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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시가지에 싸인 아침 안개, 멀리 보이는 산이 남산이다.
 경주 시가지에 싸인 아침 안개, 멀리 보이는 산이 남산이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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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싸인 경주

이튿날, 경주의 가을 아침도 매우 쾌적했다. 일어나자마자 숙소에서 나눠준 온천탕 입장권을 들고 아랫층 욕실로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여독이 금세 풀어졌다. 아침 안개에 싸인 경주 시가지와 남산 일대를 벌거벗고 온천탕 안에서 봤다. 풍광이 일품이었다.

매번 우리 국토 기행 때마다 느낀 바지만 우리나라의 산수는 세계 어디에도 내놔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웃 일본과 견주면 쌀밥과 보리밥 차이다. 일본의 산하는 어딘가 거무티티한데, 우리나라 산하는 아주 밝고 뚜렷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아마 앞으로도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는 '정한론'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한 세기 전에 삼킨 한반도를 원자탄 두 방으로 어쩔 수 없이 토해냈으니 꿈엔들 그 아쉬움이 지워지겠는가. 그들의 호시탐탐 한반도를 다시 삼키고 싶은 야욕은 고양이 발톱처럼 숨기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항상 경계하면서 살아야할 것이다.

아침을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먹은 뒤 우리 두 사람은 옛 추억을 반추하며 불국사로 갔다. 숙소에서 불국사는 엎어지면 무릎이 닿을 곳에 있었다. 경주행은 이번이 네 번째인데, 그래도 1960년 가을, 중3 수학여행 때의 답사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아마도 첫 답사라 그런 모양이다.

불국사

'토함산불국사' 일주문을 들어서자 곧 눈에 익은 자하문이 나왔다. 이는 국보 제 23호로 청운교와 백운교를 통해 불국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지만 문화 유적을 보호하려는 차원인 듯 오래 전부터 오르내릴 수 없다. 눈으로 볼 수만 있는 문화재다.

자하문에 이르는 계단은 위쪽이 청운교(靑雲橋)요, 아래쪽은 백운교(白雲橋)라고 하는데 이 계단에 '다리' 교(橋) 자를 쓴 것은 속세로부터 부처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한다고 안내판에 새겨져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50여 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그 앞에서 촌스럽게 증명사진을 한 컷 남겼다. 하긴 우리는 원래 촌놈이 아닌가.

곧이어 불국사 뜰에 이르자 첫 눈에 들어오는 다보탑은 옛 모습으로 그대로 우리를 반겨 맞았다. 하지만 석가탑은 베일에 가린 채 한창 중수 중이었다. 다보탑에 대한 나의 기행문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진건 선생의 <불국사 기행>을 도저히 따를 수 없기에 그 글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불국사 자하문 앞에서(오른쪽 김병하 친구, 왼쪽 기자)
 불국사 자하문 앞에서(오른쪽 김병하 친구, 왼쪽 기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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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 층층대(청운교, 백운교)를 거치어 문루를 지나서니,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 두 탑은 물론 돌로 된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만져 보아도 돌이요, 두들겨 보아도 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석가탑은 오히려 그만둘지라도 다보탑이 돌로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하여도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연한 나무가 아니요, 물씬물씬한 밀가루 반죽이 아니고, 육중하고 단단한 돌을 가지고 저다지도 곱고 어여쁘고 의젓하고 아름답고 빼어나고 공교롭게 잔손질을 할 수 있으랴. 만일, 그 탑을 만든 원료가 정말 돌이라면, 신라 사람은 돌을 돌같이 쓰지 않고 마치 콩고물이나 팥고물처럼 마음대로 뜻대로 손가락 끝에 휘젓고 주무르고 하는 신통력을 가졌던 것이다. 귀신조차 놀래고 울리는 재주란 것은 이런 솜씨를 두고 이름이리라...

