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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을 하면서 종종 듣는 말이 "인권은 너무 불편해"다. 성차별이나 장애 차별, 인종 차별, 나이 차별이 드러나는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신경 써야' 하니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게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인권은 원래 불편한 거야, 그리고 다양한 차이와 정체성을 알게 되면 당사자들의 속상함도 알게 되고, 이후에는 그런 말을 알아서 쓰지 않을 테니 불편하지 않을 거'라고 대꾸한다.

사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 말들 대부분이 차별을 바탕에 깔고 관습적으로 쓰던 말이다. 아직도 종종 사용하는 '병신'이라는 단어가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임을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알고도 의도적으로 차별의 말, 아니 혐오의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차별을 근거로 한 착취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일이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은 사실 비정규직 착취이다.

'비정규직이니까' 똑같이 일해도 '덜 받고 쉽게 해고'되도록 돼 있는 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걸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다. 기업과 재벌로 대표되는 이 사회 주류 세력, 권력이다. 차별을 통해 이득을 얻거나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차별에 민감하지 않다. 아니 민감하면 자신들이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차별로 부당하게 얻은 이익이나 지위를 잃고 싶지 않은 게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음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들

인권단체들이 수년간 요구해왔고 유엔인권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인권기구에서 수차례 권고받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06년 7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 권고할 차별금지권고법안을 확정하자 즉각적으로 반대 견해를 표명한 세력이 바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경영계였다.

그들은 인권위가 권고한 법안이 자의적으로 차별사유를 확대했다며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과 자유시장 경제 질서 및 기업 자율경영을 심각히 위협"한다고 했다. 그해 11월 경총, 전국경제인총연합회 등은 '기업에 부담을 준다'며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도 반대했다. 그에 비해 노동자들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관심이나 노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2008년 법무부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인권위 권고안에 포함됐던 '학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 형태나 가족 상황, 성적 지향'의 7개 차별금지 사유가 빠졌다. 이에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차별을 조장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막았지만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제정'은 지금까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나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보수 기독교세력이 차별금지법에 있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정치권은 이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종교를 등에 업은 세력들이 규모도 있고 운동방식도 소란스러워서인지,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2013년 발의했던 차별금지법안을 스스로 폐기하는 코미디까지 연출했다.

넘쳐나는 혐오 발언

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인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린 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동성애 인권 지지 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인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린 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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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력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행동을 극심하게 보이고 있다. "동성애는 죄악"이라며,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있는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막았다.

또한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자식 앞세운 사람들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농성하느냐"며 지속해서 공격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발언, 혐오 행동은 점점 도를 넘고 있다. 조우석 KBS 이사는 동성애 문제를 두고 '더러운 좌파'라며 인권활동가들을 비판했다. 인권위가 만든 보도준칙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발언이나 보도를 금하고 있지만 그는 "서로 협약한 게 있는데 내가 볼 땐 무시해도 된다"고 했다.

이러한 혐오 발언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함으로써 존엄성을 짓밟고 모멸감을 준다. 이런 혐오 선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되고 숨어야 하는 상황에서 소수자를 더 위축시켜 공론의 장에 끼어들기도 어렵게 만든다. '이제는 차별을 그만하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게 한다.

성소수자들을 비롯한 특정 집단을 범죄자나 열등한 집단으로 모는 혐오선동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규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혐오와 차별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14년 7월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아래 자유권 규약)' 위원회가 일본 인권상황을 심의한 후에, 일본 정부에게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발언(hate speech)의 금지를 권고한 바 있다.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인권위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8월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8월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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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고 있지만 인권전담 국가기구인 인권위는 의견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현재까지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지 오래됐다.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해야 마땅하나 오히려 정부 눈치, 재벌 눈치를 보고 있다.

인권위가 추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부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는 추상적인 규정에도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이 인권위원장이나 인권위원이 됐기 때문이다.

아동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한 경력이 있고 피해 아동의 일기를 본인 동의 없이 공개하며 인권침해를 벌인 유영하씨를 새누리당은 인권위원으로 임명했다. 또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 차별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최이우 목사를 청와대는 인권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런 반인권 인물들이 인권위원으로 있다 보니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인권위가 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바뀐 이성호 인권위원장도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에 침묵하고 있다.

국가 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아래 ICC)에서 한국 인권위에 대한 등급심사를 3번이나 미뤘지만 정부의 태도는 변함없다. ICC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한 인선절차를 마련하라고 했다. 시민사회도 '인권위원 후보 추천위원회'라는 인선절차를 담은 인권위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심사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내년 ICC 등급심사를 앞두고 법무부는 함량 미달의 인권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차별과 혐오로 이익을 얻는 자들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인권위원들로 인권위가 구성된다고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도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한 여러 국가기관이 있었으니까. 인권위의 권고는 규범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격 있는 인권위원들로 인권위가 구성된다면 재벌과 정부가 대놓고 인권침해를 할 때 '그건 인권침해니까 그만해'라며 사회적 동의를 호소할 수 있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

마찬가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혐오세력들이 지금처럼 차별과 혐오 발언을 대놓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차별과 혐오로 이익을 얻는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11월 14일은 민중 총궐기의 날이다. 자본을 비롯한 주류세력의 횡포와 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정당화했던 차별과 배제, 억압에 맞서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혹은 그녀)가 노동자든, 성소수자든, 이주민이든, 장애인이든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는 함께 싸워야 한다. 이날 많은 노동자·시민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혐오 발언 중단·인권위 독립성 확보를 위한 인권위원 인선절차 마련'에 한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명숙 시민기자는 인권운동사랑방 상임 활동가입니다.



태그:#민중총궐기, #국가인권위원회,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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