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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통해 세상을 보고자 한다.
▲ 김진석 사진가 길을 통해 세상을 보고자 한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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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사진기자 생활을 접고 길 위에 선 사진가. 그가 이번엔 파리를 걸었다.

김진석(42)씨는 '길 위의 사진가'다. 제주올레를 시작으로 투르 드 몽블랑, 히말라야, 바르셀로나, 규슈 올레까지 세계를 돌아다니며 걸었다. 맨몸으로도 걷기 힘든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5kg가 넘는 사진기를 손에 쥐고 걸으면서 '카미노 데 포토그래퍼'(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이번엔 프랑스 파리에서 찍은 사진책을 냈다. 하루에 25~30km씩 두 달 동안 약 1000km를 걸어 파리의 20구 구석구석을 훑었다. 사진 10만 장을 찍었고 300장을 선별해 여행 에세이 <라비 드 파리>(La Vie de Paris)를 냈다. 우리 말로 하면 '파리의 인생'. 파리하면 생각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나 풍경 사진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가득하다.

맥도날드, 이슬람, 차도르, 쇼핑백... 이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 자연스러운 곳. 여기가 바로 홍세화 선생이 톨레랑스를 발견한 프랑스 파리이다. 김진석 사진가도 그 톨레랑스를 좇아 이곳에 왔다.
 맥도날드, 이슬람, 차도르, 쇼핑백... 이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 자연스러운 곳. 여기가 바로 홍세화 선생이 톨레랑스를 발견한 프랑스 파리이다. 김진석 사진가도 그 톨레랑스를 좇아 이곳에 왔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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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 백발의 아저씨, 카메라를 향해 '나 멋지죠?'라고 포즈를 취하며 웃는 노동자, 패스트푸드점을 배경으로 검은 이슬람 전통 의상을 입은 채 유명 의류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 전화하는 여성... 파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근처 한 카페에서 사진가 김진석(42)씨를 만났다. 그는 오른손에 깁스한 상태였다. 오래 걷는 내내 손에 사진기를 쥐고 있다 보니 손가락 마디 연골이 닳아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길 위의 사진가, 그는 그토록 고생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 모두는 다르지 않다... 일상을 살아갈 뿐

걸어야만 보이는 게 있다.
▲ 김진석 사진작가 걸어야만 보이는 게 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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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비 드 파리>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편견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파리는 영화나 책을 통해서 매우 낭만적인 도시라고 알려졌다. 나도 실제로 파리에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리지앵은 이럴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파리에 사는 사람은 서울에 사는 사람, 부산에 사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사람은 다 똑같다. 같은 표정을 가지고,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평범한 사람을 담으려고 했던 이유다."

-굳이 걸어서 사진을 찍는 이유는?
"나는 걸어야지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걷는다. 차를 타고 지나가 버렸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바닥에 달팽이가 하나 지나간다든가, 어떤 사람이 지하철에 기대서 책을 보고 있다든가, 아니면 서로 인사를 한다든가 이런 장면은 같이 템포를 맞춰서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래서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어떤 하나하나를 다 보고 싶다는 것을 뜻한다."

-일상적인 모습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사진가로서 내 역할은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짧은 한순간이라도 여유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내 사진을 보고, 고된 일상에서 1분 아니면 단 5초라도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신들과 똑같은 모습,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일상을 봤을 때 나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있다 정신병 걸리는 줄" 길 위의 여유로움을 쫓다

"고된 일상에서 1분 아니면 단 5초라도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 그렇게 그는 연골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에펠탑 앞의 연인은 삶의 여유를 간직하고 있을까.
 "고된 일상에서 1분 아니면 단 5초라도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 그렇게 그는 연골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에펠탑 앞의 연인은 삶의 여유를 간직하고 있을까.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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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동안의 사진 기자 경력이 있는데.
"월간 <말>에서 객원 기자로 사진 기자를 시작했다. 2004년쯤엔 안티 조선 운동하는 분들이 모여 만든 <여의도통신>이라는 입법전문 매체로 옮겨서 사진 기자생활을 했다. 2008년 <여의도통신>을 마지막으로 기자 생활을 그만뒀다. 당시 노무현 정부 때였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정당을 차지했었다. 뭔가 세상이 바뀔 분위기였다.

