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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만난 오색씨앗 마을공동체(아래 오색씨앗) 대표 한정희씨의 조그만 경차 뒷좌석은 항상 생태적(?)이다. 왜냐고? 뒷좌석엔 양파 꾸러미, 삼채 꾸러미, 심지어 지렁이까지 함께 타곤 한다. 그녀의 뒷좌석엔, 아니 앞뒤좌석 모두 항상 흙먼지가 마를 날이 없다. 그럼 그녀는 농부일까? 그렇지 않다. 뭐 하는 사람이기에 그럴까?

오색씨앗의 엄마들이 모임을 하다 즐겁게 한 컷
▲ 오색씨앗 엄마들 오색씨앗의 엄마들이 모임을 하다 즐겁게 한 컷
ⓒ 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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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도 없는 집 평상에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안성 공도읍 외곽에 있는 한 전원주택이다. 주인도 없는 전원주택 정원의 평상에 우리는 앉았다. "주인 어르신들에게 다 허락 받았다"는 그녀의 말은 이런 식의 일이 오늘 한 번은 아닌 듯 보였다.

오색씨앗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물었다. "3년 전부터 만정초등학교 학부모회에서 만난 엄마들이 수다 떨다가 시작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그럼, 오색씨앗이란 단순한 학부모들 친목모임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은 그랬다. 대한민국의 엄마로서 자녀교육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만 머물지 않았다. 3년 전 정희씨가 안성 로컬푸드사업에 함께 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지역 우리농산물을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엄마들은 귀농 또는 귀촌한 사람들의 밭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들이 농사를 지어도 판로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본 게다. 기존의 농민들이야 농협 등을 통해 전량 판매 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농부 초보자들에겐 그런 길이 막막했던 게다.

오색씨앗을 공동체라 부르는 건 엄마들도 아빠들도 아이들도 모두 하나가 되어 시장을 개설하고 농사를 체험하고 농산물을 파는 등 도심 속 가정들이 농산물로 하나가 되어 함께 가고 있기 때문이다.
▲ 오색씨앗 공동체 오색씨앗을 공동체라 부르는 건 엄마들도 아빠들도 아이들도 모두 하나가 되어 시장을 개설하고 농사를 체험하고 농산물을 파는 등 도심 속 가정들이 농산물로 하나가 되어 함께 가고 있기 때문이다.
ⓒ 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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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엄마들은 '오색씨앗 마을공동체'란 이름을 지은 것도, 무슨 거창한 모임을 하려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아는 엄마들끼리 모여 귀촌한 가정(멤버)의 농산물을 공동구매하고 공동판매 하는 걸 모색한 게 시발점이었다.

뭐든지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지 하다보면 가속도와 변화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처음엔 공도에 있는 농가에서 지금은 미리내에 있는 농가까지 농산물이 연결되고 있다. 내가 찾아간 날도 마침 미리내에 있는 농가에서 농사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단순히 농산물만 연결해 팔거나 팔아주는 형태만이 아니다. 엄마들의 자녀들과 남편들까지 해당 농가를 통해 농사도 같이 짓고, 오색장터를 통해 해당 농산물을 팔아보기도 한다. 오색씨앗 사람들은 아이들부터 부모들까지 서로 농사라는 공통된 주제로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랬다. 평상의 주인집은 바로 오색씨앗이 함께 하는 농가였다.

삼채 장아찌 납품? 그럼 기업인가?

"오늘이 마침 삼채 장아찌가 완성 되어 처음 납품되는 날"이라는 정희씨의 말에 놀란 건 나였다. 장아찌? 납품? 뭐 이런 단어라면 기업, 그것도 음식제조 기업의 시스템 용어인데, 이 분들이 기업을 한단 말인가?

아이들과 엄마들과 아빠들이 농사한 농작물을 같이 수확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가능한 곳이 오색씨앗 공동체다.
▲ 농사 아이들과 엄마들과 아빠들이 농사한 농작물을 같이 수확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가능한 곳이 오색씨앗 공동체다.
ⓒ 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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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그들의 꿈이 생겼다. 올해까지 시범적으로 이 일을 소화시켜보고, 공동체 식구들이 합의가 되면 내년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으로 발돋움해볼 계획이다.

이미 그들은 올 6월에 '경기도 따복 마을'에 입후보하여 선정되어 얼마간의 지원금을 지원 받은 상태다. "따복마을 선정 심사위원들 앞에서 3년 동안 걸어온 길을 설명하며 너무나도 벅차올랐다"는 정희씨는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언가를 위해 한마음이 되어 함께 고생해본 사람들만이 아는 그런 감격인 듯했다.

오색씨앗 엄마들, 이제 협동조합을 꿈꾸다

협동조합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수익을 창출해야 하지 않는가. 도대체 무엇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하려는지 궁금했다.

"삼채 장아찌가 우리의 도전이자 실험이다. 귀촌 농가가 기른 삼채를 그냥 팔면 소비자가 사지 않는다. 그 삼채를 우리 오색씨앗이 전량 구매해서 장아찌를 담았다. 맛있고 차별화된 장아찌를 연구하고 만들기 위해 우리는 수개월을 고생했다. 그렇게 탄생한 장아찌를 오늘 첫 납품하게 된 것이다."

일단 놀랍다. 어느 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원을 두고 연구하여 낸 결과물이 아니다. 이런 무모한(?) 엄마들이 아니라면, 어찌 수개월을 장아찌 하나 담는데 보낸단 말인가. 시설이 갖춰진 곳이 없어 오늘은 이 엄마 집, 내일은 저 엄마 집을 전전하며 장아찌 재료와 기구들을 옮기고 다녔단다.

지금 오색씨앗 엄마들이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나가서 수익을 창출하고, 협동조합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 공동작업 지금 오색씨앗 엄마들이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나가서 수익을 창출하고, 협동조합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 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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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은 "돈 나오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다니다니"라며 '걱정 반 관심 반'을 그들에게 보냈다. 삼채 장아찌를 처음 납품한 오늘까지도 그런 걱정이 말끔히 해소된 건 아니다. 다만, 그런 과정들을 밟아가는 오색씨앗 사람들은 한 과정 한 과정 밟을 때마다 즐겁고 행복하다는 거다.

만나면 즐거운 그들, 어제도 오늘도 웃는다.

요즘 주위 사람들은 메르스니 불경기니 하면서 인상 쓰기 마련인데, 그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정과 신뢰가 탄탄하다"는 정희씨의 말에서 이들은 '도심 속 공동체'를 제대로 하고 있구나 싶었다.

"오색씨앗이란 태양, 물, 거름, 땅, 새싹, 이 다섯 가지를 이른다"는 말에서 "농가들과 엄마들과 아이들과 도심 속 이웃들 모두를 먹을거리로 연결해서 오색씨앗을 싹틔우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보였다.

전에 해왔고 앞으로도 오색씨앗이 해나갈 공동체의 역할 조감도라고 해야할까. 대표 한정희씨가 직접 그린 거란다.
▲ 오색씨앗 공동체지도 전에 해왔고 앞으로도 오색씨앗이 해나갈 공동체의 역할 조감도라고 해야할까. 대표 한정희씨가 직접 그린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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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희씨의 경차 뒷좌석에 흙먼지가 마를 날이 없는지 이제는 알 듯하다. 그녀는 "오색씨앗이 꿈꾸는 공동체 세상은 승용차 실내에 농산물 흙먼지쯤 늘 묻어줘야 오는 세상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지 않을까.


태그:#오색씨앗 , #로컬 푸드, #공동체, #협동조합,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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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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