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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늘 무엇이든 모읍니다. 어릴 적에 놀면서 돌을 모은다든지 모래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을 모래를 모은다든지, 바닷가 모래를 모은다든지, 새로운 시골에서 본 모래를 모으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태우고 버린 담배꽁초에 남은 무늬를 모으기도 하고, 병뚜껑을 모으기도 합니다. 껌 종이를 모은다거나 과자봉지를 모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모으는 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으레 "그거 쓰레기잖아!" 하고 한마디를 하지요. 그래요. 어른들 말마따나 아이들이 모으는 것은 쓰레기라고 할 만합니다. 어른들로서는 왜 저런 쓰레기를 아이들이 저토록 좋아해서 달라붙는가 하고 궁금해할 만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아야지요. 어른 눈길이 아닌 아이 눈길로 생각해 보아야지요. 어른 눈높이로 바라보지 말고, 아이 눈높이로 바라보아야지요.

"아빠는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어요. '그래, 병뚜껑이나 열심히 모으렴. 아무래도 넌 우표 수집을 하기엔 너무 어린 것 같구나.' 나는 기분이 나빴어요. 아빠가 나를 우습게 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대꾸해 드렸죠. '아세요? 아빠는 병뚜껑 수집하기엔 너무 늙었다는 거?'" - <나는 사랑 수집가> 본문 11쪽 중에서

마리 데플레솅님이 글을 쓰고, 카타리나 발크스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 책 <나는 사랑 수집가>를 가만히 읽습니다. 프랑스에서 날아온 이 작은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모으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무엇이든 모으고자 합니다.

왜 모을까요? 왜 자꾸 이것저것 모으려고 할까요?

(마리 데플레솅 씀 / 카타리나 발크스 그림 / 김민정 옮김 / 비룡소 펴냄 / 1997.07. / 6500원)
▲ <나는 사랑 수집가> (마리 데플레솅 씀 / 카타리나 발크스 그림 / 김민정 옮김 / 비룡소 펴냄 / 1997.07. / 6500원)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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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로서는 이것도 저것도 새롭습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새롭습니다. 새로워서 주머니에 넣고, 새로워서 알뜰히 건사하며, 새로워서 흐뭇하게 웃으면서 바라봅니다. 모으고 또 모으며 다시 모으려는 마음에는 '새로운 즐거움을 북돋우는 기운'이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나는 빅투아르랑 셀레스트랑 같이 놀았어요. 둘 다 내 애인이에요. 처음엔 셀레스트랑 사랑에 빠졌는데, 나중에 빅투아르하고도 사랑하는 사이가 됐지요. 그래서 둘 다 안아 줘야 해요. 물론 빅투아르랑 셀레스트도 나를 안아 주지요. 그리고 그 둘도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끌어안아요. 그래서 우린 셋이서 안고 논답니다." - <나는 사랑 수집가> 본문 20쪽 중에서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가 모으려는 것을 바라보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늘 못마땅합니다. 아이가 '쓰레기'만 모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참말 아이는 '쓰레기'만 모은다고 할 만해요. 그러나 아이가 모으는 것을 찬찬히 건사하고 곱게 보듬으면 '쓰레기' 아닌 '살림살이'로 바뀝니다. 병뚜껑이든 종잇조각이든 차근차근 건사하면서 곱게 갈무리하면 아주 멋진 '이야기 밭'이 되어요.

왜 그러할까요? 왜 '쓰레기를 모아'도 이야기 밭이 될까요? 어느 한쪽 눈길로는 쓰레기일 테지만, 다른 한쪽 눈길로는 '이것을 만나면서 누린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자를 먹으면서 나눈 하루가 즐거웠기에 과자봉지를 남겨서 어느 하루 즐거운 이야기를 되돌아봅니다. 저 과자를 먹으면서 함께 있던 동무가 반가웠으니 과자봉지를 건사해서 그날 함께 있던 동무를 떠올립니다.

나무젓가락 하나에도 이야기가 깃들어요. 머리핀 하나에도, 조약돌 하나에도, 다 닳은 볼펜 한 자루에도, 몽당연필에도, 토막 난 지우개에도 모두 다 다른 이야기가 깃듭니다.

"내 말에 엄마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어요. '뭐? 사랑을 수집하겠다고?' 엄마는 썩 예쁘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지요.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엄마가 내 말을 귀담아들어 주었으니까요." - <나는 사랑 수집가> 본문 31쪽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모으고 꿈을 갈무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모으면서 삶을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언제나 꿈을 갈무리하면서 새 하루를 맞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 함께 자라는 아이들

우리는 무엇을 즐겁게 모을 만할까요? 나는 우리 집 그림순이가 빚는 사랑스러운 그림을 즐겁게 '모읍'니다.
 우리는 무엇을 즐겁게 모을 만할까요? 나는 우리 집 그림순이가 빚는 사랑스러운 그림을 즐겁게 '모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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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몸하고 마음이 함께 자라요. 그래서 옷이 이내 안 맞습니다. 작아서 못 입는 옷은 '쓰레기'로 여겨 그냥 버릴 수 있습니다. 작아서 못 입는 옷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주어 '물려 입기'를 할 수 있습니다. 작아서 못 입는 옷을 알뜰히 건사해서 두고두고 모시면 '이 작은 옷을 입고 뛰놀던 나날을 그리는 이야기 밭'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니?' 엄마는 한참 만에 말을 꺼냈어요. 그러자 형이 말을 받았지요. '아니에요. 말짱해요. 얼마나 똑똑한 녀석인데요. 그저 자기가 이 세상 모든 여자들과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걸 막 깨달았을 뿐이에요. 그걸 가지고 웃기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 <나는 사랑 수집가> 본문 48쪽 중에서

이야기책 <나는 사랑 수집가>에 나오는 아이는 마지막으로 '사랑 모으기'를 생각합니다. 사랑을 모으기로 하면 어머니나 아버지는 걱정을 안 할 테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내가 모은 것'을 버릴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아직 잘 모릅니다. 아직 열 살이 채 안 된 아이로서는 아직 잘 모를 만합니다. '사랑 모으기'는 모든 사람을 내 옆에 두면서 언제라도 '내가 쳐다보고 싶을 때 쳐다보는 인형'이 아닌 줄 아직 잘 모를 만하지요.

'사랑 모으기'는 '사람을 수집품처럼 창고에 차곡차곡 쟁이는 몸짓'이 아닙니다. '사랑 모으기'는 오직 마음으로 깊이 아끼고 돌보는 숨결이 되어 너그럽고 따사로운 손길로 어깨동무하는 몸짓입니다.

가시내가 머스마를 사랑할 수 있고, 머스마가 머스마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저보다 더 어린아이를 사랑할 수 있고, 어른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나무를 사랑할 수 있고, 나무가 숲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바람을 사랑할 수 있고, 바람은 자전거를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은 바로 사랑 그대로 흐르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언제나 그대로 지켜보면서 흐뭇하게 웃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일구는 삶을 누리기에 아름답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 함께 어깨동무하고서 '사랑 모으기'를 신나게 해 볼까요.

덧붙이는 글 | <나는 사랑 수집가>(마리 데플레솅 씀 / 카타리나 발크스 그림 / 김민정 옮김 / 비룡소 펴냄 / 1997.07. / 6500원)

이 글은 최종규 시민기자의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랑 수집가

마리 데플레솅 지음, 김민정 옮김, 카타리나 발크스 그림, 비룡소(2007)


태그:#나는 사랑 수집가, #마리 데플레솅, #어린이문학, #어린이책,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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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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