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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토 정원은 카프리 섬에서 가장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 아우구스토 정원에서 보이는 절경 아우구스토 정원은 카프리 섬에서 가장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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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 섬에서 가장 높은 몬테솔라로에서는 소렌토가 보인다.
▲ 몬테 솔라로에서 바라 본 소렌토 카프리 섬에서 가장 높은 몬테솔라로에서는 소렌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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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의 낙원, 카프리

소렌토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카프리로 떠난다. 지중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카프리. 카프리는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프리 섬의 빼어난 경치에 반해 몇 배나 더 큰 이스키아 섬을 내놓고 카프리 섬을 사들여 자신만의 낙원으로 만들었다. 이후 티베리우스 황제도 이 섬에 12개의 별장을 세워 여생을 보냈다.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부호들의 별장이 세워지고, 많은 영화의 촬영지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카프리 섬은 아름다운 바다와 동화 같은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특히 섬 해안에 있는 푸른 동굴로 유명하다. 푸른 동굴은 햇빛이 좁은 동굴 안으로 들어와 바닷물에 반사되어 동굴 내부를 신비로운 푸른색으로 비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동굴 입구가 좁기에 날씨가 좋고 파도가 잔잔해야만 들어갈 수 있어 푸른 동굴 내부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100일 정도라고 한다.

카프리 타운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 본 풍경. 마리나 그란데 항구가 보인다.
▲ 카프리 타운 카프리 타운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 본 풍경. 마리나 그란데 항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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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솔라로에서는 아기자기한 하얀 집들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 몬테 솔라로 몬테 솔라로에서는 아기자기한 하얀 집들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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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 섬과 푸른 동굴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항구에는 벌써 카프리행 페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왕복 티켓을 사서 페리에 올랐다. 바다는 잔잔하고 배의 일렁임도 크지 않다. 햇빛도 곱고 바닷물도 투명하여 우리는 푸른 동굴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있었다. 페리가 출발한 지 20여 분 후에 카프리 섬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푸른 동굴부터 보기로 하고 마리나 그란데 항구에서 서쪽에 있는 아나카프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아나카프리에서 푸른 동굴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도착한 버스정류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매표소를 기웃거리다 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풍랑이 세서 동굴에 입장할 수 없단다. 페리를 탔을 때는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푸른 동굴은 천장이 워낙 낮아서 작은 풍랑에도 들어가기 힘든 모양이다.

카프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이기에 꼭 가 보고 싶었는데 운이 따라주질 않는다. 여행 내내 날이 화창해서 은근히 기대했건만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푸른 동굴을 못 보게 되어 맥이 빠져서인지 갑자기 찬기가 올라온다. 우선 몸부터 녹여야 할 것 같아서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각각 다른 걸 마셔보자며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관광지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커피는 역시 맛있다. 실내장식도 예쁘고 깔끔한데 바리스타는 좀 도도해 보인다. 이탈리아 남자는 친절하다더니 다 그런 건 아닌가 보다.

하늘로 오르는 그네

카프리 타운으로 가는 길의 가로수. 나무를 뽑아서 거꾸로 세워놓은 듯 가지가 뿌리 모양으로 뻗어있다.
▲ 가로수 길 카프리 타운으로 가는 길의 가로수. 나무를 뽑아서 거꾸로 세워놓은 듯 가지가 뿌리 모양으로 뻗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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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옆에 카프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몬테 솔라로로 올라가는 리프트가 있다. 동굴을 보지 못하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왕복 10유로의 리프트 표를 끊었다.

나무로 된 약간은 허술해 보이는 일인용 체어리프트에 앉으니 바람이 차다. 안전장치가 부실해 보여서 약간 걱정이 됐지만 발아래로 펼쳐지는 경치에 마음을 빼앗겨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열심히 감상했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눈앞의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꼭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다. 날이 추워서인지 시간이 일러서인지 리프트에 오른 사람은 우리 셋뿐이어서 사진 찍기에 좋았다.

손이 어는 줄도 모르고 카프리의 전경을 담고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는 사이에 어느덧 정상에 도착했다. 리프트를 관리하는 직원 한 명 외에는 아무도 없다. 카페테리아로 보이는 건물도 문이 닫혀 있다.

다양한 꽃과 나무로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전망대를 둘러보다 건물 뒤편으로 난 작은 통로를 발견했다. 통로를 따라 나가니 너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아 저 멀리 소렌토 반도도 보인다.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풍경에 넋을 잃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코발트블루 빛 바다와 깎아지른 듯이 서 있는 절벽이 연출하는 절경이 조화롭다. 잉크를 물에 풀면 저런 빛이 나올까? 푸른 바닷물 빛에 눈이 시리다.

바다를 배경으로 셋이 함께 찍은 점프샷
▲ 점프샷 바다를 배경으로 셋이 함께 찍은 점프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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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를 병풍 삼아 다양한 자세를 취하여 사진을 찍었다. 바다와 하늘과 우리 셋만 나올 수 있도록 점프 샷도 여러 장 찍었다. 잘못 뛰면 절벽 아래 바다로 다이빙하게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뛰었더니 어떤 사진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나오고 또 어떤 사진은 발만 나온다. 사진 속의 모습을 보며 우리 셋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셋이 모두 공중에 떠 있는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기까지 백 번도 넘게 뛰었다. 역시 점프 샷은 어렵다. 뛰는 것이 어렵긴 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지치지 않았다. 한참을 시도하다 겨우 한 장을 건지고 나자 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게 눈에 보인다. 한참을 즐기고 나서야 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왔다.

