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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오른쪽부터)이 지난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대표인 김양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오른쪽부터)이 지난 25일 오전 판문점에서 '무박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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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철야 마라톤협상 끝에 나온 남북 고위급접촉의 합의에 대해 정부가 '성공작'이라고 적극적으로 자화자찬하고 있다. 향후 남북 관계가 순항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이런 모습은 지난해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북측 고위층이 대거 인천을 방문해 대화를 촉구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남측이 전향적 미래를 향해 발 벗고 나서는 이색적인 모습이다.

'유감'은 유감이지만... 남북 대화는 긍정적

특히 정부는 남북 합의문 제2항에서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한 것에 대해 '남측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된 것'이라면서 앞장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야권에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북측의 '유감' 표명에 대해서 지뢰폭발과 남측 군인들의 부상에 대한 책임 소재는 명시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처리했다는 견해가 나오지만, 정부는 손사래를 치면서 "유감 표명은 남측이 요구한 시인·사과를 관철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담이 한창 진행 중이던 24일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며 대북 협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데 이어 협상 결과가 나온 25일 "합의문은 흔들림 없이 원칙을 고수하면서 회담에 임했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이 '유감' 표명에 대해 합격점을 제시하고 사후 인증 도장을 찍은 셈이다.

남북 고위급 접촉에 참석했던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전도사의 역할에 나섰다. 그는 이번 공동합의문과 관련해 "시인, 사과의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한 경우는 1996년 강릉 잠수함침투사건 이후 처음"이라며 "시인과 사과, 재발 방지는 관철된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북측이 대한민국 정부에 북한을 주어로 해서 유감을 확실하게 표명한 첫 번째 사례'라고 강조했다.

홍 장관은 충남 천안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현안보고를 통해 다시 한 번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이 유감을 표명한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과거엔 주어가 없거나 우리가 아닌 미국을 향한 것이었다며 북한의 이번 유감 표명은 자신들의 도발 행위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

이번 남북 합의를 놓고 대부분의 대북 전문가들은 남북 간 대화를 통한 합의 자체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합의 내용, 특히 '유감'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도 이런 점이 확인되고 있다.

지난 25일 JTBC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이날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남북합의에 관해 물은 결과 만족한다는 대답은 67.4%로 만족하지 않는다(24.2%)는 응답보다 크게 높았다. 하지만 북한이 유감이란 표현을 쓴 것은 적절한 사과로 보기엔 미흡하다(66.3%)는 지적이 충분하다(30.6%)는 대답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또한, 지뢰폭발 사건부터 남북 접촉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잘했다가 66.6%, 잘못했다가 29.9%로 나타났다. 공동보도문에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이 담겼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발방지 약속이 아니다(45.2%)라는 응답이 재발방지 약속이다(36.4%)보다 높게 나타났다(유무선 전화 자동응답방식 조사, 응답률 6.9%,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

보수단체인 자유민주연구원은 남북합의에 대한 비판 성명에서 "그 어디에도 지뢰도발사건과 포격도발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며 남북합의의 즉각 파기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의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보수적 성향의 정부가 대통령부터 '사과와 재발방지'가 확실하다고 나서면서 과거와 같은 극우성향 단체들의 성토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반대로 일부 보수 단체는 26일 자 보수 신문 광고를 통해 '대통령이 수십 년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칭송 메시지를 내보냈다.

박근혜 정부, 남북 대화 전향적 태도 보일까

일반 여론과 달리 현 정부가 북측 유감 표명을 사과로 간주하겠다고 강변하는 태도에서 향후 남북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전향적 의지가 드러난다. 남북 간 경제 및 민간 교류를 막고 있는 최대 걸림돌인 5.24 조치의 도화선이 된 천안함 사건에도 '유감'과 같은 형식을 적용할 경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천안함 사건은 북측이 자기들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지뢰 폭발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특히 이번 남북 합의문 6항이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고 규정한 것은 민간교류를 금지해왔던 5.24 조치의 절반을 해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 주목된다.

북측이 과거에는 펄쩍 뛰던 '유감' 표현을 이번에 수용한 것도 남북 교류 정상화에 목말라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또한, 이번 남북 협상 과정에서 전 군사력을 동원해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무력시위를 한 것도 이번에 어떤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남측 일각에서 북측이 심리전 방송 중단만이 최급선무였다고 하는 것은 너무 좁게 보는 시각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남북이 추석을 전후해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킬 경우 상봉 장소가 금강산일 가능성이 크고 자연스럽게 금강산 관광 재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금강산 재개는 빠르면 수 개월 안에 성사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금강산과 5.24 조치 등이 해결될 경우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럴 경우 내년 총선과 그 이후 대선에서 보수층이 유리한 입장에 설 것은 분명하다.

보수 정권이 남북 교류에 나서는 새로운 추진 세력으로 등장할 경우 향후 한반도 정세는 크게 호전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남북 교류는 진보 진영의 독점물로 인식되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이른바 퍼주기 논란이나 종북, 친북 몰이의 기세가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보수진영이 지난 수년간 고집한 대북 적대 정책의 방향을 바꿔 남북 교류 협력이 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호재라고 확신할 경우 정치지형 등이 급변할 전망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이 과거처럼 미국의 대북 봉쇄 압박 정책에 매몰 되거나 '민족보다 이념이 우선'이라는 식의 태도를 고집하고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같은 구태를 반복할 경우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 특히 정전체제가 평화협정으로 바뀌지 않는 구조적 한계와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의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경우 현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은 순항키 어렵다.

북은 언젠가 하나가 되어야 할 민족의 반쪽이다. 한반도 역사나 세계사에서 정치 이념은 유한하고 민족의 생명력은 그것을 초월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분단 이후 참혹한 전쟁을 겪은 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여러 정권에서 남북이 전쟁을 피하고 평화통일을 추진해야 할 당위론이 제기되어 왔다. 현 정권이 이 같은 한반도의 특수성을 심각하게 받아드려 역사 발전에 동참하지 않고 대북 정책도 국내 정치용으로 악용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라이솔> 등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남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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