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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6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EG테그 사옥 앞에서 최근 사내 왕따, 감시, 차별, 표적징계 등으로 목숨을 끊은 고 양우권 조합원이 발생 한것에 대한 규탄 및 재발 방지, 유가족 배상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6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EG테그 사옥 앞에서 최근 사내 왕따, 감시, 차별, 표적징계 등으로 목숨을 끊은 고 양우권 조합원이 발생 한것에 대한 규탄 및 재발 방지, 유가족 배상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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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또 저들만 회의실로 들어가서 회의를 한다. (중략) 왜 나는 배제하는가. 이것만 보더라도 나를 현장으로의 원직복직 시키지 않으려는 위장 인사명령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노조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이런 처우를 자행해도 된단 말인가.

그리고 복직된 지가 벌써 두 달여가 되어 가는데 출입증도 발급해 주질 않는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진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난다. 머리가 아파 죽겠다. 힘들다. 너무. 오늘도 전날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완전 왕따다."

상생 기업? 살생 기업!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EG테크 전 분회장 양우권. 그는 1998년 포스코의 사내하청업체인 EG테크에 입사해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산화철 폐기물 포장업무를 해 왔다. 2006년,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사측은 조합원들을 탈퇴시키기 위해 갖은 탄압을 했지만, 그는 노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감봉, 무기한 대기발령, 그리고 두 차례의 해고에도 그는 동료들이 모두 탈퇴한 노조를 버리지 않았다. 법원에서 부당해고 인정을 받자 사측은 그를 형식적으로 복직시켰지만, 그가 일하던 제철소 현장이 아니라 공장 밖 엔지니어 사무실로 배치하고 온종일, 1년 내내 CCTV의 감시와 조직된 왕따를 당하게 했다.

이러한 부당노동행위는 '원청'인 포스코의 영향을 받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포스코는 EG테크와 같은 '협력업체'를 핵심성과지표(KPI)를 통해 통제하는데 여기서 노사관계가 20%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 곧 포스코와의 계약이 해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협력업체가 계약 해지를 당하지 않아도 조합원임이 드러난 노동자들은 사실상 해고를 당하기 일쑤이다.

위에서 인용한 고 양우권 전 분회장의 일기를 보면, 복직 명령을 받은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출입증을 발급해 주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실제 일을 하는 장소인 포스코 제철소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은 원청인 포스코가 발급한다. 출입증을 발급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곧 원청이 해당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배제하는 조치, 즉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다. 자동차, 조선, 철강 업종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 중 노조를 만든 이들은 예외 없이 출입증이 무효화되는 일을 당하곤 했다. 조합원의 현장 출입을 막는 것이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조를 지키려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자행되는 탄압과 회유는 원청의 관여 없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금속노조만 탈퇴하면 연봉을 1000만 원 이상 올려 주겠다", "노조만 탈퇴하면 포스코의 협력업체 사장을 시켜주겠다"는 회유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러한 원청의 행위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지만, 정부는 이들을 '우수기업'이라 표창하고 재정 지원을 해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포스코는 '상생협력 우수기업'이라며 각종 지원을 받아왔다. 포스코가 협력업체에 핵심성과지표를 강요하는 행위는 협력업체에 대한 '경영 컨설팅'으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직접 교육·훈련하는 행위는 '중소기업 훈련 지원'으로 포장됐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런 식으로 포스코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받은 액수가 약 34억 원에 달한다.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받는 재벌·대기업의 사내하도급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여 다양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정책이 추진되었다. 2006년 3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07년 9월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공정거래협약 절차 및 지원 등에 관한 기준'이 제정되었다. 여기서는 동반성장을 위한 대기업의 지원사항으로 '자금지원'(운영자금, 기술개발자금 등), '인력·교육·훈련 지원'과 함께 '협력사의 경영과 관련된 직·간접적인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상생협력 모범기업'에 대해 공공조달 시 우대조치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고용보험법',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등에 근거하여 각종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 사업'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 사업은 대기업이나 사업주단체 등이 중소기업과 훈련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직업훈련을 시행하는 경우, 고용보험기금에서 시설·장비구매비, 인건비,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 사업은 '대기업 등이 가진 우수한 직업훈련 인프라를 활용하여 중소기업 노동자의 직업훈련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2002년부터 시행됐으며, 2014년 현재 180개 컨소시엄에 2086억 원이 지원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이 사업은 대기업의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직무교육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표 1>은 2014년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은수미 국회의원이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이다.

