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32살 늦깎이 중국 유학생입니다. 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올해 7월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바다와 구름의 조화가 아름다운 윈난성 전경.
 바다와 구름의 조화가 아름다운 윈난성 전경.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중국 본토로 가기 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던 시절, 중국 현지인 선생님과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아무 생각 없이 가방과 짐을 자리에 두고 같이 주문을 하려고 일어나니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주의를 주는 것이 아닌가.

"자리에 가방을 두고 가면 어떻게 해! 누가 훔쳐가잖아!"
"응? 누가 훔쳐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항상 가방을 이용해 자리를 사수해 온 습관이 몸에 배었기에 그런 충고를 들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짐만 덜렁 남겨져 있더라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습관이었다. 하지만 현지인의 주의는 중국에서 당할 곤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날의 충고를 기억했어야 했다.

난생 처음 소매치기를 당하다

아름다웠던 리장고성. 이 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아름다웠던 리장고성. 이 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중국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잃어버렸던 장소는 택시였다. 핸드폰을 두고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전화를 걸어보니 이미 꺼진 상태였다. 삼일 내리 쉬지 않고 해봤지만 결코 다시 켜지는 일은 없었다. 핸드폰은 고가의 물건이라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핸드폰만 남겨둔 채 자리를 벗어났다면,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무심결에 한국에서의 습관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일이었다. 중국인 친구 하나가 소매치기 당하기 딱 좋은 모양새라며 자주 지적하곤 했다. 주머니 말고 가방에 넣고 지퍼를 잘 잠그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인 친구 한 명은 아이폰 두 대를 진저우에서 모두 잃어 버렸다. 처음은 야시장에서 주머니에 넣어 놨다가 소매치기 당했고, 두 번째는 나처럼 택시에 두고 내려 전원이 꺼진 경우다. 할부도 끝나지 않은 기기를 잃어버렸으니, 집에서 잔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친구는 두 번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린 허탈함에 '나도 진저우에서 핸드폰을 닥치는 대로 훔칠 거야!'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홧김에 하는 이야기다. 결국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삼만 원짜리 중국 싸구려 폰을 얻어 연명해야 했다.

고성 내의 길. 리장고성은 관광객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소지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성 내의 길. 리장고성은 관광객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소지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귀국하기 전, 윈난(중국 남서부에 있는 성. 수도는 쿤밍)으로 저렴하게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삼일 째 되던 날, 리장 고성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구경하는 틈에 가방에 들어 있던 핸드폰을 도둑맞았다. 여행지의 웃음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윈난은 최악의 여행지로 남았다. 다른 여러 요인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소매치기를 당한 정신적 타격이 어마 무시했다.

이렇게 도둑질한 핸드폰은 거의 중국의 중고 시장에서 다시 팔린다. 여행을 끝내고 한숨을 쉬며 향한 곳은 바로 이 중고시장이었다. 당장 쓸 값싼 스마트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핸드폰이 누군가가 잃어버린 제품일수도 있지만, 새 것을 살 여력이 없으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뜻하지 않게 장물의 최종 소비자가 된 것 같아 찜찜했다.

뒤를 쫓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소매치기들

우루무치 재래시장. 이 곳에서 만난 도둑은 지갑을 훔치지 못하고 달아났다.
 우루무치 재래시장. 이 곳에서 만난 도둑은 지갑을 훔치지 못하고 달아났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친구와 밥을 먹기 위해 상가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한참 수다를 떨다 곁눈질로 뒤를 보니 어떤 아저씨가 어기적거리며 친구 뒤에 딱 붙어있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니 순식간에 어디론가 도망쳤다.

"웬 아저씨가 네 뒤에서 이상하게 걸으면서 따라왔어."
"어머! 변태인가봐. 조심해야겠어."

당혹감을 느낀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음식을 주문하고 지갑을 꺼낼 때가 되니 친구가 허둥지둥 본인의 온몸을 더듬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 넣어놨는데 돈이 없어졌어!"

가방과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돈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누가 범인이었는지 눈치 챘지만 이미 멀리 달아나 버린 후였다.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짓는 친구에게 밥을 사주며 위로했지만 기분은 둘 다 엉망이었다.

다른 친구도 마트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지갑이 없어져 당황한 친구. 뒤에서 상황을 목격한 한 아줌마가 의심 가는 사람이 있다며 범인의 생김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줬다. 재빨리 마트 안을 뛰어 다니고 주변을 돌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

소매치기 당한 적도 여러 번이지만 직전에 위기를 모면한 적도 많았다. 야시장에서는 두 번이나 훔쳐가려는 도둑과 눈이 마주쳤지만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 지갑을 사수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이다 보니 타국에서 나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기가 커도, 잠겨 있어도 방심은 금물

삼륜오토바이.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다.
 삼륜오토바이.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학교에는 전동차(전기로 충전하는 오토바이나 스쿠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 나도 마트나 학교에서 이동하기 위해 자전거를 구매했었다. 같이 갔던 중국친구가 흥정을 잘해서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캠퍼스를 누빈 시간은 극히 짧았다. 분명 자물쇠까지 채워 놨건만 다음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뿐만이 아니다. 한 친구는 마트주차장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해 CCTV로 범인의 얼굴까지 확인했지만 그뿐이었다. 여자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소중한 자전거였기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동차를 도둑질 당한 친구도 있었다. 장기적으로 택시보다 저렴하고 활동에 제약이 없어 꽤 많은 유학생이 구입한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오십만 원에서 칠십만 원 사이, 비싼 물건이기에 상심도 비례한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없어진 전동차. 공안에 신고해도 찾을 확률은 높지 않다. 한 달여 후, 어느 배달원이 자신의 전동차를 몰고 지나가더란다. 급하게 뒤를 쫓았지만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한참 뒤 어찌어찌해서 다시 발견했지만 부품은 모조리 없어진 채 빈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며 한숨을 쉰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나오는 방어 기제

대련역. 고마운 사람들이 따뜻한 기억을 남겨준 곳이다.
 대련역. 고마운 사람들이 따뜻한 기억을 남겨준 곳이다.
ⓒ 김희선

관련사진보기


"야! 핸드폰이랑 지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냥 가면 어떡해?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그리고 길거리 다닐 때 가방지퍼 좀 열고 다니지 마. 가방도 앞 쪽으로 메고!"
"아우~ 잔소리 좀 그만해. 안 훔쳐가!"

귀국 후 시어머니가 됐다. 친구들은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젓지만 조심성 없는 모습이 불안하기만 하다. 핸드폰이나 가방을 자리에 놓고 일어날 때마다 항상 조마조마하다. 주문을 하기 위해 잠시 일어나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일일이 물건을 챙겨야 안심이 된다. 더 이상 주시하지 않아도 훔쳐가는 이 없건만, 내 품에 없으면 불안하다.

예전 주의를 주던 선생님의 모습에 지금의 내가 겹쳐진다. 나를 보며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삼년의 중국생활을 통해 그녀의 심정에 십분 공감이 간다. 아무래도 이 지나친 조심성은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 듯싶다.

그러고 보면 도둑들은 물품으로 인한 피해는 물론 마음의 상처도 덤으로 주는 듯하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 몇 달 전 어이없게도 다롄 공항에서 트렁크를 놓고 갔을 때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준 것도 착한 중국인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올해의 유학생활은 엉망이 됐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중국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도둑들은 여전하다. 사라지지 않는 일부 택시의 바가지 요금, 물건 값 부풀리기 등은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부디 '도둑들'은 영화에서나 만났으면 한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도둑들> 응모



태그:#중국, #중국유학, #도둑, #소매치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기사공모] 도둑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