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반빈곤권리장전>(아래 '권리장전')은 2015년 6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약 2주간 서울, 경기 곳곳에서 벌어지는 도시빈민에 대한 탄압 양상에 대해 조사하고, 도시빈민의 권리목록을 작성하여 발표하고자 모인 실천단입니다.

<권리장전>에는 약 13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하여 가든파이브, 철거민(돈의문, 서소문, 염리동, 노점상(DDP, 삼양동, 수유시장, 미아삼거리), 임차상인(만복, 보용만두, 신신원 등), 쪽방 주민(동자동), 홈리스(서울역, 홈리스행동)들을 만나 개별 면접조사 및 간담회 등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본 글은 조사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들은 바들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연속 르포 형태로 기고될 예정입니다. 각 지역에 대한 조사보고서 및 종합보고서는 빈곤사회연대 홈페이지 문서 자료실에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 기자 말

2015년 제2·제3의 용산 참사를 막기 위해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6년이 지났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용산 참사'는 용산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었나 보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 구석구석, 서울 근교 김포에까지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한민국 곳곳에 제2, 제3의 용산이 남아 있다.

재개발, 재건축은 낙후된 지역을 발전 시키지만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보상금은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고,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미명 아래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집을 잃고 삶 자체를 위협받는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 1구역 재건축]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은 2호선 신촌역, 6호선 대흥역, 경의중앙선 서강대역이 자리하고 여러 대학교가 모여 있어 입지적으로 굉장히 좋은 곳에 위치한다. 노른자위 땅이었으나 그 주변 지역보다는 지가가 싼 탓에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하지만 돈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의 좋은 입지를 알아보는 것은 시간 문제였고, 신수동은 곧 재건축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건물주가 아닌 일반 세입자들은 '9월 1일까지 이주하라, 그렇지 않으면 명도 소송을 걸겠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린 후에야 이 지역이 재건축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보다는 주거 세입자가 많은 지역이었던 만큼 재건축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보상은 건물주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은 법적으로 보상에 대한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도 않았다. 주거세입자들은 하루아침에 빈손으로 쫓겨나게 됐다.

이에 주민들은 연대하여 '신수동 철거 대책 위원회'를 설치하고 적절한 이주대책이 마련된 재건축을 요구하기에 나섰다. 하지만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이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은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이간질하고 회유했다.

"여기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고 나가라고 하면 그 돈 갖고 어디 가서 사냐고, 지금까지 나간 사람들 보면 다들 지방으로 가요. 원래 여기도 재개발 지역이었는데 재개발은 법적으로 보상을 다 해줘야 되니까 나중에 재건축으로 바뀌었지. 건물주들한테는 미리 얘기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5월 달에 플래카드 걸린 거 보고야 알았어. 9월 1일까지 나가라고 하는 걸. 그 전까지 계속 싸워봐야지."
- 신수동 주민과의 인터뷰 중-

[김포시 고촌읍 신곡 6지구 재개발]

김포 신곡 6지구는 마포 신수동보다도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신곡 6지구는 지난 2008년 4월 도시개발사업 실시계획인가를 받고 재개발을 추진하였으나 시공사가 부도나고, 2012년 조합이 무효 판결을 받으면서 도시개발 구역지정이 해체되었다. 허나 올해 2월 김포시가 신청하고 경기도가 승인한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에 의해 개발이 재개되려 한다.

이 지역은 공장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 코팅, 기계 등 도시에서 밀려난 소규모 업종의 공장들과 주거세입자들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재개발 이후 이들의 삶은 통째로 뒤바뀌었다. 한 때 월 매출 2000만 원에 달하던 공장들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후 황무지가 되어 버린 환경 탓에 거래가 줄어 월 매출이 500만 원까지 급감했다. 주거세입자들은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자기 땅 한 뼘 없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개발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개발이 재개되려는 현 시점에서 신곡 6지구를 지키고 있는 주거 세입자는 단 한 가구이다. 가족 부양을 위해 타지에서 일하고 계신 아버님과 두 딸, 막내아들, 그리고 홀로 투쟁을 이어가고 계신 어머니로 구성된 가족이다. 부부는 김포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제품을 납품하고 있었으나 하청이 지니는 한계와 지역 재개발로 인해 공장을 그만 두었고, 7년 이상 이어져 온 철거 투쟁으로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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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가 되어버린 공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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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이기 때문에 풀들은 무성하게 자랐고, 버스마저 끊긴 삭막한 마을에서 도시로 나가기 위해서는 항상 차로 이동해야 한다. 밤이 되면 마을에 남는 것은 달빛과 한 가구에 켜진 등불뿐이다. 조합에서 고용한 용역들은 동네에 상주하는데, 딸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용역 깡패와 조합의 횡포, 자살하러 찾아오는 곳이 되어 황폐화된 동네의 모습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갈 곳 없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기 힘든 환경임에도 이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적절한 보상과 이주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은 하나다. '순환식 개발'. 순환식 개발이란 원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개발, 당장 거리로 떠밀리지 않고 주거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개발, 재정착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된 개발을 의미한다.

현재 어머니는 김포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진행하고 계신다. 어머니가 외치는 것은 '주거생존권을 보장하라', '이주 대책 마련하라', '순환식 개발 시행하라'다. 이에 대해 시청은 '안타깝다'는 반응만 내놓을 뿐,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우리 자식들한테 진짜 미안하지. 동네가 어둡고 흉흉하니까 친구들하고 늦게까지 놀고 싶어 해도 들어오라고 해야 되고, 여름에 비 많이 오면 습해져서 벌레도 엄청 많아지는데 우리 딸들은 그런 것에 기겁하고 그런 것 보면 엄마가 너무 미안하지. 그래도 이 투쟁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내가 혼자라서 가장 힘든 것은 시청이고 용역이고 경찰이고 다 한편이라는 거야. 내가 아무리 요구하거나 그 사람들한테 뭘 당해도 그 당시에는 경황이 없으니까 핸드폰으로 사진 찍거나 녹음할 생각도 안 드니까."
-홀로 남은 신곡 6지구 주거세입자 가정 어머니와의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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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시청 앞에서 <2015반빈곤권리장전> 대원들이 신곡마을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피케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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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이런 빈곤을 겪게 되는 것일까? 철거민들이 무언가 잘못을 했을까? 입지가 좋은 지역에 자리 잡고 살아온 게 잘못인걸까? 개인의 게으름, 무능함을 원인으로 치부하기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자본과 거대한 권력은 끝을 모르고 이익을 추구하고, 이 과정에서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배제된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갈 이 사회에 과연 우리의 보금자리는 있을까? 철거 없는 세상이란 가능한 것일까? 주거세입자와 가옥주, 영세 상인들이 모두 먹을 권리, 입을 권리, 잘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은, 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