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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순천시인학교 가을 문학기행인 신동엽 문학관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순천시인학교 주야간 회원과 순천문학 회장, 총무
▲ 신동엽 문학관 앞에서 단체 사진 2015 순천시인학교 가을 문학기행인 신동엽 문학관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순천시인학교 주야간 회원과 순천문학 회장,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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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토요일, 오전 8시가 임박하자, 순천삼산시립도서관 입구는 아침을 맞은 참새들처럼 부산스러웠다. 2015년 가을 문학기행을 가기 위해 순천 시인학교 강의를 맡고 있는 허형만 교수 외 순천 삼산도서관 시인학교 주, 야간 반 회원, 순천문학회 부회장, 총무, 등 총 24명의 인원이 순천시립삼산도서관 입구에 집결하여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 문학 기행 장소인 부여는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는데도 백제 문화를 엿볼 수 있어 다시금 마음이 설레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비롯하여 부소산성의 고란사와 낙화암을 통해 찬란한 역사 뒤의 불운한 백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 갓 시인의 문턱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껍데기는 가라, 금강,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시를 통해 불운을 벗은 말간 하늘같은 화합을 꿈꾸던 신동엽 시인의 문학관을 답사할 수 있어 더 한층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길 12번지에 자리한 신동엽 문학관을 향해 가는 길은 인생도 문학도 무르익는 나이인 만 39세에 간암으로 그 꽃을 채 피우지 못하고 살다간 시인의 여정을 보여 주듯 일제강점기처럼 막막한 휘부연 안개 속을 달리고, 전쟁분단, 군부독재, 이를 깨치고자 하는 혁명 같은 암울한 37개의 터널을 거쳤다.

신동엽 문학관으로 가는 골목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에 그려진 벽화
▲ 게스트 하우스 입구의 벽화 신동엽 문학관으로 가는 골목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에 그려진 벽화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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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30분에 도착해 문학관으로 들어서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껍데기는 가라는 청춘 사진관 카메라(벽 그림)가 오가는 이의 발자취를 찍고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만 가라'는 시귀가 발을 멈추게 하는 여행소 숙소 마당인 게스트 하우스가 쉬어가라는 듯 손짓한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이는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라는 시 전문이다. 이 시의 일부인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라는 시 구절이 뚜렷한 신동엽 문학관은 껍데기를 벗고 말간 하늘 아래 중립의 초례청을 꿈꾸던 신동엽 시인의 생애를 한 눈에 읽을 수 있었다. 신동엽 문학관은 부여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서 건축가 승효상이 신동엽의 시 정신에 부합하는 조형과 문학관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펼쳐보여준 예사롭지 않은 자태로 우릴 맞았다.

껍데기는 가라는 시 귀절이 반기는 신동엽 문학관
▲ 미래 시인들에게 던진 화두가 담긴 시귀 껍데기는 가라는 시 귀절이 반기는 신동엽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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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기대했지만 미리 예약된 세 팀의 해설이 있어 해설대신 영상관에서 신동엽의 시와 그의 꿈을 보았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의 말간 세상을 위해 시인은 선지자이어야 하며, 우주지인이어야 하며, 인류발언의 선창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며 이제 막 시인의 문턱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문학마당, 안마당, 옥상마당, 백제 수혈 유구지, 야외마당. 신동엽 생가로 이어져 있는 문학관은 좋은 사람, 좋은 세상, 좋은 언어를 꿈꾸었던 민족시인, 참여 시인으로 알려진 신동엽 시인의 문학 세계를 표현하듯 사각 건물 사이사이 진입 길을 두어 말간 하늘같은 저 편의 세계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신동엽 문학관 입구에서 오는 이를 맞는 신동엽 시인의 동상
▲ 신동엽 시인의 동상 신동엽 문학관 입구에서 오는 이를 맞는 신동엽 시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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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의 동상이 반가이 맞는 입구를 지나 미로 같은 내부로 들어서니 사이사이 환한 출구로 이어져 있고 미로 벽엔 작품이나 생전의 사진을 전시해 그의 사상이나 그가 꿈꾸는 화합의 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특히 동굴 앞에 서서 건너 편 허공을 바라보는 사진에서는 말간 하늘을 꿈꾸던 시인의 야망이 오롯하게 전해져 발길을 쉬 옮기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사이사이 공간을 분할한 유리 전시장엔 유품을 비롯하여 시집, 육필 원고 등이 진열되어 신동엽 시인의 생전 활동을 전했는데 시 '껍데기는 가라'와 신동엽 시인이 십대에 그린 그림이 또다시 나를 붙들었다.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팔 잘린 조각물과 그 뒤의 푸른 하늘은 이미 껍데기를 벗길 바라는 우리 산야의 화합을 그리고 있었음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화강암 돌 벽에서 붉은 진달래 영상과 함께 물 흐르듯 지나는 진달래 산천의 시는 화합의 장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가슴이 뭉클하였다.

