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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증명 같은 것을 받거나 보낼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지난 달 31일, 그동안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내용증명이란 것을 처음으로 보내게 됐다. 

'월 1회 운동장면이 담긴 사진, 설문지 작성하여 제출하여야….(회사 요구 시) /분기 1회 전화 인터뷰(가격, 제품경쟁력, 효과, 개선사항 등)에 응해야/사진, 설문지, 인터뷰 내용은 ㈜OO에서 마케팅자료로 활용함에 동의하여야….'(체험 동의서 내용 일부)

느닷없이 내민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지난해 5월 어느 날 저녁, 시가 쪽 친척 한사람이 느닷없이 찾아와 동의서를 내밀었다. 모 회사가 막 개발한 제품이라고 했다. 몇 사람에게만 우선 공짜로 체험할 수 있는 특혜를 준다는 것. 피로도 풀 수 있고, 무엇보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솔깃하게 와 닿았다.

하지만, 제품 앞에서 망설여졌다. 사전에 말 한마디 없이, 찾아온 그날 그 자리에서 바로 어떤 결정을 해달라는 것. 통장의 계좌번호까지 동의서에 기재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사인을 하고 말았다. 어지간한 변명만으로 거절할 수 없는 정도의 관계가 있는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설명을 들으며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간 한 달 후쯤인 6월 어느 날 물건이 설치됐고, 일종의 물건 보관증과 같은 렌탈계약서를 작성했다.

제품이 설치된 후 매달 그 회사는 20일쯤에 19만8000원을 내 계좌로 입금, 그로부터 하루 이틀 지나 같은 액수를 출금해가곤 했다. 그리고 제품 사용 소감을 묻는 전화가 몇 번 왔고, 제품 사용에 관한 안내 문자도 거의 매달 오곤 했다.

애초 염두에 없던 제품이라 그런지 처음 몇 달 잠깐 사용했다. 그것도 나와 남편만.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턱 하니 버티고 있는(대략 크기가 좀 작은 런닝 머신 반절 크기 가량) 제품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시가 쪽 친척과 연관되어 있는 제품이라 어서 빨리 계약한 날짜가 지나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그 친척의 건강이 최근 매우 좋지 못한데다 동의서 작성 당시 내 사소한 도움이 그 친척에게 힘을 실어주겠다 싶어 사소한 불편쯤은 참아보자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달 7월 20일 저녁 8시쯤. 이제까지 1년 넘게 해오던 '선입금 후출금'과 달리 먼저 19만8000원을 출금해갔다. 느낌이 좀 이상했다. 하필 설치 1년이 지난 그 첫 달에 출금이라 1년만 공짜로, 1년 후부터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건데, 그 친척이 말하지 않아 '생돈만 날렸나' 조바심도 났다. 

전화문의가 안 되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날이 밝으면 문의해 보리라 생각하며 참았다. 그러다 일이 바빠 미처 연락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후쯤 메시지가 왔다. '캐피탈 쪽 문제로 오류가 생겼다. 21일 입금, 22일에 출금해 갈 예정이다. 궁금한 것은 모처에 문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돈은 이미 빼갔으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업체의 메시였으나 뭔가 오류가 있겠지 싶어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 전화를 해 봤지만 통화중이었다가 어느 순간 비정상적으로 끊겼다. 

"나도 그 물건 때문에 요즘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마도) 무너질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캐피탈 관련 문제라 좀 그래.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일단 내일 바로 출금차단부터 하고, 빠져나간 금액 관련하여 소비자보호원에 피해사실을 접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가을 같은 제품을 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권했던 또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됐다.

출금정지를 하려면 회사에 요청하거나, 본인이 신분증을 가지고 은행창구에서 직접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은행에 갈 수 없는 상황. 우선 통장의 돈을 모두 인출했고 달마다 자동으로 계좌 이체되던 곳들에 수수료를 물어가며 일일이 송금했다. 

같은 회사 다른 제품 2건을 함께 발송, 총 7장을 빠른등기로 보낸 금액이다.
 같은 회사 다른 제품 2건을 함께 발송, 총 7장을 빠른등기로 보낸 금액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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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금정지에 앞서 내용증명부터 보내세요"

"접수되었습니다. 그런데 접수 여부와 상관없이 꼭 권하고 싶은 것은, 출금 정지에 앞서 회사 측에 내용증명을 먼저 보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출금정지부터 하면 몇 년 지나 도리어 OO씨에게 계약파기의 원인이나, 대금 지불 연체나 불이행 등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어요. 채무불이행 관련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 '이런 이유로 어떻다'를 6하 원칙에 따라 작성한 내용증명을 보낸 후 출금정지를 해야 합니다. 내용증명이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나중에 채무 관련 해서 참고자료(근거)가 될 수 있거든요."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를 하자 담당자가 이처럼 '내용증명'을 권했다. '3부를 준비해야 한다. 관련 계약서도 복사해 첨부하라'는 등, 내용증명 작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해 줬다.

그에 의하면 나와 같은 일을 당할 경우 불안한 마음에 나처럼 은행의 잔고를 비우거나 더 이상 통장에 돈을 넣지 않는 방법으로 출금해가지 않게 하거나, 은행을 통해 출금정지를 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그런데 위에 쓴 것처럼 훗날 불미스런 일로 되돌아오기도 한단다.

내용증명을 아주 특별한 양식의 서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내용증명 우편이란 발송인이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문서를 언제 발송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특수우편제도이다. 우체국이 문서내용과 발송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말은 주고받는 사람들끼리만 기억할 뿐 근거가 남지 않는다. 또한 글이라 할지라도 개인끼리만 주고받는다면 그 사실은 인정받지 못할 수가 있다. 내용증명 우편은 내 의사를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것을 나중에까지 확인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는 현명하다. 내용증명 우편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1만 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소송을 막을 수 있다면 어쨌거나 남는 장사일 것이다.-<생활법률 상식사전>(저자 : 김용국)에서.

그날 내용증명 작성에 앞서 작성 서식 등을 알고 싶어 책을 펼쳤다. 대부분의 법률 관련 책이 내용증명에 대해 다룬다. 그러나 '법'은 왠지 낯설고 복잡하게만 생각하는 일반인인지라, 소비자보호원 담당자가 (내용증명을) 권할 때 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권고를 받는 순간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구나!', 철렁했다. 혹시 나처럼 내용증명이 필요한데도 간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내용증명, #채무불이행, #렌탈, #생활법률 상식사전,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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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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