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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 거여동재개발지구의 골목길에 놓여진 의자와 오랫동안 사람의 왕래가 끊어진 골목길을 가로막고 자란 오동나무가 골목길을 폐쇄시켜 버렸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 거여동재개발지구의 골목길에 놓여진 의자와 오랫동안 사람의 왕래가 끊어진 골목길을 가로막고 자란 오동나무가 골목길을 폐쇄시켜 버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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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올해 찜통더위로 찜질방같은 곳, 잦은 국지성 소나기에 비가 줄줄 새는 곳에서 여름을 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들을 훔쳐보는 것도 죄인양 하여 이번 여름엔 먼 발치에서만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는지 밤이면 창문 사이로 스며나오는 불빛보다 더 많은 가로등 불빛이 쓸쓸한 골목길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곧 철거를 마치고 개발될 것이라는 조짐은 골목길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올해 안에는 철거를 마치고 재개발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만만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닌듯 했다.

그곳 사정에 밝은 이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일년을 더 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오동나무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아예 골목길을 폐쇄해 버렸다. 그 모습만으로도 이 골목은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골목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도 낡아가고 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도 낡아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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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는다.

'도대체 이 방법 외에는 없었는가?'

이곳에 살던 이들, 이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열악한 상황이 되어버린 재개발지구, 어떻게 손을 써보려고 해도 이젠 아예 다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은 상황이다. 조금씩 조금씩 쇠퇴해가다가 어느 틈엔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든 인생을 보는 것 같다. 아니면, 조금씩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자신의 타락을 인정할 줄 모르는 타락천사?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주거공간'이다.
의식주가 흔들리게 되면 그 누구의 삶도 행복할 수 없기에 나라가 해야할 일 중 최우선 과제는 국민 누구나 의식주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것들에는 관심도 없고, 이미 지척에 있는 이웃들이 자신들이 애써 마련한 집을 지키겠다는데 공권력으로 그들을 죽이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나라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폐허가 된 골목길은 점점 안으로 오그라드는 듯하다. 골목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폐허가 된 골목길은 점점 안으로 오그라드는 듯하다. 골목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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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통일 이야기가 많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통일을 하겠다는 건지 묘안도 없으면서, 그냥 무책임하게 쏟아내는 말들의 잔치뿐인 통일론 앞에서 통일하기 전에 이런 주거환경들 부터 해결해야하지 않겠는가 싶다.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인 약자들도 보듬지 못하면서 평화통일이 무슨 대수겠는가?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갈등의 골만 더 깊이 각인하게 할 것이며, 빈부갈등이나 지역갈등 등의 문제를 성숙하게 극복하지 못하는 한 통일대박은 없다. 오히려 쪽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슬슬 지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으며, 소통을 가장한 선거운동도 이미 시작된듯하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평상시에 소통이라고는 하지 않던 국회의원들이 매주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여기저기 현수막을 붙였다. 거여동재개발지구가 속해있는 송파지역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느닷없는 대화 초청에 그리 달갑지가 않다.

난 묻고 싶다.

거여동재개발지구가 지난 10년 동안 이렇게 망가질 동안 이 지역을 위해 머슴같이 일하겠다며, 거여동재개발지구에 대한 공약을 미끼로 표를 구걸했던 의원 나리들께서 무슨 짓들을 하셨는지.

골목길 끝에 열린 문, 누가 사는가 가만 들여다보니 빈 집이었다. 사람이 떠난 집은 황량하고 쓸쓸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길 끝에 열린 문, 누가 사는가 가만 들여다보니 빈 집이었다. 사람이 떠난 집은 황량하고 쓸쓸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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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끝.
최근까지 그 골목엔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음식물재활용 용기'가 놓여져 있다. 그리고 골목의 끝에 있는 집은 문이 열려있다.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일까?
조심스레 실례가 되지 않도록 걸어 문틈으로 집안을 들여다 보았다.

사람이 떠난 빈 집에 버려진 잉크병, 빈 집이라도 버려진 물건들로 살아가던 이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이 떠난 빈 집에 버려진 잉크병, 빈 집이라도 버려진 물건들로 살아가던 이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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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람이 떠난 집이었다.

떠날때 버리고 간 물건들로 보아 초중학생을 두었던 가정이었던 것 같다. 버림받은 물건들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잉크'였다. 오랜만에 보기도 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펜글씨를 배운다고 잉크를 많이도 썼었다.

사각거리는 펜의 느낌이 좋아서 편지를 쓰거나 작문을 할 때에도 한번 잉크를 찍으면 천자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상표를 단 펜촉을 길들였다. 펜촉은 길이 들만하면 이내 닳아서 미끌거렸고, 글씨도 두꺼워져서 잉크도 많이 들었다. 그때 펜을 갈아 잉크를 찍으면 첫 글씨를 쓰는 펜의 촉감은 어색했으며 서걱거렸다. 그런 느낌도 좋았다. 어쩌면 이 집에 살던 이도 그런 느낌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곳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 다시 이곳으로 둥지를 틀을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치솟은 분양가에 이미 억 단위의 돈은 더 내야하고, 당장 아파트 관리비조차도 부담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재개발아파트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상이 점점 각박해 진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이들을 불경시하는 세상, 온갖 나쁜 짓을 다하고도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못하는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일년에 면회쯤이야 몇 천번도 할 수 있는 나라는 보통의 나라가 아니다. 이 보통의 나라가 아닌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마음 다잡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을 떠난 이들 중에서 이곳에 돌아와 살 수 있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옛날 골목길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너무도 허튼 바람일까?


태그:#거여동재개발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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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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