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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바닷가 여름 해수욕장 파라솔(?) 밑에서^^
▲ 우리 가족 어느 바닷가 여름 해수욕장 파라솔(?) 밑에서^^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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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분만 있으니 신혼이나 다름없겠네요."
"네^^"

아파트 이웃 사람들이 가끔 이렇게 인사를 한다. 딸이 시집을 가고 아들이 취업으로 직장의 기숙사로 떠났다. 이제 아내와 나 둘만 있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 보면 둘이 아니고 셋이다.

오늘 소개할 또 하나의 가족은 강아지이고 이름은 '보롱이'다. 옛날 중국 황실에서 사랑받던 시츄라는 품종의 수컷이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함께 있었으니 올해로 16년째이다. 이렇게 오래도록 같이 먹고 잠자며 지내왔으니 사람들이 애완견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하는 반려견이라고 하는가 보다.

"아빠 제발, 공부 열심히 할게요"

 어느날 산책길에서
▲ 보롱이 어느날 산책길에서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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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비가 엄청나게 많이 오던 6월 어느 날. 생후 한 달 조금 넘겨서 보롱이가 우리 집으로 왔다. 예전에는 낙동강 하구 을숙도의 강변에 대단지 아파트 1층에 살았다. 이사한 기념으로 베란다 앞 화단에 심은 손가락만 한 목련이 어른 팔뚝만큼 자라도록 오래 살았던 집이다. 바로 앞이 놀이터라 아이들은 아침부터 종일 놀이터에서 놀았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웃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아들은 그렇게나 좋아하더니 어느 날부터 우리도 강아지를 기르자고 졸랐다. 딸과 아내도 은근히 동조했다. 그러나 나는 반대했다. 개는 밖에서 개답게 살아야지 집안에서 키우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앞으로 말 잘 듣겠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며 며칠 동안 온갖 얘기로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더니 아예 온 식구가 애견가게에서 강아지를 봐두고 왔다고 했다. 어떤 강아지가 아주 예뻐서 다른 사람이 먼저 데려갈까 봐 걱정된다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할 수 없이 몇 가지 조건을 붙여서 승낙하고 말았다. 실은 나도 개를 무척 좋아하며 어렸을 때 시골에서 개와 함께 산으로 들로 돌아다닌 많은 추억이 있었다.

그날 저녁 퇴근해서 집에 오니 거실 보금자리에 앙증맞은 강아지가 있었다. 아이들 말처럼 동그란 눈도 맑고 고운 털 빛깔도 조화가 잘 이루어져 보기가 좋았다. 당장 이름을 짓자며 의논한 결과 초등생 아들의 의견을 따라 '보롱이'로 지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90세가 넘은 할아버지뻘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보롱이'로 부른다.

내가 좋아하니 다들 좋아하고 강아지로 인해 집안도 웃음이 많아졌다. 이때부터 우리 집은 보롱이 위주로 분위기가 이어져 왔으며 아이들은 동생처럼 정성으로 돌봤다.

강아지를 길러보니 돈도 들고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있었다. 마치 집안에 귀여운 아기가 생긴 것처럼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다. 무언가 모르게 식구들이 좀 더 행복한 것 같아 주위에서 개를 기르는 것에 관해 물어 오면 키워보니 좋더라고 대답한다.

물론 기르는 환경에 맞춰 품종의 선택이 중요하다. 남들 따라 무작정 키우다 보니 주위에 안 좋은 얘기도 많다. 그러나 보롱이만 놓고 보면 매우 착하다.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배변 문제다. 보롱이는 어릴 때부터 훈련을 잘 시켜 화장실을 잘 가린다. 시도 때도 없이 막 짖지도 않으며 가구나 전선, 옷 등 물건을 물어뜯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며칠 전 TV에서 어느 방송인의 집 강아지들이 소변을 거실 곳곳에 아무렇게나 누는 장면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집에서 훈련으로 안된다면 전문가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산책을 좋아하는 할아버지 강아지, 보롱이

 우리집 달력 모델이 된 보롱이
▲ 달력 우리집 달력 모델이 된 보롱이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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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면, 알아보고 기다리다 어찌나 반기는지 모습이다. 퇴근 후 술 한잔하고 밤늦게 모두가 잠든 현관에 들어 왔을 때 발소리만 듣고도 보롱이가 달려오는 순간, 모든 시름이 일시에 녹는다. 아마 개를 기르면 누구라도 느꼈겠지만.

"아유 ,귀여워. 몇 살이에요?"
"구십이 넘은 할아버지 강아지다."
"네에?"

