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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목줄' 잡고 울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치악 드림랜드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드림랜드는 강원도청과의 계약이 만료된 10월 28일 공식적으로 폐쇄를 선언했다. 폐쇄되기 하루 전인 27일 드림랜드를 찾아갔다. 드림랜드에 살던 호랑이 크레인을 만났던 것은 2012년. 그후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이 곳을 여러 번 찾았다.

10월 28일 폐쇄되는 원주 치악 드림랜드
 10월 28일 폐쇄되는 원주 치악 드림랜드
ⓒ Action for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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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부도를 겪으며 경제적으로 열악해진 동물원에서 동물들의 복지 역시 위태로워 보였다. 2012년 겨울부터 드림랜드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동물을 돕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호랑이 크레인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별>에 나온 주인공 크레인은 근친교배를 통해 태어나 안면기형이 있었고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다. 2004년 원주 드림랜드로 팔려온 크레인은 8년간 드림랜드에서 살았다. 크레인이 드림랜드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운 동물원에 크레인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이후 기적같이 박원순 시장님에게 보낸 청원 편지가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크레인은 극적으로 서울동물원으로 돌아갔다. 그게 2012년 12월 18일의 일이었다.

남아있는 동물이 걱정이었다. 동물원의 동물이 행복해지려면 동물원이 흥해야 하나 망해야 하나. 정답은 있다. 분명히 동물원은 야생동물을 가두는 곳이기 때문에 동물복지의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폐쇄하는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동물들의 갈 곳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는 이상 일정한 시간 동안 동물들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방향은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동물원이 경제적으로 열악해져 동물들이 굶거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은 누군가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적 근거가 필요했다. 이는 입법운동으로 모아졌다. 둘째 당장에 먹을 것이 부족한 동물들에게 한시적이나마 먹이를 급여했다. 차량봉사를 해주는 시민들, 사과와 고구마를 보내주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나는 직접 방문해서 사과와 고구마를 잘라 불곰의 우리 안에 직접 넣어주기도 했다. 맛있게 받아먹는 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평생 불행하게 살다 갈 운명이라면 한 순간이라도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하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찾아올 때마다 동물들이 없어지기도 했다. 갈 때마다 당근을 아삭아삭 잘 먹던 나귀는 봄이 오기 전 세상을 떴다고 했다. 사육사 아저씨는 드림랜드 동물들이 모두 나이가 많아 이제 서서히 자연사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다음에 오면 또 누가 없어져 있을까.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태어나게 한 것이 인간이라면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불행한 조건 속에 살다 갔다면 그것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다.

드림랜드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것은 2013년 5월 드림랜드 확장 계획에 대해 알게 된 이후였다. 시민들이 도와주니 이제 장사를 더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동물을 더 도입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환경청에 민원을 넣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결국 업체 측은 동물수입상에게 사기를 당했고 확장계획은 무산되었다고 했다.

동물원이 흥해야 동물이 사는 것일까. 망해야 사는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동물원은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망해가는 동물원을 정리하고 동물들이 갈 곳을 정하고... 이 일련의 과정을 강제할 수 있는 법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토끼 장 밖에 나와있는 토끼들. 문을 닫으면 저 토끼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토끼 장 밖에 나와있는 토끼들. 문을 닫으면 저 토끼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 Action for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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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동물원, 폐쇄를 원했건만... 황량하게 변했다

1년 6개월이 지난 2014년 1월 추운 겨울. 나는 드림랜드를 다시 찾았다. 원숭이가 눈에 띄게 나이를 먹어 보였다. 그리고 2015년 6월 케어 활동가들과 드림랜드를 다시 방문했다.

강원도청에 문의하니 올해가 20년 무상임대 계약이 끝나는 해라고 했다. 재계약은 안 된다는 의견을 보냈고 강원도청도 긍정적인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남아 있는 동물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했다. '남아 있는 동물 처리'라는 난감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갈 곳이 없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드림랜드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 불곰.
 드림랜드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 불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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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마침 마지막 근무를 하고 있는 사육사 아저씨를 만났다. 20년간 드림랜드에서 일을 했고 27일이 마지막 근무라고 했다. 그때 마악 불곰이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마지막 식사라고 했다.

"29일 가니까 마취 전에는 굶어야 하거든. 그러니까 이게 마지막이지." 
"기분이 어떠세요?"
'뭐 그냥 그렇지. 이제 나이도 먹고...집에서 쉬어야지."

