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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삼성 경영권 승계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시도를 계기로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는 '3세 승계, 법 위의 삼성과 결별하라'는 공동기획을 진행합니다. 앞으로 5편에 걸쳐 삼성그룹 스스로의 경쟁력, 국민경제의 이해, 시민적 상식 그리고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춰 과거 어두운 유산과의 단절을 주문합니다. 이번 삼성 재벌 총수 일가 독재 폐해 가운데 하나인 '삼성 언론' 문제를 짚습니다. [편집자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5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5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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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는 비판해도 이건희-이재용은 거론하지 마라."

이른바 '업계' 불문율 가운데 하나다. 광고 비중이 큰 언론사에 삼성 총수 일가는 마지막 '성역'인 셈이다. 거꾸로 총수 일가만 직접 거론하지 않는다면 웬만한 제품 비판쯤은 감수하는 '아량'도 보여줬다.

"한국 언론은 삼성을 이길 수 없다"

결정적 예외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자사 신형 스마트폰 '갤럭시S5' 생산 차질 문제를 제기한 <전자신문>을 상대로 3억 원대 소송을 제기했다(관련기사: 삼성-전자신문 '전면전'... '갤럭시S5 생산 차질' 보도 소송).

뿐만 아니라 삼성은 공식 블로그 '투모로우'를 통해 <전자신문> 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전자신문>도 지지 않았다. 삼성 제품 결함 문제부터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갑질 행태'까지 삼성 문제를 비판하는 기획 보도를 수개월에 걸쳐 내보낸 것이다. 심지어 당시 삼성전자 지분이 0.57%에 불과한 이재용 부회장의 3세 승계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투명성을 높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공방은 그해 9월 <전자신문>의 '정정보도'로 일단락됐지만 생채기는 컸다. 삼성 광고가 중단되면서 전자신문의 매출은 큰 타격을 받았고 그 와중에 기자 10명 정도가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자신문>은 삼성과의 싸움을 멈췄다.

전 <전자신문> 기자는 "당시 삼성이 <전자신문>을 만만히 보고 편집국에 전화 한두 통으로 무마하려고 했는데 당시 노조 공정보도위원회를 중심으로 젊은 기자들 사이에 비판 여론이 형성되면서 결국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 생각보다 삼성의 문제(약점)를 잘 몰랐다는 걸 알게 됐고 회사 수익과 매출이 줄면서 오히려 젊은 기자들이 (상층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갤럭시S5 부품 공급 차질 문제를 지적한 전자신문 기사. 위는 3월 17일자, 아래는 3월 25일자.
 삼성전자 갤럭시S5 부품 공급 차질 문제를 지적한 전자신문 기사. 위는 3월 17일자, 아래는 3월 25일자.
ⓒ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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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수입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언론이 대기업 광고주, 특히 삼성과 맞서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보여준 방증이었다. 이는 다른 언론사에도 '반면교사'였다. 

마침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1년 넘게 의식을 찾지 못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3세 승계 작업이 본격화됐다. 삼성이 반도체 직업병 노동자 가족들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선 것도 공교롭게 그 시점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였다.

그리고 지난 5월 말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전자 대주주인 '삼성물산'이 합병을 선언했다. 이 부회장이 그룹 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를 지배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이때까지도 '이재용 테마주'로 주가를 잔뜩 올린 제일모직이 몸집이 훨씬 큰 삼성물산 주주들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합병을 강행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국내 언론은 거의 없었다. 지난 6월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진원지로 떠오른 와중에도 언론은 이 부회장 공개 사과를 계기로 '삼성그룹 차기 CEO'라는 이미지만 각인시켰다.

'친삼성 매체' 기자도 조중동 '애국주의'에 눈총

이때 엘리엇 매니지먼트라는 미국계 헤지펀드가 등장했다. 엘리엇은 지난 6월 초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한 뒤,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면서 합병 반대를 선언했다. 이미 시민단체와 소액주주연대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합병을 반대했지만 '스케일'이 달랐다.