석가탑은 다보탑 서쪽에 있는데, 다보탑의 혼란한 잔손질과는 딴판으로, 수법이 매우 간결하나마 또한 정중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다보탑을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 대로 꾸민 성장 미인(盛裝美人, 화려하게 치장한 미인)에 견준다면, 석가탑은 수수하게 차린 담장 미인(淡粧美人, 엷게 단장한 미인)이라 할까? 높이 27척, 층은 역시 3층으로 한 층마다 수려한 돌병풍을 두르고, 병풍 네 귀에 병풍과 한데 어울러 놓은 기둥이 있는데, 설명자의 말을 들으면 이 탑은 한 층마다 돌 하나로 되었다 하니, 그 웅장하고 거창한 규모에 놀랄 만하다.'- 현진건 <불국사기행>에서

백제의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애달픈 전설이 담긴 석가탑은 중수하느라 베일에 가려 끝내 볼 수가 없었다.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올까 하는 마음에 다보탑 옆에서 증명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려고 했지만 수학여행 학생들과 단체 관광객들이 그 탑을 에워싸고 있어 친구만 한 컷 잽싸게 찍고 나는 마음에만 담았다. 추색이 짙어가는 불국사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곧장 토함산 석굴암에 가고자 승용차에 탔다.

다보탑 앞의 친구
 다보탑 앞의 친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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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오르는 길

승용차로 석굴암 들머리까지는 불과 5분여 거리였다. 중3 수학여행 때 일출 광경과 석굴암을 본다고 새벽 4시에 여관에서 일어나 컴컴한 토함산을 올랐다.

전날 밤에 수학여행이라는 설레임으로 늦게 잔 데다가 여관에서 먹은 밥이 식중독을 일으킨 듯 배가 몹시 아파 하는 수없이 산 속으로 뛰어갔던 불쾌한 기억들이 가물거렸다. 솔직히 나에게 경주 수학여행은, 고적과 경치는 좋았지만 숙박과 식사는 대단히 불쾌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60년 중3 수학여행도 그랬지만, 1981년 여름 이대부고 2학년 학생 240여 명을 인솔하여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도 그곳 숙박업자들의 적폐는 20년 전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제공된 조악한 음식과 잠자리, 그리고 학생과 인솔교사의 음식을 차별하는 나쁜 관행은 조금도 개선이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밤중 학생 숙소에서 일어난 도난사고와 학생 10여 명이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렸다. 그해 이후 나는 교단을 떠날 때까지 경주를 다시 찾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 수학여행의 만성적 적폐이자 고질병은 마침내 세월호 사태로까지 번졌다. 세월호 사태는 결코 하루 아침에 발생한 게 아니었다. 언젠가 터질 게 터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기성세대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대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월호 사태는 앞으로도 거듭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날 관광업자와 교육자 사이에서 벌어진 부조리한 접대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또 교육자는 교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기득권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이러한 적폐를 발본색원해 청산치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 문제에는 여야도 없고, 사회 각 분야 중 어디 한 곳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물론 나도 지난 날을 반성한다. 그런 적폐와 부패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석굴암 가는 오솔길

탁발 순례 중인 도법 스님(강원도 횡성 삼일운동기념비 앞에서, 왼쪽 도법 스님 오른쪽 기자)
 탁발 순례 중인 도법 스님(강원도 횡성 삼일운동기념비 앞에서, 왼쪽 도법 스님 오른쪽 기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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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눈 깜짝할 새 토함산 정상에 올랐다. 50여 년 전 그렇게 힘들게 올랐던 그 토함산 석굴암 가는 길을 이렇게 편안케 오르다니...

언젠가 도법 스님에게 왜 탁발 도보순례를 하시는냐고 물었다.

"현대인은 대부분 정신으로나 육체로나 환자입니다. 이러한 모든 병은 걸으면 저절로 고쳐집니다. 걸으면 자기의 내면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걸어야 합니다. 걸으면 삶이 단순해지고 홀가분해집니다.

현대인은 정작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삽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무지합니다. 걸으면 그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다음의 말씀도 하셨다.

"또 탁발은 사람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걸어서 사람을 찾아가는 게 가장 진정성 있는 태도입니다."

문득 그 말씀이 생각나자 친구의 승용차를 타고 주마간산을 하는 나의 남도 기행이 가벼워 보였다. 토함산 산등성이에는 여전히 석간수가 쏟아졌다. 나는 목이 마르지 않았지만 50여 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석간수 한 쪽자를 마셨다. 물맛은 옛날 그대로일 테지만 지난 날 탈진한 채 걸어올라 마셨던 그 물맛에 견주랴. 거기서 친구랑 오솔길을 잠시 걷자 마침내 석굴암이 나타났다.

석굴암 가는 오솔길
 석굴암 가는 오솔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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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기행은 다음 회로 끝납니다.]


태그:#경주,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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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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