나이가 많아도 보롱이는 자그마한 체구에 여전히 털빛이 곱다. 주말을 맞아 가끔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보면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럴 때 마치 나의 자식을 칭찬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귀엽다며 서로 안아보려 할 때도 괜히 기분이 좋다. 보롱이도 이 맛에 그런지, 산책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떻게 아는지 집 방향으로는 절대로 가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가기 싫어하는지, 앞발을 뻗고 버틴다. 먹성이 좋아서 먹는 것에는 사족을 못 쓰는 보롱이도 "온갖 먹을 것을 집에 가서 주겠다(이 말을 잘 알아듣는다. 특히 아내의 식성을 닮아서 빵을 좋아한다. '빵'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어르고 달래도 끝까지 버틴다. 마치 어린 아들이 떼를 쓰는 것 같아 이 모습을 사람들이 우습다며 바라본다.

다른 사람이 어서 집에 가라며 발을 굴려도 소용이 없다. 할 수 없이 끌기도 하고 안기도 하면서 집 앞에 간신히 도착한다. 그러면 보롱이도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산책 나올 때 좋아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풀죽은 모습으로 축 처진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제대로 자주 산책도 못 해주는 것에 마음이 짠해진다.

강아지 탈출로 혼비백산

 아직도 예쁘지만 눈멀고 귀먹어서 자꾸만 어디 부딛친다.
▲ 할배강아지 아직도 예쁘지만 눈멀고 귀먹어서 자꾸만 어디 부딛친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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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파트 중간층에 살지만, 예전 아파트 1층에 살았다. 당시에는 바로 윗집인 3층에 차로 함께 출근하던 지인이 있었다. 그가 아침마다 내려와 초인종을 누르면 현관문을 열 때마다 강아지가 뛰쳐나갔다. 매번 보롱이를 잡고 문을 열었는데도 가끔 탈출하여 밖으로 내달리는 바람에 온 식구가 혼비백산한 적도 있다. 재빨리 따라가서 잡아오기도 여러 번 하였고 두어 번은 도로까지 나가 차들 사이에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야말로 아내의 혼을 쏙 빼놓기도 했다. 보롱이도 그동안 집안에 갇혀서 답답했던 것일까.

우리 집을 보고 강아지를 기르게 된 지인을 요즘도 가끔 만난다. 식사하면서 보롱이의 안부를 물어오기도 한다. 함께 옛날 현관문을 탈출한 보롱이를 함께 붙잡으려 뛰어다닌 얘기로 웃으며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시츄란 품종도 여러 종이 있지만 보롱이는 성격이 낙천적이고 유달리 사람들을 잘 따른다. (정작 주인에게도 까칠하지만^^) 또 보롱이는 다른 동물들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덩치가 큰 개가 앞에 있어도 전혀 거리낌 없이 당당하다. 나도 보롱이의 그런 모습이 좋다.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는 모습을 싫어하는 것은 개를 키우는 사람이나 자식을 키워본 다 같은 부모 마음일 것이다.

먹성이 좋아 그동안은 보롱이를 키우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식탐이 많은 게 흠이다. 가끔 집에 손님이 와서 식사라도 하려면 유독 그 사람에게 집착한다. 어쩔 수 없이 먹이로 무마를 하려다 보니 자꾸만 더 집요하게 보채서 때로는 민망하다. 보롱이도 그것을 알고 그런 행동을 하니 머리가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먹이는 사료가 있지만 우리 가족은 오래전부터 아침 식사를 밥으로 하지 않고 빵으로 하면서 곁들여 고구마 감자 과일 등으로 하다 보니 보롱이에게도 조금씩 덜어 준다. 크기도 작고 무게도 5kg 미만이다 보니 한 끼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먹성도 좋지만, 소화도 잘해 한 끼 먹으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이다. 여태까지 지내면서 설사 한번 하지 않은 걸 보면 체질도 우수하다.

나의 먼 훗날을 보는 듯 짠하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큰 고민은 명절이나 여행 등으로 며칠씩 집을 비울 때이다. 이웃이나 아는 사람에게 맡기기도 쉽지 않고 일일이 '개보관소'에 맡기면 돈도 많이 들고 개도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반려견이 혼자서 며칠 밤낮을 보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마 가장 어려운 문제지만 보롱이는 다행히 사료와 물을 충분히 준비해 두면 이상하게 사료는 그렇게 탐하지 않고 먹을 만큼만 먹는다. 어릴 때부터 사료를 조금씩 먹이 옆에 두어서 그런지 보통의 식사와 먹이로서의 가치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털이 계속해서 자라는 것도 성가시지만 1년에 서너 차례 깎아주면 된다. 잠자리는 거실에 보금자리가 있지만 늘 아들 방에서 잔다. 몸부림이 심한 아들 때문에 몇 번이고 깨어나지만 그래도 끝까지 곁에 붙어있다.

잘 먹고 잘 자니 별로 아픈데 없이 건강하여 잘 지내던 보롱이도 이제 많이 늙었다. 아들 방의 침대도 거침없이 뛰어오르던 보롱이도 그새 눈도 멀고 귀도 먹어 자꾸만 어디에 부딪힌다. 사람이나 짐승도 세월에는 어찌할 수 없다. 마치 나의 미래를 그를 통해 미리 보는 듯해서 마음이 또 한 번 짠하다.


태그:#우리집, #가족, #강아지, #반려견, #할배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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