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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물건을 할인된 가격에 편리하게 살 수 있어 자주 찾던 대형마트에서, 언제부터인가 '백화점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백화점을 닮아가는 듯한 대형마트의 과도한 서비스 방침을 날마다 목격하고 있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열악한 백화점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살펴본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을 만나보았다. - 기자 말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2008년 어느 여름날을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트 앞에서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슬로건으로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그 슬로건을 들으니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캠페인 이후 대형마트의 의류매장에 갔다. 많은 노동자들이 서서 일을 하고 있었고, 하루 이틀 서서 일한 것이 아닐 텐데 왜 이제야 그 모습이 보였을까 싶었다.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다리가 아프면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전국적으로 마트와 백화점에 노동자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두자는 캠페인이 이어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하자는 목소리가 모였고, 많은 시민의 공감이 모여, 실제로 홈플러스 평촌점, 부천 여월점, 해운대점, 태백 농협 하나로마트, 광양 하나로마트, 롯데백화점 울산점, 이마트 안성점, 고속도로 휴게소인 사천휴게소, 신탄진휴게소, 문막휴게소 등 많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고속도로 휴게소에 캐셔(계산직)노동자를 위한 의자가 놓이는 성과를 얻어냈다.

7년, 서서 일하던 이들은 앉을 수 있게 됐을까

마트 점원.
 마트 점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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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는 2014년 '백화점 노동자에게 물 한 잔의 권리를!'이라는 제목으로 백화점 노동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백화점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올해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을 만났다. 다시, 물건이 아닌 '사람'을 보기 위해 찾아간 대형마트에서, 쉼 없이 뛰어다니는, 물건을 옮기는, 크게 소리치는, 허리 숙여 물건을 정리하는, 그리고 여전히도 '언제나 서 있어야 하는' 수십 명의 마트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만난 것은, 계산직(캐셔) 노동자 뒤에 놓인 빈 의자. 8년 전 캠페인의 성과로 놓인 '바로 그 의자'를 직접 볼 수 있었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마트 노동자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병원에 갔어요. 그랬더니 하는 일이 뭐냐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거기서 그 일을 계속하면 다리 못 쓴대요, 나중에... 그래서 제가 그때 그만두고 나왔어요."

결혼과 함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찾은 직업이 대형마트의 계산직이었다는 인터뷰이 S님은 대형마트에서 계산직으로 6년을 일했다.

줄줄이 늘어선 손님들을 맞으며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멘트를 치며,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방광염을, 온종일 서서 일하느라 하지정맥류를 기본으로 달고 살았다는 S님. 쉬는 시간이 거의 없고, 휴게실이 있어도 직원들을 감시하는 마트 측의 눈초리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는 S님은 결국 수술이 필요할 만큼 다리가 붓고 아파지면서 이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말 못할 고충들이 너무 많다"는 S님.

그래서, 꼭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다. 7년이 지난 지금, 대형마트 노동자의 앉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거기에 있는데도, 앉을 수 없는' 의자에 대해서.

의자는 의자인데 앉을 수 없는 의자?

의자는 의자인데 앉을 수 없는 의자는? 수수께끼 넌센스 같은 일이다. 답은, 마트에 있다.
 의자는 의자인데 앉을 수 없는 의자는? 수수께끼 넌센스 같은 일이다. 답은, 마트에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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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님에게 2008년의 '의자 캠페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용지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의자 그거 무용지물이에요~! 앉을 수가 없어요. 절대 못 앉아요.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앉아가면서 근무할 수 있다, 이렇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거죠. 직원들 앉으라고 놓는 건 아니에요. 누구 뭐, 외부에서 누가 오면 "좋네. 힘들 때 앉으면 되겠네." 이렇게 말하지만요,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그거는. 의자는 뭐, 나라에서 놓으라고 하니까 이제... 어쩔 수 없으니까 따라서 하는 건데, 그냥 뭐, 폼이지 폼."

노동자들 바로 뒤에 놓여 있지만, 노동자들을 위한 의자는 아닌 의자. '의자이긴 의자이지만 앉을 수는 없는 의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고객들 왔다 갔다 하는데 어디 감히 의자에 앉아요"

‘의자캠페인’을 소개하는 한 기사에 달린 댓글.
 ‘의자캠페인’을 소개하는 한 기사에 달린 댓글.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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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의자캠페인 이후 사회적인 요구를 기반으로 정부도, 대형마트 등에 노동자를 위한 의자를 놓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캐셔가 건방지게 앉아서 고객을 응대한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의자를 두고 앉아 있는 풍경을 두고 "불쾌하다", "고객인 내가 서 있는데 어딜 감히 앉아 있나"라는 민원이 이어지자 대형마트들은 슬그머니 의자를 치우거나, 의자에 앉는 노동자에게 '눈치'를 주었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의자에 앉을 수 없는 이유로, '마트 측의 감시'를 꼽았다. 기업은 노동자를 감시하는 이유에 대해 '고객을 위한 최고의 서비스'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객의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의견을 받아들여 시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업 측의 방침이었고, 이것이 기업이 말하는 '서비스'가 되어 의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다.

기업이 '고객을 위한 서비스 방침'을 항상 최우선으로 앞세우는 동안,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권이나 인권, 노동자에 대한 배려나 더 나은 근무환경이란 것은 언제나 2순위, 3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소위 말하는 '고객의 갑질'로 인해서, '온종일 서서 일하는 것'으로 인해서 노동자의 안전이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기업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무조건 고객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 '최고의 서비스'라 여기는 기업의 기울어진 방침 때문인 것이다.

"근무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온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대형마트의 근무환경은 노동자의 신체적 자유권과 건강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의 김재민 연구원(<유통업 여성 근로자 노동 환경 개선 방안 연구>, 2012)에 따르면, 유통업 판매직 여성근로자의 절반 이상(56.4%)이 일을 하면서 질병에 걸린 경험이 있으며, 온종일 서서 일하는 근무 환경으로 인해 근골격계질환(85.4%), 무지외반증과 같은 발질환(80.7%) 등을 앓고 있었다.

이처럼 노동자의 건강권이 지속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고객의 눈에 보기 좋지 않기 때문에" 하루 6시간, 8시간 동안 서비스·판매직 노동자가 서서 일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2008년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을 하던 당시 많은 시민들은 서비스·판매직 노동자들이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의자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서비스·판매직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여론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기업 측은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고객'이라는 핑계로 고수하고 있는 기업의 '방침'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27조에서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앉을 수 있는 권리는 소중하다. 대형마트 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미 무수히 많은 시민들의 공감과 성원을 얻은 바 있는, '의자 두기' 캠페인과 서비스 판매여성노동자들의 '앉을 권리'는, 다시 주목받아야 한다. 서서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판매직 노동자들도 앉을 수 있는 권리'가 당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외친다! 서비스·판매직 노동자에게 당연한 의자를!

▲ 대형마트 서비스·판매직 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 <당연한 의자> 후원하기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http://womenlink1987.tistory.com)에도 동시 연재됩니다.
글쓴이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여성민우회, #대형마트, #의자캠페인,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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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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