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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어셈블리> 포스터
 KBS 2TV <어셈블리> 포스터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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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리> 보고 기사 한 번 써봐. 정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니까."

정치부 선배로부터 지시받는 순간 막막했다. 국회 출입 1년도 안 된 '코흘리개' 기자가 정치를 논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너 영어영문학과지? 영어 한 번 해봐'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고 '저 못해요'라고 선배 기자에게 들이받을 자신은 없었다. 군말 없이 주말 동안 드라마를 몰아보고 기사를 쓰기로 했다.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어셈블리>(극본 정현민, 연출 황인혁)를 둘러싼 우호적인 감상평과 달리, 기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보통의 드라마가 현실에서 겪어보지 못할 줄거리로 재미를 주는 반면, <어셈블리>는 맨날 국회에서 일하며 접하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극본을 쓴 정현민 작가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답게 국회를 섬세하게 잘 묘사했다. 극 중 주인공들의 발언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어라, 이 캐릭터는 XXX 의원 같네', '저 장면은 어떤 사건과 비슷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의도 정치권의 속살을 잘 다뤘다는 호평을 받을 만했다.

그래서 특별한 잣대와 기준을 들이대며 거창하게 리뷰를 풀어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정치부 1년 차 기자로서 보고 들은 정치 현실과 아주 흡사한 3가지 장면을 꼽아보려 한다.

[관전 포인트①] 국회의원의 머리와 입, 보좌진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진상필 의원(배우 정재영)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진상필 의원(배우 정재영)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 <어셈블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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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원회별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이 소관부처 장·차관을 상대로 질의할 때 보면, 늘 손에 A4 용지 몇 장을 쥐고 있다. 5~7분 정도의 발언 시간을 위해 보좌관이나 비서관들이 밤새워서 쓴 질의서다. 

의원들의 질의는 사실상 보좌진의 머리와 손발에서 나온다. 극 중 용접공 출신의 진상필 의원(배우 정재영)만 보좌진이 써준 질의서에 의지하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 대부분은 보좌진이 며칠 동안 소관부처를 쪼아서 자료를 받아내 작성한 질의서를 가지고 회의에 참석한다. 기획 단계부터 퇴고까지 직접 참여하는 의원도 많지만, 회의장 이동 직전에 결과물만 보고받는 의원들도 존재하는 게 국회의 현실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전문 지식이 있거나 경륜이 있는 의원들은 본인이 질의서를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질의한다. "문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장관은 뭐한 겁니까"라고 호통치는 여유까지 보이기도 한다.

반면, 보좌진이 써준 질의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읽어 내려가는 의원들도 간혹 있다. '추경(추가경정예산)'의 뜻도 모르는 진상필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정돼 시작부터 애를 먹은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극 중 진상필 의원은 보좌진이 써준 질의서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서 다행이었다. 기자가 현실 세계에서 만난 한 의원은 질의서를 읽는 과정에서 '군사 비밀 정보'를 '군사비 밀정보'라고 잘못 읽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관전 포인트②] 적군보다 무서운 아군, 계파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친청(친청와대)계인 백도현 사무총장(배우 장현성)에게 공천받은 진상필 의원(배우 정재영)이 반청(반청와대)계인 박춘섭 의원(배우 박영규) 옆에 앉아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친청(친청와대)계인 백도현 사무총장(배우 장현성)에게 공천받은 진상필 의원(배우 정재영)이 반청(반청와대)계인 박춘섭 의원(배우 박영규) 옆에 앉아 있다.
ⓒ <어셈블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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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갈등 없는 정당이란 없다.'

국회에 출입하면서 깨달은 정치의 현실이다.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로 의원들이 나뉘어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벌인다. <어셈블리>에서 국민당의 친청(친청와대)계와 반청(반청와대)계가 '좌장'을 중심으로 모여 상대 계파를 설득하고 양보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시로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여든 야든 말로는 '계파 청산'을 외치지만, 권력으로 먹고사는 정치의 속성상 뭉쳐서 살 수밖에 없는 듯하다.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인 계파들은 당 의원총회에서도 끼리끼리 앉는다. 극 중에서 친청계 백도현 사무총장(배우 장현성)의 공천을 받은 진상필 의원이 반청파의 좌장인 박춘섭 의원(배우 박영규) 옆에 앉은 것을 두고 동료 의원이 비웃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기자가 본 새정치연합 의원총회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의원들은 매번 칸막이가 있는 마냥 자연스럽게 계파별로 나눠 앉는 모양새다. 문재인 당 대표와 가까운 의원('친노' 그룹)들은 왼 줄 앞쪽에, 고 김근태 의원을 따르던 '486(198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1960년대생 운동권 세대)'과 민평련 그룹은 중간 쪽에, '비노' 또는 '비주류' 중진 의원들은 오른 줄 뒤쪽에 모여 있는 편이 많았다.