껍데기를 벗고 쇠붙이를 뿌리치고 말간 하늘을 그리는 시인의 꿈이 담긴 사진
▲ 문학관 입구 벽에 걸린 사진 껍데기를 벗고 쇠붙이를 뿌리치고 말간 하늘을 그리는 시인의 꿈이 담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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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전시장식장에 진열된 껍데기는 가라의 초고와 18세에 그린 신동엽 시인의 그림에서 미래 시인에게 보내는  흙 가슴으로 시를 써야 하는 시인의 정서인 메세지가 느껴졌다.
▲ 껍데기는 가라의 초고와 18세에 그린 신동엽 시인의 그림 유리 전시장식장에 진열된 껍데기는 가라의 초고와 18세에 그린 신동엽 시인의 그림에서 미래 시인에게 보내는 흙 가슴으로 시를 써야 하는 시인의 정서인 메세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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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조명이 이끄는 문학관 미로를 지나니 전시실로 이어져 있었다. 벽면에 전시된 그림을 관람한 후 전시실 계단을 지나 옥상으로 오르니 신동엽 시인이 그리도 갈구하던 말간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탁 트인 옥상 정원이 온 몸으로 끌어안듯 반기며 시인이 꿈꾸던 말간 하늘 아래 중립의 초례청 같은 환한 세상을 일깨운다.

 부여시는  생활고로 매각했던 생가를 재 매입해 오늘날 신동엽 생가로 되살려 놓았다고 한다.
▲ 신동엽 시인의 생가 부여시는 생활고로 매각했던 생가를 재 매입해 오늘날 신동엽 생가로 되살려 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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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을 빠져 나와 옆 진입으로 들어서니 생전에 살았던 신동엽 시인의 생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은 시인 부부와 부모님들이 살던 방 두 개짜리 집과 자그마한 마당이 전부인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가옥으로 소박한 시인의 삶이 전해졌다. 방문 옆에는 <껍데기는 가라>의 육필원고를 진흙으로 떠서 만든 부조가 놓여 있고 방문 위에는 부인 인병선 시인이 쓴 <신동엽 생가>라는 감동적인 시가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목판 되어 걸려 있었다.

신동엽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 시인의 '생가' 시로 시인을 향한 애잔함을 엿 볼 수 있다.
▲ 신동엽 생가의 목판 시 '생가' 신동엽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 시인의 '생가' 시로 시인을 향한 애잔함을 엿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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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시인 신동엽은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화합할 수 있는 말간 하늘인 미래를 낙관하였다. 그래서 그의 좋은 언어, 즉 그의 시는 지금까지 우리를 위로하며 아직도 벗지 못한 현실의 껍데기 밀착이 안타까워 껍데기를 벗을 한반도의 미래를 향해 시의 깃발을 펄럭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여정을 위해 12시 무렵 문학관을 나섰다. 그런데 부여 출신 임옥상 화백의 설치미술 '시의 깃발'은 옥상정원에 오래 머문 관계로 보지 못하고 차에 올라서야 함께 간 회원의 사진을 통해 그 의미를 볼 수 있었다. 신동엽의 시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 주고 있었는데 시인이 꿈꾸는 말간 하늘 아래서 바람을 타고 펄럭이는 형상이었다.

문학관 정원에 있는 조형물인 시의 깃발로 임옥상 작가의 작품이다.
▲ 조형물 시의 깃발 문학관 정원에 있는 조형물인 시의 깃발로 임옥상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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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10분, 미리 예약해 놓은 근처 식당으로 가 중식을 먹은 뒤 평소 백제 황실에 딸린 후원구실을 한 부소산으로 향했다. 가족과 올 때는 황포돛배를 타고 고란사와 낙화암으로 곧장 갔는데 이번엔 도보로 올랐다. 우거진 소나무의 그늘을 따라 부소산을 오르는 동안 의자왕을 치러 가는 나당 연합군의 힘찬 행진과 이를 모르는 채 환락을 즐겼을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모습이 대비가 되어 자꾸만 뇌리를 스쳤다

부소산 입구에 서 있는 표지석 뒤로 고란사와 낙화암을 찾아가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 부소산 입구의 표지석 부소산 입구에 서 있는 표지석 뒤로 고란사와 낙화암을 찾아가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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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에 이르니 꽃처럼 흩날리듯 떨어질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지만 세월 풍파에 깎여 뾰족뾰족 솟은 자잘한 바위 형상에서 정절을 위해 강으로 투신해야 하는 급박한 삼천궁녀의 마음이 읽혀졌다. 그리고 고란사에 들려 젊어지는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아 세계문화 유산지로 지정된 정림사지로 향했다. 3시 20분에 도착한 정림사지는 오층 석탑과 사찰의 흔적만 남아 휑하였지만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이 짐작되었다. 오층 석탑 역시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고 육중하면서도 단아한 세련미를 갖춘 백제 석탑의 완성미가 엿보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박물관에 들러 기와를 만드는 과정과 사찰지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두루 구경하고 5시 30분에 이르러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흔적만 남은 정림사지 가운데  오층석탑이 뎅그러니 서 있다.
▲ 유네스코에 등재된 정림사지 흔적만 남은 정림사지 가운데 오층석탑이 뎅그러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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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계의 석탑을 잘 보여 주는 석탑으로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세련미와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 정림사지 5층 석탑 백제계의 석탑을 잘 보여 주는 석탑으로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세련미와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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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으로 스치는 한 생을 마감하는 눈물 빛 이파리와 서산에서 머뭇거리는 오렌지 빛 석양에서 새삼 지는 것과 기우는 것은 사멸이 아닌 다시금 솟구치기 위함으로 연이어져 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에서 투영되는 과거의 시인 신동엽이 현재, 미래의 시인들에게 던지는 화두를 되새김질하였다. 껍데기의 밀착을 벗고 쇠붙이를 밀친 향그러운 흙 가슴을 지녀야 할 시인의 자세를....

덧붙이는 글 | 순천투데이 신문에도 게재



태그:#2015 순천시인학교 가을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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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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