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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근방에서 차를 내리고

브뤼셀 대성당
 브뤼셀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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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헤에서 브뤼셀까지는 85㎞ 거리로 1시간쯤 걸린다. 52㎞쯤 거리에 겐트가 있으며, 이들 도시간에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아주 잘 나 있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쯤 지나 브뤼셀 외곽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점심식사를 할 레스토랑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그것은 식당이 도심 뒷골목 시장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 미셸(Michel)과 구둘레(Gudule) 성당으로 불리는 대성당 근방에서 차를 내렸다. 겉보기에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결합된 중후한 성당이다. 그렇지만 성당을 보지는 않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간다. 중국식 레스토랑 '상하이(上海)'로 유럽화된 중국음식점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브뤼셀 관광의 출발점인 그랑 플라스(Grand Place)로 걸어간다. 가이드는 이 광장으로 가는 길이 대단히 복잡하니, 조심해서 잘 따라오라고 한다. 우리는 새끼 오리들처럼 가이드를 졸졸 따라간다.

상트 위베르 아케이드
 상트 위베르 아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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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문화유산이나 유명 건물을 보면서 천천히 걷고 싶지만 그게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리저리 돌아 우리는 왕립 상트 위베르(Galeries Royales St Hubert) 아케이드로 들어선다. 이 아케이드는 1846년 유럽 최초로 지붕을 덮어 사시사철 장사를 할 수 있는 상가로 만들어졌다. 현재 이곳에는 유럽의 명품과 기념품을 파는 고급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벨기에는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다. 그것은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유럽에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보수반동체제가 들어선 결과였다. 신교가 우세한 네덜란드로부터 구교가 우세한 벨기에가 독립할 명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벨기에는 독립하면서 수도를 브뤼셀로 정했고, 1831년에는 레오폴드(Leopold) 1세를 왕으로 옹립했다. 이후 벨기에는 입헌군주국으로 번성했고, 상트 위베르 아케이드도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다.

가자, 그랑 플라스로!

브뤼셀 시청
 브뤼셀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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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를 지나 그랑 플라스로 들어서면 광장의 동쪽이 된다. 그랑 플라스는 길이가 110m, 폭이 70m나 되는 큰 광장이다. 이 광장은 12세기에 처음 형성되었고, 17/18세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광장 건물은 처음에는 고딕식이었으나, 1695년 루이 14세의 브뤼셀 공격으로 건물의 일부가 파괴되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기도 했다. 

그랑 플라스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시청, 길드 하우스, 왕가(Maison du Roi)이다. 시청은 이 광장에서 가장 높은 고딕식 건물로, 탑의 높이가 97m나 된다. 1404년 처음 지어졌고, 1444/54년 확장되면서 브뤼셀의 수호성인 성 미카엘 동상과 탑이 만들어졌다. 1897년부터 전면적인 복원작업을 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청사 전면에는 성인, 왕족과 귀족 등 유명 인사의 조소상이 조각되어 있다.

길드하우스
 길드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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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하우스는 광장에서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남쪽과 북쪽의 시청과 왕가를 빼면 다 길드하우스이기 때문이다. 이들 길드는 업종에 따라 제빵업자, 목수, 정육업자, 선박업자, 소매업자 등으로 분류된다. 광장에는 이런 길드하우스가 39종이나 있다. 왕가의 다른 이름은 빵집(Broodhuis)인데, 이를 통해 이 건물의 용도가 수없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법원, 감옥 등을 거쳐 현재는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와 아내는 이들 건물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렇지만 내부로 들어갈 시간은 없다. 시립박물관은 브뤼셀 역사박물관으로 1887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브뤼셀의 역사기록, 예술품,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에 입혔던 옷이 보관되어 있다. 오줌싸개 인형의 옷은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그것은 외국의 원수가 벨기에를 방문할 때 오줌싸개 동상의 옷을 만들어 오기 때문이다. 이곳의 오줌싸개 동상 옷방에는 300여점의 의상이 보관되어 있다.

오줌싸개 동상은 그랑 플라스에 있지 않다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왕가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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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오줌싸개 동상을 찾아간다. 오줌싸개 동상은 광장의 남서쪽 스토프(Stoof) 거리를 따라 가야 만날 수 있다. 레튀브와 쉔느 거리가 만나는 코너에 61㎝에 불과한 아주 작은 청동상이 서 있다. 이름이 '어린 줄리앙'으로 브뤼셀을 상징하는 관광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본 사람들 대부분이 실망해,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런 문화유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가 볼 때는 마침 옷이 입혀져 있다. 그런데도 오줌을 누고 있다.

