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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미나레트) 하나에 돔형 지붕 대신 부챗살 모양의 지붕이 독특하다.
▲ 국립 모스크 전경 첨탑(미나레트) 하나에 돔형 지붕 대신 부챗살 모양의 지붕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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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시내까지 저렴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처럼 공항철도가 잘 발달돼 있긴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에 머무는 닷새 동안 교통체증을 피해 전철과 모노레일 등 기차를 신물나도록 탈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내에서 남쪽으로 5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값비싼 택시를 이용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버스 안은 쾌적했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운전대가 우리나라와 반대쪽에 있고, 차량이 좌측통행을 한다는 것 빼고는 우리의 여느 고속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기사가 출발하면서 튼 라디오를 통해 여기가 말레이시아라는 걸 비로소 실감하게 됐다. 때마침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로 시작되는 무슬림의 낮 예배 방송이 흘러나왔다.

예배 방송 나오는데... 이런 '자유분방함'

순간 움찔했다. 두 손을 모으든, 머리를 숙이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흘깃 주위를 살펴보니 기도하듯 눈을 감는 이들이 한둘 있긴 했지만, 대개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들이었다. 그때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버스 안에는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이들이 모두 같은 나라 사람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라 들었는데, 버스 안만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론가 바삐 전화하는 사람과 칭얼대는 아이에게 과자를 챙겨주는 엄마,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청년과 이마에 티카를 찍은 힌두교인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라디오를 켠 기사를 빼면, 실상 예배 방송에 귀 기울이는 이는 거의 없어 보였다.

그때 중1 아이는 버스 안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예상 밖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름지기 국교라면 응당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놀라워했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 한 달간의 라마단 기간에 누구는 금식을 하고, 누구는 배불리 먹는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냐며 비유를 들어 말했다.

이슬람 국가를 가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막상 간다니 사실 아이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종교가 삶을 지배하는 곳이니 여행 다니는 데 온갖 제한이 많을 것으로 여겼단다. 어린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서도, 왼손으로 누구를 가리켜도 안 되며, 식사는 오른 손만 써서 해야 한다는 등 여행 책자마다 언급된 이슬람 관습들을 출발 전부터 마치 수학 공식 외우듯 중얼거리곤 했다. 이번 가족여행을 두고 유독 '신비 체험'이 될 거라면서.

패스트푸드인 컵라면에도 '할랄' 마크가 붙어 있다. '할랄' 마크란 코란의 율법에 따라 도살된 육류가 사용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표시다. 무슬림들은 예외없이 식료품을 살 때 가장 먼저 '할랄' 마크를 확인한다.
▲ 엄격한 무슬림들의 삶의 단면 패스트푸드인 컵라면에도 '할랄' 마크가 붙어 있다. '할랄' 마크란 코란의 율법에 따라 도살된 육류가 사용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표시다. 무슬림들은 예외없이 식료품을 살 때 가장 먼저 '할랄' 마크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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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자마자 국립 모스크를 찾은 건 그래서다. 사실 이번 여행 동안 어느 곳을 가든 모스크를 맨 먼저 들렀고, 아예 말레이시아에 머무는 기간만큼은 무슬림인 양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여기저기 관광지 찾아다니며 증명사진 찍자고 온 게 아니니, 가능하면 모스크에 오래 머물고, 여러 무슬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보려는 심산이었다.

국립 모스크는 쿠알라룸푸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의 모든 기차와 버스가 기점이자 종점인 'KL(쿠알라룸푸르의 영문 이니셜) 센트럴'과 지척이다. 사각형 첨탑(미나레트)만 아니라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착각할 만큼 세련된 건물이다. 모스크의 상징이랄 수 있는 건물 중앙의 돔형 구조물이 이곳엔 없다. 대신 부챗살 모양의 기하학적 지붕이 인상적이다.

인도인 집단 거주지인 '리틀 인디아'에도 커다란 모스크가 있다. 한 인도인 무슬림이 찾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인도인은 모두 힌두교도라는 편견이 단박에 깨졌다.
▲ '리틀 인디아'에 자리한 모스크 내부 인도인 집단 거주지인 '리틀 인디아'에도 커다란 모스크가 있다. 한 인도인 무슬림이 찾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인도인은 모두 힌두교도라는 편견이 단박에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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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반바지만 아니라면 남자들은 문제없지만, 여성들은 입구에서 몸을 가리는 부르카와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물론, 대여료는 없으며 옷을 덧입어 더울 것을 배려해서인지 입구에서 음료수도 무료로 나눠준다. 무슬림만이 출입할 수 있는 예배 공간을 제외하면, 어디든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과, 삼삼오오 둘러앉아 잡담을 하고 있는 이들, 심지어 '불경스럽게' 누워서 자는 사람도 있다.

하루에 다섯 차례 있는 예배 시간은 아니지만, 예배당 안에는 몇몇 무슬림들이 개인적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내부는 천정과 벽에 적힌 코란 글귀를 제외하곤 아무런 종교적 상징물이 없다.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기 때문이다. 높고도 넓어 언뜻 황량하기까지 하다. 이슬람교에서 주일 격인 금요일 오후에는 만 명도 넘는 무슬림들이 이곳에서 동시에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열 걸음에 하나 꼴로 모스크가

사실 말레이시아에서는, 조금 과장하자면, 열 걸음에 하나 꼴로 모스크가 있다. 국립 모스크처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곳도 있지만, 대개는 우리네 주민 센터나 마을 회관 크기다. 공항과 터미널 등 다중이용시설에도 곳곳에 작은 '기도실'을 설치해놓고, 무슬림들이 아무 때나 쉽게 찾아가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이는 그곳이 무슬림들만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인 줄 알았단다.

