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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중순, 삼 주쯤 전 일이다. 일요일 아침 반려견 '밴조'와 한강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시는 일을 겪느라, 밴조를 거의 보름 동안 친구에게 맡겼다. 그랬다가 다시 찾아온 후 처음 나가는 산책길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공원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종종 아버지와 함께 조깅을 하던 길이다. 사는 게 뭐가 그리 바쁘다고 언제 마지막으로 함께 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밴조는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의 나들이냐'는 듯, 입은 귀까지 올라가고 하늘 높이 꼬리를 흔들면서 신나게 걸어갔다.

그런데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일이 일어났다. 길 반대편에서 검은색 차우차우가 주인과 함께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목줄도 하고 있길래, 굳이 피해서 돌아갈 이유도 없어 옆으로 지나쳐 걸어갔다. 지나가면서 개 두 마리가 서로 냄새를 맡는가 싶었다.

차우차우의 주인인 남자가 "천천히, 천천히"라고 개에게 속삭이는 것을 보니 다른 개를 보면 흥분하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얼른 지나가려고 줄을 다잡는 순간 1초 만에 차우차우는 '으르렁' 소리를 냈고, 주인은 즉각 줄을 당겨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발밑을 내려다보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밴조. 귀는 반 이상이 사라져 버렸고, 귀가 있던 자리에서는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미 저만치 간 차우차우 주인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산책길에 당한 봉변, 개 주인은 "원래는 착한 아인데..."

"이봐요! 당신 개가 물어서 지금 얘 귀가 없어졌잖아요!"
"뭐라고요?"

휴대전화도, 지갑도 안 가지고 나온 나는 그야말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머리가 하얘지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땅바닥을 살펴보아도 잘린 귀는 찾을 수 없었다. 차우차우 주인은 자기 차로 밴조를 동물병원으로 옮기자며 주차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14kg이 넘는 몸무게의 밴조를 안고 꽤 먼 거리를 뛰는 동안 팔이 아픈 줄도, 온몸이 피로 흠뻑 젖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이동한 동물병원에서 밴조는 이빨 모양으로 잘린 귀를 일자로 다듬고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졸지에 반쪽도 안 남은 귀를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수술을 집도한 수의사는 "차우차우는 무는 힘이 강한 종이다. 이 정도로 공격성을 보이는 개들은 야생성이 살아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목덜미 같은 급소를 공격하는데, 다행히 피해서 귀를 물린 것"이라며 "자칫 목이나 가슴을 물렸으면 즉사할 뻔했는데 그래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위로했다.

"개가 평소에 다른 개를 물지 않았느냐, 왜 입마개를 하거나 다른 개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지 않았느냐"는 나의 질책에, 개 주인은 "큰 개들과는 싸우지만 작은 개들과는 잘 놀았다"는 터무니없는 답변을 할 뿐이었다. 미안하다며 수술비를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밴조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단발머리 귀'를 다시 돌려줄 수는 없었다. 밴조를 물어뜯은 개는 중성화되지 않은 수컷이었다.

물어 뜯긴 밴조의 귀와 봉합 수술 후 모습
 물어 뜯긴 밴조의 귀와 봉합 수술 후 모습
ⓒ 치료멍멍동물병원 신사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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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개를 물어 죽였을 때, '개 값'만 물어주면 된다?

개가 사람을 공격하거나 다른 개를 공격하는 사고는 자주 발생한다. 동물보호단체에도 '내 개가 다른 개에게 물려 죽었는데 억울하다. 보상 받을 방법이 없느냐'는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온다. 개 주인의 잘못으로 사람이 물린 것이 명백할 경우, 민법상 개 주인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실치상으로 형법에 관련된 처벌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물려 죽은 것이 사람이 아닌 동물일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동물도 사람의 '소유물', 즉 물건으로 보기 때문에 '개 값', 다시 말해 동물의 목숨값으로 몇만 원 안 되는 돈만 배상하는 것 외에 아무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개에게 물려 다른 개가 다쳤는데도 '뭐 개들끼리 놀다 그런 걸 갖고 그러냐'며 병원비를 못 내겠다고 되레 큰소리치는 사람도 여럿 봤다.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의 소유자는 외출 시 목줄 등 안전조치를 하게 되어 있고, 도사견·아메리칸 핏불테리어·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스태퍼드셔 불테리어·로트와일러 등 다섯 종과 그 외 잡종의 개, 그리고 '그 밖에 사람을 공격하여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큰 개'는 목줄과 함께 입마개를 착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밴조가 당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충분한 방법일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핏불, 로트와일러 등 일부 견종의 사육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특정 견종에 대한 법률(Breed-specific Legislation, 이하 BSL)'이 지난 십수 년째 논란이 되고 있다. 개가 사람을 공격하거나 투견 등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정 종 개의 소유를 금지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입마개 씌우기, 중성화 수술, 책임보험 가입, 정해진 길이의 목줄 착용, 사유지 앞에 '개조심'이라는 문구를 부착하거나 개에게 표식을 다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의 규제 법안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법이 시행되는 지역에서 사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금지된 종을 숨겨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거나 책임감 있게 개를 기르는 견주와 동물들이 피해를 보는 등의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혼혈견의 경우 종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of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도 BSL에 대해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다. CDC는 개의 공격성은 종 외에 성별·유전적 성향·어렸을 때의 경험·사회화 훈련 정도 등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CDC의 조사에 따르면, 개에게 물리는 사고의 70% 이상이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수컷 개에게서 발생하며, 중성화되지 않은 수컷 개는 중성화된 개보다 공격성을 보일 확률이 2.6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묶어서 기르는 개는 그렇지 않은 개보다 무는 사고를 낼 확률이 2.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통계를 보면 개가 사람을 심각하게 공격한 사고의 97%가 중성화되지 않은 개에게서 발생했고, 84%의 동물은 학대받거나 방치되는 등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동물들이었다.

