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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자발성·창의성·공공성·지역성'이라는 기본정신을 통해 학교혁신 실천이라는 목표를 갖고 출발한 혁신학교는 강원도에서는 '행복더하기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 54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강원희망신문>에서는 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례 등을 제공하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중특별기획으로 '혁신학교에서 희망찾기'를 연재한다. '특별좌담회'를 시작으로, 학교현장 방문 취재 등 총 9회 연재할 계획이다. <오마이뉴스>는 <강원희망신문>의 동의를 얻어 이 기사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말]
태백기계공고,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참가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
 태백기계공고,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참가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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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아래 태백기계공고)에서 선입견은 금물이다. 학교 이름 안에 들어 있는 '기계'와 '공업'이라는 단어에서 뭔가 딱딱하고 거친 기운이 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업고등학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여기가 공업고등학교가 맞나 싶을 정도다.

지난 1일 불볕더위 속에 찾아간 태백기계공고 정문 앞. 학교 정문 안쪽으로 잘 가꿔진 화단이 보인다. 공업고등학교답지 않게 꽤 정갈한 분위기다. 화단 사이로 좁은 오솔길이 지나가고 있다. 학교 정문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이곳을 동네 휴식처로 만들어진 작은 공원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화단에 보라색 도라지꽃 한 송이가 길게 목을 빼고 있다. 그 꽃이 학교를 방문하는 낯선 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몇 송이 도라지꽃이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 화단은 이게 끝이 아니다. 방문객들은 학교 구석구석 어디에서든 나무와 꽃이 자라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태백기계공고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업고등학교들과 다른 건 화단뿐만이 아니다. 태백기계공고 교정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때로는 이 학교가 공업고등학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태백기계공고를 대하는 선입견은 학교 정문에서부터 조금씩 깨져 나간다.

태백기계공고의 새로운 변신

태백기계공고 학교 정문. 그 위에 전국체육대회 핸드볼 강원도대표선발전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태백기계공고 학교 정문. 그 위에 전국체육대회 핸드볼 강원도대표선발전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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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기계공고와 같은 특성화학교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들이 많다. 특성화학교에 지원하는 신입생들이 모자라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애를 먹는 학교들이 한둘이 아니다. 태백기계공고 역시 얼마 전까지는 그런 학교들 중에 하나였다.

태백기계공고는 역사가 매우 깊은 학교다.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학생 수만 1500여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1970~1980년대 산업 근대화에 필요한 우수한 인력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그들이 지역 발전을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했다. 지금도 태백시에서는 태백기계공고 출신들이 지역 경제계는 물론이고 정치계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

하지만 국내 석탄 산업이 퇴조기를 맞던 1980년대 말, 학교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지역 인구가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학생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지역 경제가 침체되면서, 졸업생들의 취업률도 함께 추락했다. 그런 상태에서 태백기계공고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일은 지극히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선입견에 불과했다.

2013년 이후, 태백기계공고의 신입생 지원율은 100%에 가깝거나 100%를 넘어서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전까지 70%가량에 불과했던 지원율이 이렇게 늘어났다. 취업률도 늘고 있다. 지난해 태백기계공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50%가 넘었다. 이 수치는 다른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런 사실을 인정받아 태백기계공고는 올해 특성화고 취업역량강화사업 우수학교로 선정돼 정부 표창까지 받았다.

이렇게 되면, 태백기계공고의 변신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태백기계공고는 지난 2012년에 강원도형 혁신학교인 '행복더하기학교'로 지정됐다. 강원도에서 특성화학교 중에 행복더하기학교로 지정된 경우는 태백기계공고가 처음이다. 그 후 태백기계공고에서도 학교 전반에 걸쳐 변화가 시작됐다. 이 학교의 변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율 강조하는 학생 자치 활동

아침 등굣길,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교사들. 태백기계공고는 한 달에 한 번 이런 행사를 갖고 있다.
 아침 등굣길,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교사들. 태백기계공고는 한 달에 한 번 이런 행사를 갖고 있다.
ⓒ 태백기계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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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 예전과는 다른 학교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 데 있었다.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자치 활동'에 주력했다. '학생 자치 제도'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서 교사들의 통제나 지시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학생 자치 활동의 중심에는 학생자치회가 있다. 학생자치회는 학교가 학생들과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예를 들어 수학여행을 가게 될 경우, 여행지를 선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여행지에서 먹게 될 음식을 선택하는 문제까지 직접 관여한다. 체육대회나 축제를 개최할 때는 주로 학생들이 원하는 종목과 프로그램을 채택한다.

학생자치회 임원들은 매주 화요일, 한 차례씩 교장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갖는다. 이 모임에 특정한 형식은 없다. 자유로운 대화가 오간다. 그 자리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학교에 바라는 사항을 전달하고, 교장은 학생들이 가진 문제와 고민을 헤아린다. 자치 활동에서는 당연히 '자율'이 강조된다.