계파들은 '아군'인데도 불구하고 상대 당보다 무서운 '적군'으로 돌변할 때가 있다. 인사권이나 공천권 등 권력을 둘러싼 계파 갈등은 전면전으로 번지기도 한다. 최근 새정치연합 사무총장 인선을 두고 벌어진 '친노-비노' 갈등이 대표적 예다. 당직 인선 하나로 시작된 대립은 당무 거부 파동으로 이어졌고, '분당·신당론'에 불을 지폈다. 결국, 문 대표는 개편된 직제에 '비노' 그룹 의원 다수를 영입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비노 그룹의 '암묵적인' 요구에 따라 정책위의장도 교체하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극 중 친청파가 진상필 의원의 제명을 위해 물밑에서 '적군'인 야당과 손을 잡는 장면은 어쩌면 여의도 정치판의 '민낯'일 수도 있다.

[관전 포인트③] 지역구 의원들의 생명줄,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에서 백도현 사무총장(배우 장현성) 쪽이 진상필 의원(배우 정재영)에게 건넨 질의서.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에서 백도현 사무총장(배우 장현성) 쪽이 진상필 의원(배우 정재영)에게 건넨 질의서.
ⓒ <어셈블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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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섭(아래 박) :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정치 맨입으로 때우는 거 아닙니다."
백도현(아래 백) : "추경안에 SOC 사업 예산이 좀 있습니다. (반청계인) 박 의원님과 강상호 의원 지역구, 신경 써드리겠습니다."
: "이봐요 백 총장. 나 명색이 반청계 좌장 소리 듣는 사람입니다. (반청계 의원 중에서) 낙후 지역하고 야당 세가 강한 지역 위주로 좀 살펴봐 주세요."
: "그분들 다 챙기려면 예산 규모를 늘려야 합니다."
: "필요하면 늘려야죠. 나 정치하면서 예산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거, 여러 번 봤습니다."

극 중에서 친청계 백도현이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에 협조해 달라고 제안하자, 반청계 좌장인 박 의원은 SOC 사업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SOC 예산이란 도로·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예산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투자이긴 하지만, 우려할 점도 있다. 지역구 의원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한정된 예산을 과도하게 끌고 가는 경우다. 특히 추경 예산은 침체한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과 달리, 적자 편성으로 국가 부채를 늘려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최근 여의도 국회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2015년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SOC 사업 예산으로 1조5000억 원을 더 요구했기 때문이다. 즉각 야당은 "빚을 져가면서까지 적자 추경안에 SOC 사업 예산을 포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면서 전액 삭감 방침을 고수했다. 다행히 언론 보도 등의 영향으로 국회에서 최종 통과된 SOC 사업 추경 예산은 기존 정부안 보다 약 17%인 2500억 원이 삭감됐다.

하지만 여전히 숨겨진 꼼수는 존재했다. 여야 의원들이 586억 원어치의 사업을 새로 추가해 실제로 줄어든 SOC 예산은 1914억 원인 셈이 됐다. 홍문표·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서해선 복선전철 예산을 정부안(200억 원)보다 200억 원을 더 늘렸다고 홍보하기 바빴다.

SOC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예결위 소속인 김영록 새정치연합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은 보성-임성 철도 건설 예산을 새로 따냈고, 같은 당 강동원 의원 역시 88고속도로 성산-담양 구간 확장 사업비로 609억 원을 따냈다고 자랑했다.

극 중 진상필 의원은 지난 4회 방송에서 추경안 증액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읽으라는 백도현 사무총장의 지시를 뭉개고 추경안 대폭 삭감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과연 진상필 의원의 '소신'은 지역구 의원들의 '꼼수'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어셈블리, #국회, #계파, #보좌관,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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