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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에게 전달한 국제공동성명의 포스터.
 아베에게 전달한 국제공동성명의 포스터.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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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반대하는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래 아시아역사연대) 등 150여 개의 국제단체는 지난 7월 30일 일본 아베 총리에게 15만 명이 서명한 국제공동성명을 보냈다. 내용은 "UN 역사교육지침을 지켜 더는 역사 왜곡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국제공동성명 행사에서 한국의 서명을 주도해온 아시아역사연대가 시름에 빠진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중·고교 역사교과서의 국정제 전환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도 'UN 역사교육지침'을 어긴 것은 마찬가지라는 판단에서다.

'아베' 비판한 아시아역사연대, 시름에 빠진 이유

지난 7월 30일 국제단체들이 아베에게 전달한 'UN교육지침 적용 요청' 서명지.
 지난 7월 30일 국제단체들이 아베에게 전달한 'UN교육지침 적용 요청' 서명지.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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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에 열린 제68회 UN 총회에서는 '문화적 권리에 대한 특별보고'의 형식으로 UN 역사교육지침이 채택됐다. 이 지침은 ▲ 교사의 역사교과서 선택권 보장 ▲ 역사학자의 역사교과서 내용 선택권 보장 ▲ 정치적 필요에 따른 역사교과서 선택 배제 ▲ 정치인의 의사 결정 배제 등을 담고 있다.

다음은 UN지침 전문이다.

"역사교육은 애국심을 강화하고 민족적인 동일성을 강화, 공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젊은 세대 육성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폭넓게 교과서가 채택되어 교사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과서 선택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필요에 기반해서는 안 된다. 역사 교과서(내용)의 선택은 역사학자에게 맡겨야 하며, 특히 정치인 등 다른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피해야 한다."

그동안 아베 정부는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바꾸는 방식으로 교과서 내용에 개입해왔다. 또한, 교과서 심의기관을 통해 검정 과정에서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지난 4월 검정을 통과해 2015년부터 적용될 모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는 "일본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했다"는 내용이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우익정치집단들도 교사와 역사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UN 소속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중·고교의 역사교과서를 한 권으로 통합해서 국정으로 펴내려 하고 있다. 교사의 역사 선택권과 역사학자의 역사교과서 내용 선택권을 거둬들이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필요와 정치인의 요구에 따라 역사교과서 내용이 결정될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13일 '역사교과서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교육부는 이 지시에는 "국정교과서 추진 내용이 없다"면서 "오류와 편향성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이 지시를 받은 뒤 국정제를 본격 추진한 점에 비춰보면, 청와대의 개입 의혹을 빗겨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10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올해 상반기에도 청와대의 압력이 심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대통령 지시로 움직인다는 정황"이라고 황 장관을 추궁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 2일 대표 연설에서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N이 강조한 '정치인의 의사결정 배제' 조항을 어긴 셈이다.

일본보다도 못한 한국? 교수들 "국정은 독재의 산물"

김민화 아시아역사연대 국제협력부장은 "일본에서 아베에게 교과서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UN 역사교육지침이 담긴 서명지 전달 기자회견을 할 때 면이 서지 않았다"면서 "일본은 그나마 검정 교과서여서 교사와 역사학자들의 선택권이 있지만, 한국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만든다면 이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형편으로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 부장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하나의 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고 국제 사회의 추세와는 동떨어진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덕성여대 교수 40명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교수들의 선언'에서 "UN 역사교육지침은 학문적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가운데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충고"라면서 "국정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나 채택하는 낙후된 교과서 발행제도이며 정통성이 허약하고 억압적인 국가에서 선호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번 서명엔 전체 178명의 교수 가운데 22.5%가 이름을 올렸다.

이날 부산대 역사학과 교수 전원인 24명도 성명을 내어 "국정교과서 제도는 독재 권력의 산물"이라면서 "정부는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자율성과 다양성, 창의성이 보장될 수 있는 인정제, 자유발행제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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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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