그러고 보면, 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그저 교사들의 통제와 지시에 따라서,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선입견이다. 아직은 태백기계공고의 학생 자치 활동이 제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생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는 부분에서 약간 미흡한 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태백기계공고의 학생 자치 활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방법

한 학생이 휴식 시간에 학교 건물 벽에 설치돼 있는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다.
 한 학생이 휴식 시간에 학교 건물 벽에 설치돼 있는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다.
ⓒ 태백기계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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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자치'에 집중하는 동안에 교사들은 '연수'와 '연구'에 몰두했다.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했다. 행복더하기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기존의 '수업 방식'과 '학교 문화'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교사들은 연수와 연구를 통해서 태백기계공고를 '행복더하기학교'로 만드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런데 혁신학교에 일반화 되어 있는 수업 방식 중에 하나인 모둠수업은 태백기계공고 같은 특성화학교에는 잘 맞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거대한 기계와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 모둠별로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행복한 학교'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교사들은 우선 학교 문화를 바꾸는 일에 전념했다. 교사들은 권위 의식을 버렸다. 그리고 교장 한 사람에 의해서 독단적으로 운영되던 의사결정 체계와 상명하복식 문화를 바꿔 나가고 있다. 학생들을 학교생활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태백기계공고에서는 요즘 매달 한 번씩 모든 교사들이 학교 정문에 나와 그날 학교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는 행사를 갖는다. 이 행사에는 경찰서장도 참석하는 등 지역 사회가 함께 한다. 이는 지역 사회가 학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학교 문화를 바꾸는 일 중에는 물론 학생 자치를 강화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공고'라는 선입견이 무색한 학교

기숙사 안에 마련돼 있는 당구대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
 기숙사 안에 마련돼 있는 당구대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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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기계공고에서는 약 70%의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수업료는 면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많은 만큼 기숙사 생활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학교 기숙사에는 도서관, 컴퓨터실, 헬스장은 물론이고, 노래방과 당구장까지 있다. 학교 안에 당구장까지 설치돼 있다는 사실에 의아할 수도 있다. 이런 의문에 이 학교 차성호 교사는 "당구를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태백기계공고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일을 보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학교의 한쪽 건물 벽에는 작은 규모의 암벽등반 시설이 갖춰져 있다. 공부를 하다가 지친 학생들이 학교 벽을 기어오른다. 암벽등반은 교사들도 함께 즐긴다. 동아리까지 결성돼 있다. 이 학교에서는 매년 두 차례 암벽등반대회가 열린다.

차 교사는 "(교사들도) 암벽등반을 하다 보니 아이들과의 친밀감이 더 깊어지는 걸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학생과 교사가 같은 취미를 즐기면서, 서로 친근한 감정을 쌓게 된다는 얘기다. 태백기계공고는 또 매년 '학부모와 함께 하는 숲체험' '학부모와 함께 하는 요리교실' 같은 행사를 진행한다. 즐거운 학교생활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계속 된다.

태백기계공고는 올해 학생 취업률을 '100% 이상'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100% 이상'이라는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말에는 학생들을 취업시키는데 재학생뿐만 아니라, 이미 학교를 떠난 졸업생들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각오 하나만은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는 '공고'라는 이름과 함께 떠올리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태백기계공고가 어떤 학교인지를 알고 나면, 이제는 그것도 잘못된 관념 중에 하나라는 걸 알게 된다. 태백기계공고에는 '공업고등학교'라는 딱딱하고 거친 개념에, '자치'와 '행복'이라는 부드러운 개념을 새로 추가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하는 숲체험 행사.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하는 숲체험 행사.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 태백기계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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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100%, '명품 특성화고'를 향한 꿈

2011년 영국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태백기계공고 출신 김현우군이 용접부문 금메달을 수상한 것을 기념해 학교 안에 조성한 기념물.
 2011년 영국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태백기계공고 출신 김현우군이 용접부문 금메달을 수상한 것을 기념해 학교 안에 조성한 기념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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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기계공고는 요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올해 3월 김정기 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과거 1970~1980년대에 누렸던 영광을 되살려 태백기계공고를 '취업률 100%의 명품 특성화고등학교'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태백기계공고는 취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서 올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돼 있다.

태백기계공고는 지난 4월, 교육부에서 '2014년 특성화고 취업역량강화사업'의 성과를 평가한 결과 '우수학교'로 선정돼 정부 표창을 받았다. 태백기계공고 학생들의 취업률은 다른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취업역량 강화 부문에서 우수학교로 선정된 것은 학교가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인정받은 결과다.

태백기계공고는 올해 '중소기업 특성화고 인력양성 사업' 대상 학교로 선정돼 1억 5천만 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 사업은 특성화고 마인드 제고, 현장중심 교육과정, 취업역량 강화 및 취업 연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사업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태백기계공고 학생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비율을 높이는 데 있다.

지난 6월에는 국방부와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군 특성화고'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경사가 있었다. '군 특성화고'는 군에서 근무하는 요원을 양성하는 목적을 지닌다. 군은 3학년생들에게 군이 보유한 시설에서 실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중 일부는 유급병으로 근무한 뒤, 복무 기간이 끝난 뒤에는 부사관으로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태백기계공고는 지난 4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간 열린 강원도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 7개, 은메달 8개, 동메달 5개, 우수상 2개를 수상했다. 그리고 오는 10월에 열리는 전국기능대회에서는 용접과 자동차정비, 제품설계 부문 등에서 금메달 3개 이상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백기계공고의 꿈이 현실이 될 날을 기대한다. 



태그:#태백기계공고, #행복더하기학교,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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