이 동상 주변에는 그 작은 문화유산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실 뭐 대단한 볼 것도 없는데... 스토리텔링이 만들어낸 그럴 듯한 이야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든다. 브뤼셀 시내에 불이 났는데 오줌을 누어 불을 껐다는 둥... 그러나 오줌싸개 동상은 브뤼셀 시민들의 저항의식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오줌싸개 동상
 오줌싸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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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1388년) 벨기에 사람들은 이웃 나라의 공격을 받아 포위되었다. 외국군은 성벽을 폭파시킬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줄리앙이라는 어린 소년이 적진으로 들어가 오줌으로 도화선의 불을 껐고, 그를 통해 브뤼셀을 위기로부터 구했다는 것이다. 그를 기념해 돌로 동상을 만들었고, 그것이 여러 번 도난당하자 1619년 히에로니무스 두케스노이(Hieronimus Duquesnoy)에 의뢰해 청동으로 다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청동상도 여러 번 도난을 당했고, 1965년 현재의 동상이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원래의 청동상은 시립박물관에 이전 전시되고 있다. 오줌싸개 동상은 수시로 옷을 바꿔 입는데, 그것은 비영리 민간단체인 '오줌싸개 동상 친구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청동상의 고추가 맥주통 꼭지와 연결되어 맥주를 쏟아내기도 한다. 이때 지나가는 관광객은 공짜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진보적인 정치인 덕에 살아남은 그랑 플라스와 예술의 언덕

브뤼셀 시장 카렐 불스에게 헌정한 그림
 브뤼셀 시장 카렐 불스에게 헌정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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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싸개 동상을 보고 우리는 다시 그랑 플라스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스토프 거리에서 청년양식(Jugendstil)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브뤼셀 예술가들이 브뤼셀 시장 카렐 불스(Karel Buls)에게 감사의 표시로 헌정한 그림이었다. 그럼 카렐 불스는 어떤 사람이길래 예술가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걸까?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1881년부터 1899년까지 브뤼셀 시장을 지냈다.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던 그는 시장에 취임하자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두 가지를 공용어로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브뤼셀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국왕이던 레오폴드 2세의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브뤼셀의 구도심인 그랑 플라스와 예술의 언덕(Mont des Arts, Kunstberg)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시청 테라스 앞에 모인 젊은이들
 시청 테라스 앞에 모인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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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에는 결국 구도심을 보호하는 조례가 제정되었고, 복원을 위한 기금이 마련되어 1923년까지 복원작업은 계속되었다. 카렐이 시장을 그만둔 1899년 브뤼셀 건축가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었고, 그 중 하나가 이 그림인 것이다. 브뤼셀을 대표하는 잘 생긴 청년이 월계수 위 제단에 올라 카렐에게 승리의 횃불을 전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랑 플라스 광장으로 돌아오니, 이제 젊은이들의 함성과 열기가 가득하다. 우리가 광장을 찾은 날은 7월 21일로 마침 벨기에 독립기념일이었다. 벨기에 전국에서 모인 학생 단체 회원들이 시청 테라스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들을 보고 우리는 광장의 북서쪽 증권거래소 건물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증권거래소에 들어갈 수는 없고. 가까운 천주교회엘 들어가 본다. 성 니콜라스(Saint Nicolas) 성당이다. 영어로 미사를 보는 성당이라고 한다.

성 니콜라스 금관
 성 니콜라스 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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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고딕식인데, 내부는 바로크식이 가미되었다. 제대 한쪽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모셔져 있고, 가운데 제단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모셔져 있다. 또 다른 쪽 파이프 오르간 사이에는 화려한 모자이크가 있는데,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상이다. 또 다른 쪽에는 비둘기가 전하는 성령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성 니콜라스의 시신을 모신 것으로 보이는 금관(金棺)도 있다. 

우리는 이제 상트 위베르 아케이드를 지나 동남쪽 예술의 언덕으로 올라간다. 중간에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을 지나 알베르티나 광장에 이르니 알베르트(Albert: 1875-1934) 국왕 동상이 우릴 맞이한다. 광장 주변에는 고미술박물관, 국립도서관, 법원, 왕궁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멀리서 외관만 살펴본다. 사실 그랑 플라스와 예술의 언덕에 있는 문화유산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는데, 수박 겉만 핥고 말았다.

EU 수도 하이젤 지역엔 가보지도 못하고...

예술의 언덕
 예술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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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브뤼셀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브뤼셀 북쪽의 신시가지 하이젤(Heysel)이다. 이곳에는 현재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 유럽연합 행정관서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이곳은 1935년 세계박람회장(Expo)으로 조성되었고, 1958년 다시 Expo를 개최하면서 현재와 같은 상설 박람회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상징물이 유명한 원자고리인 아토미움(Atomium)이다.

높이가 102m나 되는 구조물로, 지름이 18m인 원자 9개가 원통형 스텐레스 막대로 연결되어 크리스탈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크리스탈 면은 모두 12개다. 이 막대 구조물에는 계단,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있어, 관람객들을 5개 전시공간으로 이동시켜 준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는 레스토랑이 있어, 음식을 먹거나 쉬면서 브뤼셀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아토미움 형상
 아토미움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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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는 또 이곳 하이젤에 유럽 경제공동체(EEC) 본부가 자리 잡았고, 2002년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조약으로 유럽연합이 탄생하면서 유럽연합의 수도가 되었다. 현재 이들 유럽연합 기구에서 일하는 직원만 해도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연합도 3권분립이라는 측면에서 입법부인 의회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사법부인 법원은 룩셈부르크(Luxemburg)에 두고 있다.


태그:#브뤼셀, #그랑 플라스, #시청과 왕가, #오줌싸게 동상, #하이젤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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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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