CDC는 특정 종에 국한해서 사육을 금지하는 것보다, 종과 상관없이 책임감 있는 사람들만 동물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면허제를 권장하고 있다. 또 중성화 의무화법이나 투견 금지법, 개를 묶어서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anti-tethering law) 등을 강화하는 등 종과 상관없이 모든 동물 소유자가 책임의식을 갖고 자신의 동물을 통제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는 방향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로망'만으로 기르는 대형견, 비극적 사고의 지름길

'단발머리 귀'를 가졌던 밴조의 모습과 사고 후의 모습
 '단발머리 귀'를 가졌던 밴조의 모습과 사고 후의 모습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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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로트와일러라고 해서 모두 이웃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동물이고, 주먹만한 치와와라고 해서 전혀 위험하지 않은 동물일까? 나는 어린아이들이나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강아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다가가는 핏불을 많이 알고 있다. 우리 동네에는 세상 느긋한 성격 때문에 '순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차우차우도 있다.

반대로 창피한 이야기지만 예전에 부모님이 기르시던 요크셔테리어는 막둥이 대하듯 '오냐오냐'를 남발하는 잘못된 교육방법 때문에 자신이 가족을 지키는 '서열 1순위'라고 인식했다.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달려들어 집에 손님이라고는 얼씬도 못하는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공격적인 로트와일러와 공격적인 치와와의 차이점은 똑같이 공격성을 보였을 때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미치는 상해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운전자가 사고를 낸다고 가정했을 때, 경차를 운전했을 경우와 대형버스를 운전했을 경우 사고의 규모가 크게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개 심리 센터를 운영하며, 티브이 프로그램인 '도그 위스퍼러(Dog Whisperer)'의 진행자이기도 한 시저 밀란은 그의 책에서 개의 공격성은 꼭 '종'만이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핏불, 마스티프처럼 강한 신체적 능력을 갖춘 개를 기를 때는 반드시 그 종의 특성을 파악하고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신체적 능력이) 강한 종의 개와 그 종을 좋아하지만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의 조합은 비극적 결말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 책임감 실천은 나부터

우리나라도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의 늘어난 숫자만큼 '반려동물 시민의식'은 성장하지 못했다. 매년 8만 마리의 동물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현실이다.

자신의 성향이나 생활 습관·주거환경·동물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지 등 동물과 주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많은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겉모습이나 어떤 종에 대한 '로망'만으로 동물의 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피해는 고스란히 동물에게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사육을 포기하거나 유기하는 원인이 된다. 

반려동물을 기른다면 동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기본이다. 나와 이웃, 그리고 반려동물을 위해서 목줄·이름표 부착·배설물 수거 등의 공중도덕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가령 공공장소에서 목줄을 하지 않는 경우,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개를 잃어버리거나 차에 치이는 사고도 당할 수도 있다.

물론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공원에 나가면 어린아이의 부모 열 중 여덟은 '가서 만져봐, 멍멍 해봐!' 하며 아이들의 등을 떠밀곤 한다. 동물들도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아이에게서 공포심을 느끼고 자극받을 수 있다. 모르는 동물에게 다가갈 때는 반드시 먼저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밴조는 귀 실밥도 풀고, 이제는 살 만한지 본래의 낙천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마 한 쪽 귀가 없어졌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다. 졸지에 '짝귀'가 된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왜 하필 그날 그 시간에 그 개 옆을 지나갔을까'하며 땅을 치던 나도 이제는 밴조의 '언발란스 컷'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친구라면 사족을 못 쓰던 녀석이 간이 콩알만 해져서 이제는 강아지 비슷하게 생긴 것만 봐도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다른 개와도 다시 친해지는 연습을 할 것이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내가 먼저 조심하고 남들을 배려하면서, 밴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살 계획이다. 간혹 산책길에서 '얘 귀가 왜 이렇게 됐어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사연을 설명하면서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 가족'이 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홍보대사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반려동물 , #동물복지 , #동물입양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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