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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마지막 주에 우리 집은 이사를 했습니다. 3년째 살고 있던 주공 아파트가 재건축이 확정되면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주공 아파트 주변에 널린 고급스럽고 깔끔한 아파트 대신, 큰길 옆에 있는 상가 건물 지하층으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회사 사정에 따라 자주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경제적 사정이 더 큽니다.

빚을 안고 결혼한 이후, 수도권으로 발령받아 수차례 이사도 하고 집도 한번 장만했었습니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며 수천만 원의 손실을 안은 채 3년 전 울산으로 발령받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지하층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사 전까지 아내가 여러 번 쓸고 닦고 하여 집안의 곰팡이와 습기를 어느 정도 제거하고 가구를 들였습니다. 아내는 천식이 있는 데다가 피부가 민감한 아이들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너희 집은 전세야 월세야? ​

큰 길가 옆에 있는 상가 건물. 앞에서 보면 지하층이지만 건물 뒷쪽에서 보면 당당한 지상 1층입니다.
▲ 지하층으로 이사했습니다. 큰 길가 옆에 있는 상가 건물. 앞에서 보면 지하층이지만 건물 뒷쪽에서 보면 당당한 지상 1층입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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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생들은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런 이야기를 한답니다.

"네가 사는 집은 너희 부모님 거야?"
"너네는 전세에 살아 월세에 살아?"

첫째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가 전해준 말입니다. 예전 일산과 인천에 살 때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방도 다르지 않네요. 아이들에게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형편에 관해서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들 또래들은 친구들 집에 한 번씩 놀러 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 집 사정을 알게 되어 자기네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하나 봅니다.   

지하층에 살면서 매달 세를 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모든 조건이 안 좋습니다. 집 계약을 할 때나 이사를 하고 나서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아내를 보며 전 그런 말을 했습니다.

"큰길에서 보면 지하층이지만 건물 뒤쪽에서 보면 1층이야!"
"여기에 오래 머물 것도 아니고 잠시 있다 나갈 건데 조금만 참자."

아내도 수긍합니다.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을 옮기는 게 맘에 걸려 이 근처로 한정 짓다 보니 매물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 집은 위치가 아주 좋습니다. 집주인이 깨끗하게 리모델링도 해주었습니다. 한낮에도 불을 켜야 하지만 천장, 바닥, 화장실 모두 새집입니다. 게다가 앞에서 보면 지하층이지만 건물 뒤에서 보면 정말 1층입니다.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요." 좀도둑 출몰에 놀라

​어제저녁엔 친구들 집에 놀러 갔다가 집에 왔더니 싱크대 방충망이 열려있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바깥에서 방충망을 젖히고 안쪽 유리문까지 열었던 겁니다. 그래도 방범창 덕에 더이상 어찌하지 못하고 돌아간 것 같습니다. 이사 오기 전에 집주인에게 방범창 설치를 해 달라 했던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큰 길에서 20미터만 들어오면 지하층 집입니다. 살 만합니다. 그러나 좀도둑을 피할 방법이 없네요. 보안을 확실히 하는 방법 밖에...
▲ 상가 건물 지하층 큰 길에서 20미터만 들어오면 지하층 집입니다. 살 만합니다. 그러나 좀도둑을 피할 방법이 없네요. 보안을 확실히 하는 방법 밖에...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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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인천에 살 때도 여러 번 좀도둑에게 당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오래된 주택과 다가구 빌라가 난립해 있는 곳인지라 건물과 건물 사이가 가깝고, 방범창도 없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방 안이 훤히 보이는 곳입니다.

당시 1.5층 되는 우리 집 창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작은방 책상 위에 올려놓은 지갑이 사라졌습니다. 몇 달 후엔 현금도 가져갔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토요일 밤 11시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거실 쪽 창문 옆에 인기척이 보이는 겁니다. 가까이 보니 창문 옆에 바짝 붙어서 몸을 쭈그리고 있었습니다. 생각 같아선 몽둥이 들고 달려나가고 싶었지만, 아내와 첫째는 처제 집에 가 있었고 저는 생후 10개월 된 둘째와 함께 있었습니다. 바로 파출소에 전화했습니다.

"파출소죠? 지난번에도 신고했던 집인데요 한 번 더 순찰 좀 돌아주시겠어요? 지금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도망갔어요."

아내는 무서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그럽니다.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영 찜찜하고 울적합니다. 괜히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내 집'

그나마 우리는 나은 편입니다​. 아내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재건축으로 이주해야 하는 아들 친구 엄마와 통화를 했답니다.

"○○엄마, 집 구했어? 이제 준비해야 하잖아"​
"우리는 벌써 이사했어요."

"어, 정말? 우리도 빨리 알아봐야겠네. 우리는 지난번에 알아봤던 집으로 하려구"
"어딘데요?"

"지하층인데 집주인이 리모델링을 싹 해줘서 예쁘게 꾸며놨더라고. 방이나 거실이나 넓은 편이구"
"어, 혹시 독서실 아래 상가 주택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맞는데, 어떻게 알아?"
"ㅎㅎ 거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어요."

"어, 그래? 어떡해! 오늘 다시 전화해서 계약한다고 하려고 했는데…… 거기 어때?"
"예, 뭐 좋아요. 깨끗하고 넓고"​

우리가 한발 빨랐습니다. 우리는 재건축 심의 통과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 전에 바로 계약을 했는데 그 아줌마는 재건축 심의가 확정되면 연락하려고 했던 겁니다. 마음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맘에 안 들어도 아이들 때문에, 주머니 사정 때문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전 이 집이 마음에 듭니다.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이 가까워서 좋기도 하지만, 바로 옆이 큰길이고 교통이 좋으며 마트나 시장이 무척 가깝습니다. 그러면서도 집 안에 있으면 조용합니다. 아무래도 지하라서 습기가 차긴 하지만 때맞춰 보일러도 틀고 선풍기도 돌리면 뽀송뽀송합니다. 밤에 잘 때는 외부 불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잠자리에 방해받을 일도 없습니다. 휴일엔 몇 시인지도 모르고 늦잠을 자도 됩니다. 아무리 자도 한밤중이거든요.

우리 집 대문에서 20m만 걸어나가면 큰길인지라 상가와 학원들로 북적입니다. 그리고 ○○캐슬을 비롯한 대기업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출근길에 늘 보는 장면이지만 전 가족과 함께하는 우리 집이 제일 좋습니다. 여기서 몇 년을 살게 될지는 모릅니다. 사정이 좀 나아지면 더 좋은 곳으로 집을 옮길 수도 있을 거고요. 그래도 사는 동안에는 내 집이려니 하고 정을 듬뿍 주고 살렵니다.


우리집에서 몇 걸음만 나오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도로가의 학원들이 즐비합니다. 지하에서 보는 세상은 좀 다르지만 나는 내 집이 좋습니다.
▲ 우리집 앞에 있는 아파트와 상가, 학원들 우리집에서 몇 걸음만 나오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도로가의 학원들이 즐비합니다. 지하에서 보는 세상은 좀 다르지만 나는 내 집이 좋습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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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하층, #이사, #재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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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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