컨소시엄 운영기관 지원금 지급 순위
* 인력현황은 건설부분에 한함
** 인력현황은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무기계약직)과 고용노동부 공공기관 간접고용현황(소속외 근로자)을 인용
▲ <표1> 컨소시엄 운영기관 지원금 지급 순위 * 인력현황은 건설부분에 한함 ** 인력현황은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무기계약직)과 고용노동부 공공기관 간접고용현황(소속외 근로자)을 인용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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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을 보면 지원금 지급 규모에서 상위 25위를 대부분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가 실시하고 있는 고용형태공시제 데이터를 통해 이들 상위 25개 기업의 소속 외 근로자(공시의무 사업주의 사업장 내에서 사업주 간 파견, 용역, 도급 계약 때문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비율을 비교해보면, 정규직(무기계약직) 대비 68.6%로 나타났다. 2014년도 고용형태공시제에 참여한 전체 기관의 소속 외 근로자 비율이 32.0%인 점과 비교하면, 컨소시엄 사업 운영기관인 대기업의 소속 외 근로자 비율이 2배 이상 높다.

이들 소속 외 근로자를 모두 파견근로관계에 있는 근로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위 25개 대기업의 상당수에 대해 그동안 근로자지위 확인의 소가 제기되거나 인정된 사실을 고려하면 소속 외 근로자의 상당수가 간접고용 상태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포스코,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전자서비스, 현대미포조선, 한국지엠, 한국수력원자력,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에 대해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이 근로자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한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한국지엠,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에 대해서는 법원이 근로계약관계 성립을 인정한 바 있고, 현대중공업,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해서는 노조법상 사용자 지위를 인정한 바 있다.)

위장도급·불법파견을 정당화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2월 28일 오후 창원버스종합터미널에서 열린 경남도민대회에서 '폐업 규탄' 피켓을 설치해 놓고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2월 28일 오후 창원버스종합터미널에서 열린 경남도민대회에서 '폐업 규탄' 피켓을 설치해 놓고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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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의 사례는 국가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 사업이 어떻게 간접고용을 지원하고 또 은폐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삼성전자서비스에는 2013년 현재, 270명의 정규직 수리기사와 함께 협력업체 소속 8406명의 수리기사와 1431명의 콜센터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이들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모집·채용에서부터 직무훈련, 배치, 근태 관리와 교육, 평가, 포상과 징계 등 고용관계 전반에 걸쳐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자사의 홈페이지에 '교육생 모집' 공고를 하고, 지원자들에 대한 서류 및 면접 전형을 시행한다. 최종 합격자는 삼성전자서비스 서비스아카데미에서 3개월간 기술교육을 수료한 후, 수리기사가 희망하는 지역 서비스센터의 협력사와 근로계약을 맺도록 한다.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인사와 근태관리에서부터 업무 배치, 일상적 보고 등 고용관계의 전반은 삼성전자서비스의 통합 전산시스템으로 실시간 관리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매월, 매분기, 반기마다 협력업체 수리기사에 대한 교육을 하고, 수리기사의 자격 갱신 여부를 결정하는 평가시험을 1년에 2회 실시한다. 기타 수시평가시험도 시행한다. 만일 교육에 불참하거나 평가시험에서 기준 점수에 미달하면 업무 수임이 중지된다. 그 밖에 삼성전자서비스는 수리기사들에 대한 '해피콜' 등 모니터링 제도를 통해 수리업무뿐만 아니라 고객에 대한 감정노동까지 강제하고 있다.

고정급 없이 수리 건수별로 삼성전자서비스가 정한 수수료를 받아 생활하는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에게 있어 수리 업무를 배치 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바로 임금 삭감, 더 나아가 사실상 해고에 해당하는 일이다. 2013년 10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최종범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접적 계기가 된 것도 고객의 불만 제기를 빌미로 한 협력사와 삼성전자서비스의 학대와 탄압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교육과 서비스 관리에 이처럼 신경을 쓰는 이유는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업무 수행이 바로 삼성전자서비스의 사업의 본질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의 사업을 위한 교육·훈련을 시행하면서 그것이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직업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고용보험기금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는 것이 현재의 국가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 사업의 실체이다. 나아가 노동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교육·훈련을 통해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경영컨설팅과 감사 등을 통해 협력업체를 통제하는 것도 모두 '대·중소 상생협력 정책'에 근거한 것이라며 불법파견 사용의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듯 재벌·대기업의 인력 외주화, 사내하도급 활용이 '협력업체'로 포장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활용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으로 치장되어 온 정점에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놓여 있다. 정부는 이러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에 각종 지원을 할 뿐 아니라,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도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에 따른 대기업의 통제 수단은 제외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운동이 '대·중소 상생협력'이란 저들의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재벌·대기업이 노동자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보다 직접, 더욱 온전히 부담하도록 하는 요구를 제출하고 투쟁해야 할 시점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윤애림 시민기자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원하청, #원하청 상생, #상생협력, #간접고용, #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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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폐연대는 우리의 삶과 노동을빈곤과 위기로 내모는 불안정 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삶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운동하는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workright.jinbo.net 단체 이메일 :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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