오후 4시경 관람객 두 명이 입구 쪽 매표소로 다가왔다. 직원이 사무실에서 나와 이 곳은 문을 닫으니 이제 들어올 수 없다고 관람객을 돌려보냈다. 그렇게 나는 드림랜드의 마지막 관람객이 되었다. 퇴근하는 사육사 아저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남아 있는 동물들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동물원과 부산에 있는 동물원으로 분산 수용된다고 했다. 멸종위기종은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추적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동물들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흑염소와 토끼들은 어떻게 될까. 생명은 모두 소중하지만 현실적 법 체계에서 분명히 더 중요한 동물, 덜 중요한 동물이 정해져 있는 만큼 모두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지막 거는 기대는 그마나 서울동물원 사슴 매각 사태 이후 모든 동물원이 소위 잉여동물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팔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동물원에 대해 생각한다

동물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대부분 시민들은 동물원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곳에 가면 멋진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또 어떤 시민들에게는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동물원은 야생동물을 가두는 나쁜 곳이다'라는. 우리가 전 세계의 다양한 동물을 한 장소에서 편하게 보기 위해 저지른 악행의 결과는 예상보다 참혹했다.

장하나 의원이 발의한 (2013년) 동물원법은 끝내 소위원회에서 잠깐 논의가 되었을 뿐, 국회 본회의로 넘어가지 못했다. 동물원법이 발의되었다는 소식에 이른바 업계가 술렁댔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동물쇼를 못하게 되면 우리는 망한다'라는 말도 들었다. 법안을 둘러싼 여러 논의는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동물원의 모습과 자신이 속한 기관의 이익에 기반해서 이루어졌다.

동물원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드림랜드 사태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물원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받고 관리 감독을 받지 못한다면 동물원은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 운영될 수밖에 없다. 지난 3년간 동물원을 다니면서 '우리가 알아서 잘 관리하고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의심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람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제도는 사람이 바꿀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제도와 법, 시스템을 통해 다시 통제되어야 한다. 동물원에 살고 있는 존재는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이윤과 효율만으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동물원이 문을 닫게 된다면 그 동물들이 쓰레기처럼 취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최상의 삶을 만들어내는 마술램프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기 위한 안전장치다.

황량한 전시관에 남은 수리부엉이의 모습.
 황량한 전시관에 남은 수리부엉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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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실내 전시관. 새로 넣어준 닭고기는 입에 대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실내 전시관. 새로 넣어준 닭고기는 입에 대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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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보호소, 쉼터 마련을 정부에 촉구한다

2015년 환경부는 야생동물 개인 사육자를 대상으로 멸종위기 종 불법 사육자 자진신고제도를 시행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이 무분별하게 거래하고 사육하다 유기되거나 적발되는 사례가 늘고 있고, 거래의 규모와 판매현황을 수면 위로 올려 파악부터 하자는 취지였다. 개인이 야생동물을 사육하다 사육을 포기한 사례 역시 최근 늘고 있는데, 이들이 당장 갈 곳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지난 6월 일산에 있는 한 식당 수족관에서 샴 악어가 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샴 악어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당장 환경청은 난감하게 되었다. 사실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세상에 알려진 경기도 일산의 '동물의 왕국'이라는 동물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시 좁은 사육장에 갇혀 정형행동을 하던 반달가슴곰과 원숭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환경부에 민원을 넣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주인이 지난 1월 반달가슴곰과 원숭이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정부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8월이 지나도록 동물원에 남아있는 것일까.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환경청은 전국의 동물원에 그야말로 구걸하다시피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지난 9월 두 군데의 동물원으로 나눠 이송되었다. 동물원에서 포기하거나 개인이 사육을 기피해 소유권을 포기하게 된 경우가 늘어나자 한 환경청 직원은 고민을 토로했다. "이후 어떤 동물이 들어오게 될지 겁부터 난다"고.

야생동물 밀수와 거래가 급증하면서 밀수되어 적발된 동물에 한해서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이를 보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나 일부 동물원에서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보다 장기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일산 '동물의 왕국'에서 방치되어 있던 반달가슴곰. 사육을 포기한 후 이 반달가슴곰은 다른 동물원으로 이송되었다.
 일산 '동물의 왕국'에서 방치되어 있던 반달가슴곰. 사육을 포기한 후 이 반달가슴곰은 다른 동물원으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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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며 민간단체에 기부하는 시민이 많은 서구사회에는 이른바 '야생동물 쉼터 (생츄어리)'를 민간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기부의 규모가 크지 않고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작은 기부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에서 민간단체에서 쉼터를 마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현재 정부의 예산을 들여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는 전국의 유기동물보호소와 야생동물구조센터밖에 없다. 그러나 동물의 변화하는 상황은 새로운 형태의 보호소를 필요로 한다. 학대받거나 몰수, 유기되거나, 소유권을 포기하여 갈 곳 없는 사육된 야생동물(captive animals)을 위한 쉼터이다. 동물의 복지란 동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배려할 때 실현 가능하다.

생츄어리가 있었다면 드림랜드의 동물들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평생을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시달리던 동물들이 은퇴 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곳. 정부가 시작해보면 어떨까.

드림랜드에서의 마지막 날. 홀로 남은 사자는 다른 동물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드림랜드에서의 마지막 날. 홀로 남은 사자는 다른 동물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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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 ACTION FOR ANIMALS, # 동물원, #원주 드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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