이에 국내 언론이 '삼성 지킴이'로 등장했다. 엘리엇이 삼성 경영권을 겨냥해 단기 시세 차익을 거두려는 '먹튀' 해외 투기자본이라면서 '애국주의'를 앞세웠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엘리엇 비판은, 평소 '친삼성 매체'를 자임하는 경제지나 전문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특히 삼성물산이 소액주주들의 합병 지지와 의결권 위임을 촉구하는 '애국심 광고'를 주요 일간지와 방송, 포털에 일제히 실은 지난 13일 한 보수 일간지는 1면도 모자라 3면과 경제면에 걸쳐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 행태를 비판하고 국내 대기업에게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13일자 <한겨레> 엘리엇 인터뷰 기사 아래에 실린 삼성물산 광고. 삼성물산은 이날 주요 일간지와 종편 등 방송, 포털 등에 주주들에게 합병 지지와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는 광고를 일제히 실었다.
 13일자 <한겨레> 엘리엇 인터뷰 기사 아래에 실린 삼성물산 광고. 삼성물산은 이날 주요 일간지와 종편 등 방송, 포털 등에 주주들에게 합병 지지와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는 광고를 일제히 실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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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한 경제지 기자는 이날 "우리 매체도 이 정도까진 아닌데 종합지에서 이렇게 도배할 정도면 정지작업이 있었던 게 아니겠나"라면서 "우리가 더 분발해야겠다"고 꼬집었다.

한 전문지 기자도 "삼성이 외국 투기자본이 공격할 때마다 경영권을 집어삼키려고 한다고 주장하는 건 결국 이재용 부회장 편법 승계에 쏠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것"이라면서 "국내 언론도 외국계 투기자본의 삼성 경영권 장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삼성 장단에 맞춰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엘리엇 아시아태평양 투자책임자를 직접 인터뷰했던 곽정수 <한겨레> 대기업 전문기자는 "이재용 부회장도, 엘리엇도 결국 돈벌이를 하려는 것"이라면서 "삼성물산 합병 논란을 일종의 '머니게임'으로 봐야지, 국익과 애국심 관점을 앞세우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진보적인 시민단체나 학계도 이번 사태에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의 편법 승계도 문제지만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를 경계하는 시각이 많은 탓이다. 실제 영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이 지난 2003년 SK 경영권으로 노리고 들어왔다 2년 만에 시세차익만 수천억 원씩 거두고 떠난 사례도 있다. 

"한국 언론 엘리엇 사태 보도는 시대착오적"

그럼에도 경제개혁연대와 경제개혁연구소를 비롯해 참여연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여전히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의 편법과 불공정성,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앞세워 국민연금에 반대 의결을 요구해 왔다.

민교협 공동의장인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5일 "엘리엇 문제 제기로 불거지기 했지만 삼성물산 합병 자체가 경제정의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데 언론은 이재용 승계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엘리엇이 등장한 후엔 오히려 민족자본 대 투기자본 대립 구도로 만들어 삼성물산 소액주주 피해 문제를 해결할 기회조차 빼앗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삼성이 거대 광고주라는 것도 배제할 수 없지만 언론 스스로 지난 수십 년간 삼성이 잘못되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처럼 '대기업 신화', '삼성공화국' 이미지를 만들어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결국 국제 투기 자본을 비판하고 민족자본을 앞세우면 국민들도 받아들일 거라 오판했지만 실제 삼성에 대한 국민 반발은 예상보다 컸다"고 밝혔다.

실제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8~10일 사흘간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더니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찬성이 44.3%, 반대가 42.5%로 엇비슷했다(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다만 이번 합병 목적이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은 27.5%에 그쳤고,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63.2%에 달했다. 국민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이재용 승계  문제'를 지금까지 한국 언론들만 감추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 언론의 엘리엇 사태 보도는 시대착오적이고 우리의 인식만 보여준 잘못된 보도"라면서 "언론이 삼성을 돕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국제 사회에서 삼성과 이재용에 데미지(피해)만 준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보수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언론도 삼성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엘리엇을 비판하는 칼럼을 실은 <한겨레>와 <경향>을 나무라면서 "언론 보도를 조작할 순 있어도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삼성에서 떠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KB 사태나 현대차 한전 부지 매입 때는 그래도 KB나 현대차를 비판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삼성은 예외라는 걸 새삼 느낀다"면서 "내가 만나 본 기자들도 자존감을 잃었고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겉으로는 삼성에 찬성표를 던져도 속으로는 삼성이 이번에는 제대로 당해봐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주장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삼성물산 합병, #엘리엇, #이재용, #이건희,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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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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