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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피어날 무렵이다.
▲ 봉평메밀밭 메밀꽃 피어날 무렵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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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창오일장'을 '봉평오일장'으로 착각했다. 5, 10일 평창오일장을 보자마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겹쳐지면서 생긴 착각인듯하다.

봉평에 도착하자마자 메밀 막국수와 메밀 전병으로 배를 채우고 오일장을 찾았다. 하지만 2, 7일 오일장이라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마침 '이효석 문화제'가 막 끝난 뒤라 아직도 메밀꽃이 한창 피어 있어 메밀꽃밭을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메밀꽃밭을 걷다 해가 아직은 많이 남았다 싶어 평창으로 향했다.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평창 방향으로 가다 한적한 사찰로 가는 길가에서 가을꽃 병아리풀과 솔체, 물매화 등 가을 꽃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들꽃과의 눈맞춤

그곳엔 가을꽃 물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 물매화 그곳엔 가을꽃 물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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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오랜만에 눈맞춤을 했다. 몇몇 희귀종들도 이 근처에 피어나는 까닭에 이젠 야생화 마니아들의 방문이 잦은 지역이 되었다. 그들에게 다행인지 아닌지 감이 오질 않는다. 많은 이가 찾아와서 그들도 좋아하는지, 그만큼 훼손된 자연 환경에 그들이 신음하는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욕심 같아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져 그들이 엄하게 밟히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이거야말로 개인적인 욕심이다. 남들은 오지 말고 나만 보자는 그런 이기적인 욕심인 것이다.

그렇게 쑥부쟁이와 병아리풀, 솔체 등과 눈맞춤을 했어도 해가 많이 남아 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해가 짧아졌다고 푸념을 했는데 그날은 제법 하루 해가 길게 느껴진다.

평창 인근의 농가
▲ 농가 평창 인근의 농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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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으니 천천히 가도 좋을 것 같아서 평창을 들렀다 서울로 가기로 했다. 평창으로 가는 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로 분주하다는 느낌은 도로 확장 공사에서부터 마을마다 정갈하게 바뀐 기와 지붕(플라스틱 기와무늬 지붕)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도 평창은 여전히 활기찬 도시일 수 있을까? 지금이야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저런 장밋빛 전망들을 내놓고,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과연 그러할까?

파괴되는 가리왕산이 평창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은 아닌지, 가을 꽃 피어나는 그곳이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처럼, 그저 야생화 마니아들에게나 좋은 일처럼 그렇게 평창 동계 올림픽은 끝나는 것이 아닐지 걱정된다.

그러나 결국 선택한 이들의 책임이며 몫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가 살고 있는 조국이 선택을 했고, 이에 환호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내가 이 조국에 사는 한 나도 그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할 것이다.

평창 인근의 밭에서는 양배추 수확이 한창이었다. 대관령 고랭지 배추 수확이 시작됐다더니, 이곳의 양배추도 큰 일교차 덕분에 알차게 익었나 보다.

양배추 수확을 하고 있는 농민들
▲ 양배추수확 양배추 수확을 하고 있는 농민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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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그림자를 제법 길게 만들어갈 무렵, 평창 버스터미널 근처에 도착을 했다. 그때야, 봉평오일장이 아니고 평창오일장이었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러니까 어제의 착각을 종일, 봉평장에 가서 허탕을 치고도 생각이 돌아오지 않다가 평창에 와서야 생각이 난 것이다.

'건망증'이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여서 약간은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평창오일장은 시간 상 거의 파장 무렵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상인들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파장 무렵 떨이로 살 물건이 있을까 싶어 장 구경에 나섰다.

평창오일장은 5, 10오일장으로 열린다. 파장무렵에 들러서 오일장은 더 한산해 보인다.
▲ 평창오일장 평창오일장은 5, 10오일장으로 열린다. 파장무렵에 들러서 오일장은 더 한산해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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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파장 무렵인데도 물건이 많다. 난전을 벌인 할머니들도 아직 물건을 다 팔지 못했는지 듬성듬성 앉아 남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활기를 잃어버린 오일장의 모습을 본다. 활기를 잃어버린 오일장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은 쉬운 일이 아닐 터다.

