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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들의 원조교제 등 성매매 문제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
 10대 소녀들의 원조교제 등 성매매 문제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
ⓒ 김기덕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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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성이 10대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었고, 가출한 여중생은 남성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남성의 아이까지 낳았다. 여중생과 부모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남성은 "사랑이었다"고 맞섰다. 법원의 결론은 "범죄로 볼 수 없다"였다. 

3년간 유죄와 무죄를 오갔던 40대 남성과 10대 여중생의 동거사건은 법적으로는 무죄로 결론이 났다. 서울고법(제8형사부 재판장 이광만)은 16일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기소된 조아무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할 길은 남아있지만, 이미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단을 내린 바 있어 결론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10대 여학생과 성관계한 40대 남성, 성폭행 혐의로 기소

2011년 8월 조 아무개(당시 42세)씨는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우연히 보게 된 A(당시 15세)양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조씨는 A양을 전화로 불러내 자신의 차 안에서 키스하고 성관계를 가졌다.

그 뒤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고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몇 달 뒤 임신을 하게 된 A양은 가출하여 조씨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얼마 뒤 조씨가 다른 형사사건 때문에 구속되었는데 A양은 수시로 조씨를 면회했고 '사랑한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 A양은 출산 때까지 그 집에 머물렀다.

A양이 출산한 뒤 부모는 조씨를 고소했다. 조씨는 2013년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강간), 미성년자 유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조씨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가출도 A양이 스스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에서 A양은 "조씨와의 만남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무려 27년이고, A양이 조씨 아들보다 겨우 두 살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높았다.

하급심 "성폭행 인정"... 1심 징역 12년, 2심 징역 9년

하급심은 모두 성폭행을 인정, 중형을 선고했다. 2014년 1심 법원(서울남부지법)은 조씨의 주장을 전부 배척했다. 15세 소녀가 불과 며칠 만에 중년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법원은 "조씨의 갑작스런 강간시도에 제대로 저항을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A양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가출하도록 조씨가 종용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순수한 사랑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구속된 조씨를 위해 박양이 면회를 가고,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서는 공포심리 때문이라고 보았다. "A양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고, 편지를 쓰지 않으면 박씨가 화를 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A양의 말을 유력한 증거로 삼아 조씨에게 징역 12년과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내렸다.    

2014년 항소심(서울고법 제12형사부)도 결론은 같았다. 미성년자 강간과 미성년자 유인죄를 적용, 징역 9년을 선고했다. 다만 조씨에게 성범죄 전과가 없는 점을 감안하여 1심보다 3년이 줄어들었다.

1심과 2심을 종합하면 조씨는 승용차 등에서 여러 차례 A양을 성폭행했고, A양의 가출을 유도해서 자신의 집에서 계속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대법원, 2014년 11월 "A양 진술 믿기 어렵다" 파기 환송

하지만 대법원(주심 김신 대법관)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대법원은 유력한 증거인 A양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보았다.

A양은 "편지를 안 쓰거나 사랑한다는 내용을 적지 않으면 조씨가 화를 낼 것으로 짐작하고 거짓 감정을 편지에 적었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면회나 편지의 횟수나 내용, 형식에 비춰보면 허위의 감정표현보다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A양이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면 조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나 강요로 보낸 문자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 첫 만남부터 조씨가 구속될 때까지 하루에 수백 건씩 문자를 주고받았고 ▲ A양은 조씨를 '오빠' '자기' '남편'으로 불렀고 '사랑한다' '보고 싶다' '절대 헤어지지 말자'는 내용이 문자에 자주 등장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조씨와 첫 만남 때 옷차림까지 상세하고 기억하고, 두근거리는 감정까지 표현한 A양이 당시 성폭력을 당했다는 진술은 믿기 어렵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동거 중 조씨가 구속된 뒤 경찰의 권유에도 A양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씨의 아들을 돌보았던 사실을 지적하며 "이런 사정을 보면 조씨가 A양을 기망 또는 유혹하여 자신의 지배관계에 두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4년 11월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검찰 상고 가능하지만, 결론 뒤바뀔 가능성 '희박'

대법원이 파기환송했을 때 무죄 결론은 예견됐다. 법원조직법(8조)에 따르면 "상급법원의 재판에 있어서의 판단은 당해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고 되어 있다. 대법원 판례도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대하여 환송 후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이에 기속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약 1년간의 심리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A양을 다시 증인으로 신문하고, 검찰의 추가증거를 검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 증거로는 사실상 A양의 진술이 유일한데 A양의 진술은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판결 1주일 내 검찰이 상고장을 내면 다시 대법원 판결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단을 내린 사안이어서 결론이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40대 남성과 10대 여중생의 동거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파기환송, #여중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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