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황석산성(사적 제322호 ).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산성으로 정유재란 때 왜군과 큰 전투를 치렀던 곳이다.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황석산성(사적 제322호 ).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산성으로 정유재란 때 왜군과 큰 전투를 치렀던 곳이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산은 내게 늘 감동의 느낌표와 같은 것. 더구나 단풍으로 화려한 색을 입은 가을 산행길에서는 감동이 배가된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가을을 예쁘게 색칠하는 산으로 떠나고 싶다.

지난 11일 경남산사랑회 회원들과 함께 경남 함양군 안의면과 서하면에 걸쳐 있는 황석산(1192m) 산행을 나섰다. 오전 7시 40분에 창원 마산역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유동마을과 연촌마을(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어귀에 도착한 시간은 9시 40분께. 산행 기념으로 단체 사진 한 장 찍고서 황금빛 들녘에 이어 빨간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린 마을 길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20분 남짓 걸어가자 드디어 산길에 접어들었다.

삶이 쓸쓸해지면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산길로

   멋진 구름과 울긋불긋한 가을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계절이다.
 멋진 구름과 울긋불긋한 가을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계절이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단풍이 있어 가을은 색깔 있는 계절이 되었다.
 단풍이 있어 가을은 색깔 있는 계절이 되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발소리도 둔탁해져 갔다. 일행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는 작아지고 가쁘게 내쉬는 내 숨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그래도 힘든 것을 참아 내는 극복의 기쁨 같은 게 있다. 갑자기 멀지 않은 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설레는 마음에 서둘러 올라갔더니 산행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 주는 듯한 빨간 단풍이었다.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길을 걸으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단풍이 있어 가을은 색깔 있는 계절이 되고, 우리들 마음도 가을의 아름다운 색깔을 닮아 간다. 노랑, 초록, 연두, 빨강이 한데 어우러진 가을산 풍경은 분명 신이 우리에게 내려 주는 축복이다. 어느 날 문득 삶이 쓸쓸하고 우울해지면 울긋불긋 단풍 진 가을 산을 찾기를 권하고 싶다. 

   산행길에서 만나는 빨간 단풍은 산행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산행길에서 만나는 빨간 단풍은 산행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 버린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나무 옆에다 느낌표 하나 심어놓고
꽃 옆에다 느낌표 하나 피워놓고
새소리 갈피에 느낌표 구르게 하고
여자 옆에 느낌표 하나 벗겨놓고

슬픔 옆에는 느낌표 하나 울려놓고
기쁨 옆에는 느낌표 하나 웃겨놓고
나는 거꾸로 된 느낌표 꼴로
휘적휘적 또 걸어가야지

― 정현종의 '느낌표'

그런데 오르막을 올라 한숨 돌리고서 이제 좀 수월한 길인가 싶으면 또 오르막이다. 전날 비가 내렸는지 산길에 깔린 낙엽이 축축하고 미끄럽다. 사진을 찍다 보면 일행에게서 떨어지는 경우가 잦아 어쨌든 후미로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힘이 더 든다.

낮 12시 10분께 황석산 정상에서 뻗은 산마루 따라 육십령 고개로 통하는 요새지에 축조된 황석산성(사적 제322호)에 이르렀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산성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군과 큰 전투를 치렀던 곳으로 전해진다.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새였던 이 성을 지키기 위해 당시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음현감 곽준이 끝까지 싸웠으나 장렬히 전사했으며, 성이 함락되자 부녀자들은 절벽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

   함양 황석산 정상.
 함양 황석산 정상.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산객들.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산객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라다본 풍경이 아름답다.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라다본 풍경이 아름답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황석산 정상은 여기서 100미터 거리에 있는데 거대한 바윗덩어리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부에 오르면 황석산이 바위산임을 온전히 실감할 수가 있다. 이날 코끝이 시릴 정도로 칼바람이 얼마나 불어 대는지 겨울 추위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나부끼고 드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황석산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왜군과 격전을 벌였을 당시 온통 피바다였을 황석산성을 내려다보니 마음이 몹시 착잡해졌다. 세월이 흘러 쓸쓸한 역사의 흔적이 되어 버린 이곳이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거북바위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산객들의 모습.
 거북바위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산객들의 모습.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로프를 이용하여 바위를 타고 내려가기도 했다.
 로프를 이용하여 바위를 타고 내려가기도 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정상에서 내려와 거북바위 쪽으로 걸어가는데 마침 도시락을 먹고 있는 일행을 만나 나도 그들 틈에 끼였다. 점심을 끝내고 황석산과 이웃한 거망산 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길이 너무 미끄러워 조심조심해야 했다. 바로 눈앞에서 일행 중 한 분이 바위를 딛다 미끄러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뻔한 광경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장자벌 갈림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50분께. 여기서 거망산(1184m) 정상까지 거리가 1.8km라 갈까 말까 하고 망설여졌다. 올 3월에 황석산과 마주 보는 기백산(1331m), 그리고 기백산과 이웃한 금원산(1353m) 산행을 한날에 한 적이 있어 거망산까지 산행을 시도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산 시간도 있고 날씨마저 잔뜩 흐려 이내 빗방울이 떨어질 듯해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용추폭포에서.
 용추폭포에서.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불당골로 해서 장자벌 입구까지 가는데 3.14km 거리라 하산길이 길었다. 축축한 길이 무지 미끄러운 데다 일행을 놓쳐 혼자서 걸어 내려가다 보니 겁도 났다. 숲길이 저녁처럼 어둑해지면서 빗방울이 몇 차례 뚝뚝 떨어졌다.

장자벌로 내려와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정해진 하산 시간을 넘어 아직 오지 않은 일행이 몇몇 있어 용추폭포를 보러 갔다. 하얗게 부서지며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용추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산행의 피로가 가셨다.


태그:#황석산성, #가을단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