가 아니다
  1-4. 행정 - 공무원은 갑이 아니다 
  1-5. 법원 - 법관은 신이 아니다
  1-6. 지자체 - 지방자치는 토호의 것이 아니다 

2. 부실한 경제
  2-1. 재벌 - 재벌은 기업이 아니다  
  2-2. 부동산 - 땅은 주인이 없는 것이다
  2-3. 금융 - 돈은 상품이 아니다 
  2-4. 농업 - 농업은 장사가 아니다
  2-5. 노동 - 일자리는 자르는 게 아니다
  2-6. 시장 - 상인은 쫓아내는 게 아니다 

3. 불안한 사회
  3-1. 교육 - 학교는 학원이 아니다
  3-2. 복지 - 복지는 적선이 아니다
  3-3. 시민 - 시민은 운동선수가 아니다
  3-4. 도시 - 도시는 마을이 아니다
  3-5. 농촌 - 농촌은 농장이 아니다
  3-6. 공동체 - 공동체는 만드는 게 아니다

4. 불쾌한 문화
  4-1. 출판 - 책을 읽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4-2. 예술 - 예술이 없으면 불행해진다
  4-3. 문학 - 나쁜 글을 쓰면 불행해진다
  4-4. 역사 - 역사를 모르면 불행해진다
  4-5. 환경 - 환경을 해치면 불행해진다 
  4-6. 언론 - 언론이 망가지면 불행해진다


태그:#불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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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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