장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도시와 인접해 있는데 대형마트가 없거나 교통편이 편하거나, 소비 인구가 제법 많거나, 오일장의 특색을 살린 곳은 여전히 활기차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장은 활기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각 오일장만의 특산물이랄 것도 없이 오일장마다 나온 물건들이 대동소이하기도 하다. 거기에 물건 값도 그다지 싸지 않고, 국내산이 아닌 수입산이 펼쳐져 있고, 상술만 남아 스스로 제 살 파먹기를 하고 있는 중은 아닐까?

파장무렵 오일장

과거의 평창오일장이었다면, 동해에서 잡은 생선을 오일장에 내가팔려면 진부령을 넘었을 것이다.
▲ 평창오일장 과거의 평창오일장이었다면, 동해에서 잡은 생선을 오일장에 내가팔려면 진부령을 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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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 무렵이라 더 쓸쓸한 오일장
▲ 평창오일장 파장 무렵이라 더 쓸쓸한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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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하여 오일장의 흥도 적어진듯 하다.
▲ 평창오일장 한산하여 오일장의 흥도 적어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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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오일장 십여군데 다녀보고 오일장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한다는 것이 미안하긴 하지만, 위의 느낌은 가감 없는 솔직한 생각이다. 게다가 대형마트와 경쟁해야 하고, 대형마트가 없는 작은 시골조차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가 오일장을 잠식한 지 오래다. '농업협동조합', 그런데 거기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가 지역 오일장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북적이는 장에선 구경나온 이들의 마음도 북적거림에 들뜨기 마련이다. 그 들뜸에 마음을 열고, 지갑도 여는 법이다. 

'그래, 오전이 아니고 파장 무렵이니 약간 한산한 것이라 생각하자. 파장 무렵에 이 정도의 사람들이 있으면 북적이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을 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마음 아프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상인들의 물건을 팔아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더덕, 도라지, 싸리버섯, 산더덕, 능이버섯, 송이버섯... 드디어 평창오일장 정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들을 만났다. 아니, 다른 장에 가도 있지만, 이것은 모두 평창산이거나 인근에서 수확한 것이다. 이른바 '로컬 푸드'인 것이다.

더덕과 도라지를 파는 상인
▲ 평창오일장 더덕과 도라지를 파는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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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더덕과 싸리버섯, 송이버섯 등이 나왔다.
▲ 평창오일장 자연산 더덕과 싸리버섯, 송이버섯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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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마일(Food Mile)은 '생산농가로부터 최종 소비자까지의 이동 거리'를 개념화한 개념이다. 이것은 환경의 지표로 사용될 수도 있는데, 가장 친환경적이면서 건강에도 좋은 식품은 푸드 마일을 최소화한 로컬 푸드인 것이다. 각 오일장마다 '로컬 푸드'를 활성화하는 것도 오일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내와 나는 서울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을 샀다. 이율배반적인 푸드 마일이며 로컬 푸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일장 들렀다가 구경만 하고 나오는 것보다는 그래도 많은 양은 아니라도 조금이라도 소비를 해주는 것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어 오일장에 들르면 무언가는 산다.

어떨 때는 군것질 거리를 사고, 점심을 먹는 정도기도 하지만, 그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인데다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면 조금 비싸도 구입을 한다. 물론, 더 싱싱하거나 대형마켓이나 마트보다는 더 싸게 살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다

조금은 쓸쓸한 듯한 평창오일장, 그러나 파장 무렵이라 오전의 활기로움을 놓쳤을 것이라고 믿고 싶게 하는 오일장을 만났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오일장의 파장무렵처럼 쓸쓸하지 않은 평창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평창오일장, #평창동계올림픽, #물매화, #봉평, #메밀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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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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