근데 솔직히 나는 국회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있었는데,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 국민이 없는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 모습을 억지로 봐야 했다. 나는 그게 너무 모순돼 보였다. 꼭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가 사진을 찍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과감히 그만뒀다."

- 어떤 계기로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겠다고 마음먹었나?
"사실 여행이라는 테마가 나한테는 없었다. 기자를 그만두고 내가 관심을 가진 건 길이었다. 정치, 사회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만 봐오다가, 길을 걸으면서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보게 됐다. 걸음으로써 사람들의 표정이 편안해지는 걸 봤다. 길을 걸으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기자를 때려치고 프랑스 파리로 날아간 그. 그가 찾은 '톨레랑스'와 삶의 '여유'는 무엇일까. 사진으로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진기자를 때려치고 프랑스 파리로 날아간 그. 그가 찾은 '톨레랑스'와 삶의 '여유'는 무엇일까. 사진으로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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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홍세화 선생님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보고 톨레랑스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궁금했다. 이 부분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프랑스 사람들 몸속에 톨레랑스가 어떻게 배어 있을까 궁금했다."

- 톨레랑스를 발견했나?
"한 번은 백인인 시각 장애인 할머니 한 분이 지하철에서 나와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분이 좀 헤매고 있었다. 할머니와 반대편으로 걸어가던 흑인 젊은 친구가 길을 돌아오더니, 그 할머니에게 도와주겠다고 말하더라. 할머니가 그렇게 하자고 했는지, 젊은 친구가 할머니를 데려다주고 자기 길을 돌아가더라.

근데 이때 그 흑인 젊은 친구의 작은 몸짓 하나에서 그 톨레랑스를 봤다. 이 친구가 어떻게 했냐면, 두 손가락 끝으로 할머니 팔의 옷을 살짝 잡더라.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약간 뭉클했다. 우리가 도움을 줄 때, 도움을 강요하는 부분도 있고, 과하게 도와주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도움을 받는 사람이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근데 이 젊은 친구는 도움을 주되, 이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할 수 있는 만큼 여지를 열어둔다는 거다. 말없이 끝까지 길을 걸어서 할머니를 데려다주고 자기 길을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톨레랑스라고 부를 만한 것이 상당히 몸에 배어있다고 느껴졌다. 그런 몸짓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진석 사진가가 '최고'로 꼽은 사진. 전철 손잡이에 여러 색깔의 손이 붙어 있다. 그는 이 사진이 프랑스의 톨레랑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평했다.
 김진석 사진가가 '최고'로 꼽은 사진. 전철 손잡이에 여러 색깔의 손이 붙어 있다. 그는 이 사진이 프랑스의 톨레랑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평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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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실린 사진 중 독자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사진 1장을 꼽는다면?
"243페이지. 백인, 흑인, 동양인이 함께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는 사진이 있다. 손만 나와 있는 사진이다. 나는 그 사진이 파리를 가장 잘 말해주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파리는 정말 다양한 인종이 서로의 구역에서 서로의 생활습관을 가지고 공존하는, 한 마디로 전 세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왜 걷는지 답 못 찾고 죽을 듯, 그냥 걷는 거지"

<라비 드 파리>(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 펴냄 / 2015.07 / 1만7500원)
 <라비 드 파리>(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 펴냄 / 2015.07 / 1만7500원)
ⓒ 큐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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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계획은?
"도시 걷기를 계속할 예정이다, 지금은 오사카랑 베를린을 계획 중이다, 또 내 고향인 고창군 걷기를 해서 책을 낼 예정이다."

- 왜 이렇게 세계 곳곳을 계속 걷고 있나?
"항상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질문을 한다. 나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건강, 수행, 치유, 자기만족, 도전 여러 가지 단어로 길을 걷는 이유가 만들어질 수 있다.

나는 '길을 걷는 이유가 이거다'라고 풀어내고 싶지 않다. 어떨 때는 나의 건강 때문에 걷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나의 도전적인 의미로 걷기도 하고, 어떨 때는 무작정 걷고 싶어서 걸을 때도 있다.

항상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묻지만, 왜 걷는지 답은 아마 못 찾고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냥 걷는 것 같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라비 드 파리>(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 펴냄 / 2015.07 / 1만7500원)

박현광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김진석, #라 비 드 파리 , #길 위의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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