카프리 섬의 곳곳을 표시한 지도가 타일 위에 그려져 있다.
▲ 카프리 섬 지도 카프리 섬의 곳곳을 표시한 지도가 타일 위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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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카프리 섬 동쪽에 있는 카프리 지역으로 향했다. 지도를 보니 걸어갈 만한 거리인 것 같아 해안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해안가에는 나무를 뽑아 거꾸로 세워서 뿌리가 하늘로 향하는 듯한 이국적인 가로수와 멋스러운 집들이 이어져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을 것만 같다.

에덴동산이 있다면 여기일까

몬테 솔라로로 오르는 리프트에서 바라 본 카프리 섬 경치.
▲ 카프리 섬 전경 몬테 솔라로로 오르는 리프트에서 바라 본 카프리 섬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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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딸은 카프리에 전망이 뛰어난 정원이 있다며 가 보잔다.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딴 아우구스토 정원은 다양한 관상용 식물과 꽃, 조각상으로 꾸며져 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카프리 섬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 쪽으로 난 벤치에 앉아 햇빛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나는 지중해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에메랄드색으로 보이는 바다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곱다. 바위틈 사이에 핀 작은 꽃송이조차 예쁘다. 행복이라는 말은 이런 순간에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단어 같다. 태초에 에덴동산이 있었다면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더는 이 정원에 대해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소렌토 절벽위에 있는 호텔로 카루소가 머물렀던 호텔로도 유명하다.
▲ 소렌토 절벽 위의 호텔 소렌토 절벽위에 있는 호텔로 카루소가 머물렀던 호텔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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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들도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었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 딸의 표현에 따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경치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여서 리베라 소년 합창단의 '상투스(Sanctus)'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단다. 자신이 여행한 곳 중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스위스의 알프스였는데 카프리로 바뀌었단다. 아들은 음료수와 맥주의 상표명으로 '카프리'가 사용된 이유를 알겠다며 감탄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해안가를 향해 지그재그로 난 길이 보인다. 크룹 길(Via Krupp)이라 불리는 이 길은 지그재그 모양을 고안해 낸 프리드리히 알프레드 크룹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카프리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치인 마리나 피콜라까지 이어져 있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에메랄드빛 바다와 절벽의 나무들을 보며 느긋하게 걷고 싶었는데, 겨울이라 개방을 하지 않아 아쉽다.

지그재그로 된 크룹 길. 크룹 길 끝에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짝인다.
▲ 크룹 길 지그재그로 된 크룹 길. 크룹 길 끝에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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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의 우체국. 여행지의 낭만을 담아 엽서를 한 장 부쳐보고 싶다.
▲ 우체국 해안가의 우체국. 여행지의 낭만을 담아 엽서를 한 장 부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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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로 돌아오는 페리 안에서 본 석양
▲ 카프리의 석양 소렌토로 돌아오는 페리 안에서 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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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일정이 짜여 있는 여행이니 아름다움을 가슴에 안고 발걸음을 옮긴다. 움베르토 1세 광장으로 걸어갔다. 해안가에 있는 우체국 건물이 눈에 띈다. 저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가 궁금증이 생기며 잠시 부러워졌다. 광장에서 보이는 전망은 아우구스토 정원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파란 지중해와 하얀 집들의 조화가 그림 같다.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는 게 아쉽다. 항구까지 가는 푸니쿨라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로 가니 옆에서 한국어가 들린다. 우리처럼 가족과 온 한국인 여행객이었다. 딸 둘과 함께 온 중년 남성은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말을 붙인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한국인을 별로 보지 못했기에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부녀지간에 여행하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숙소 스태프의 따뜻한 손 편지에 감동하다

숙소 직원이 손글씨로 남긴 편지
▲ 손편지 숙소 직원이 손글씨로 남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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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와 항구로 간다. 소렌토로 돌아가는 페리에서 멀어져 가는 카프리 섬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느덧 넘어가는 석양이 바다에 비쳐 붉은빛을 보인다. 내가 아는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 카프리를 뒤로하고 소렌토에 도착했다.

숙소에 돌아왔더니 테이블 위에 곱게 접은 종이가 한 장 올려져 있다. 숙소 직원이 남긴 손편지였다. 우리가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얼굴도 못 봤다며 여행은 어땠는지를 묻는 편지였다.

내일 아침 떠날 때 열쇠를 밖에 두고 가라고 쓰여 있었다. 사무적인 내용인 듯하지만 손글씨에 담긴 마음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탈리아 여행의 첫 시작이었던 소렌토 투어가 잘 마무리되었다. 아들과 딸이 집에서처럼 다투고 틀어질까 봐 걱정하며 떠난 여행이었다. 막상 도착하니 아들도 그동안 집에서 보아 왔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딸도 큰 불만 없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다.

모두가 말렸던 겨울의 이탈리아 남부 여행. 겨울이라 더 한적하고 운치 있어서 그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태그:#카프리섬, #소렌토, #이탈리아, #지중해,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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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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