공항이든 터미널이든 무슬림들이 언제든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갖춰져 있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임을 실감하게 된다.
▲ 공항 내 무슬림 기도실 공항이든 터미널이든 무슬림들이 언제든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갖춰져 있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임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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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공항버스 기사의 '유난스러움' 때문일 거라 여겼는데, 모스크를 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말레이시아에서 코란 독경 소리를 듣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택시에서도,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심지어 쇼핑센터에서도 정해진 시간이면 대개 라디오를 켠다. 무슬림의 5대 의무 중의 하나인 '살랏(Salat)', 곧 예배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는 모습이다.

작년 가족과 함께 '하지(Haji)', 곧 메카로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는 무함마드는 영어교사 생활을 마치고 모스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자카트(Zakat)'라 하여 기부와 희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기꺼이 자청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공동체를 중시하는 무슬림에겐 노후는 있어도 은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년퇴직 후 모스크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기부와 희사를 실천하고 있는 무함마드. 하루 종일 그는 기꺼이 한국에서 온 우리 가족의 넷의 가이드이자 친구가 돼주었다. 무뚝뚝한 표정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자상한 할아버지 같았다.
▲ 무함마드와 무슬림 복장을 한 초등학생 딸 정년퇴직 후 모스크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기부와 희사를 실천하고 있는 무함마드. 하루 종일 그는 기꺼이 한국에서 온 우리 가족의 넷의 가이드이자 친구가 돼주었다. 무뚝뚝한 표정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자상한 할아버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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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여서 히잡을 쓰거나 옷을 덧입는 게 어색하다고 했더니, 그는 되레 우리는 한 형제라며 반가워했다. 세례명이 뭐냐고 묻는가 하면, 이웃에 가톨릭을 믿는 가족이 여럿 산다며 친근함을 표했다. 또, 자신이 16남매 중 넷째라면서, 다산을 풍요와 행복의 척도로 삼는 건 낙태를 금하는 가톨릭과도 비슷하지 않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 대한 애정도 뽐냈다. 한국에 가본 적은 없다고 하면서도 또박또박 '이태원' 발음을 하며 그곳에도 모스크가 있고, 많은 무슬림들을 만날 수 있다고 일러줬다. 자녀들 모두가 한국 아이돌 그룹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는, 한글로 번역된 두꺼운 코란을 부러 가져와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안다면서.

섣부를지 모르지만, 여행 중 만난 무슬림들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는 엄격했고, 종교가 다른 이들에게는 관대하고 겸손했다. 분명 이슬람교가 그들의 삶에 전부라고 할 만큼 철저히 따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남들에게 강요하거나 으스대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말레이시아 내에서는 종교로 인해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힌두사원을 상징하는 정문 '고푸라' 바로 곁에 모스크의 돔형 지붕이 보인다. 다양한 종교의 공존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 힌두사원 바로 옆 모스크 힌두사원을 상징하는 정문 '고푸라' 바로 곁에 모스크의 돔형 지붕이 보인다. 다양한 종교의 공존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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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와 힌두사원이 곁에 나란히 서있는 풍경은 익숙할 정도고, 가톨릭 성당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예배 시간이 서로 다를 테니 마주보고 설치된 확성기의 경전 읽는 소리가 겹치진 않겠지만, 마치 순번을 정해 교대하듯 서로 다른 종교의 예배가 행해지는 모습은 상상하기에도 어색하다. 다양한 종교가 허물없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습도 흔하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모스크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화교들이 적지 않고, 인도인 밀집 거주지인 '리틀 인디아'에 자리한 모스크에는 인도계 무슬림이 많다. 화교들은 불교나 유교를 믿고, 인도계 사람들은 대개 힌두교를 신봉할 거라는 편견이 여지없이 깨졌다. 얼굴 전체를 가린 니캅 복장의 무슬림 여성 관광객이 힌두사원과 중국식 사찰을 찾는 풍경은 그저 우리 시각에서만 낯설 뿐이다.

'한 손엔 칼, 다른 한 손엔 코란.' 지금껏 이슬람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자, 이슬람교와 관련된 유일한 지식이었다. 어릴 적부터 무슬림들은 종교를 강요하며 살상도 서슴지 않는다고 그렇게 배워온 것이다. 일부다처제에다 여성에 억압적이며, 다른 종교와 문화를 배척하며 지구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종교로 인식되어왔다. 중1 아이조차도 그렇게 알고 있다.

모스크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불과 며칠 만에 그런 편견이 깨졌다.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무함마드와 헤어질 즈음, 그가 우리에게 건넨 마지막 당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혹시 나중에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며 건넨 인사말에 그는 동문서답하듯 이렇게 말했다.

"이슬람국가(IS) 때문에 전 세계가 시끄러운데, 그들을 가장 미워하고 경계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같은 무슬림들이에요. 모스크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중에서 이슬람국가(IS)를 이슬람교와 동일시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그게 가장 힘들어요. 요즘 저는 예배 시간에 그들의 회개를 위해 엎드려 기도해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주시겠어요?"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가족여행기, #베트남,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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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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